“그렇게 노란색과 세월호참사 이후 진행된 4.16운동은 오늘의 우리를 살렸네요.”

4·16재단은 뭘 하는 곳이죠? 라는 물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재단일까?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어떤 차별성을 갖고 걸어가야 할까? 그 물음 속에 우린 답하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안전 사회로 나가기 위해 작지만 부지런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접한 비보들이 있었습니다. 수해는 물론, 화재, 가스 폭발, 그리고 코로나 19. 연이은 악재 속에 힘든 이들이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견디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부 지원이 안 닿는 곳이 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복지 혜택을 악용하는 사례를 최대한 걸러내야 하는 게 정부의 일입니다. 그렇기에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그 사각지대에 불을 밝히자! 이 한마디로 ‘재난피해긴급지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재난피해긴급지원사업은 공공부문에서 소외된 사각지대를 비추는 등불로써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재난 피해자와 재난피해 현장 활동가를 지원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손 내미는 이들의 손을 잡는 ‘재난피해긴급지원사업’이 벌써 2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 속 많은 사람이 아파했습니다. 정말 오늘만 잘 견뎌내기도 벅찬 나날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코로나 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연신 언론에 오르내렸던 ‘쿠팡 물류센터’.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피해자 모임을 조직했고 지원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왜, 무엇이 그들을 한데로 모아 목소리를 내게 했을까요?

그들은 왜 4·16재단의 문을 두드렸을까요?

“우리나라는 왜 생계를 위해 나선 곳에서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요?”

고건 피해자모임 대표 그리고 강민정 활동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려워서 먹고살려고 일하러 나간 게 죄죠.”

지난해 5월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일어났어요. 우리 동료분의 남편분은 n차 감염으로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시 노동자 중 확진자가 무려 84명이었어요. 감염된 가족까지 더하면 152명이에요. 사회는 말하죠. 개인의 책임이라고. 코로나 걸린 우리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류 일을 해왔고, 코로나가 터졌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 역시 여전히 이어져 왔었다는 걸요. 그래서 나간 거예요. 우리는 유흥을 즐기기 위해 나선 것도 아니고, 그저 가족 먹여 살리려고 일터에 나선 거예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콜 센터 집단감염도 그렇고 물류센터 집단감염도 그렇고, 가장 힘들게 어렵게 일하는 현장에서만 집단감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그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닭장 같은 업무 환경을 가졌던 콜 센터, 매일 단기 계약직, 일용직 수십여 명을 고용해 코로나 위험 속에 매일 낯선 사람들과 땀 흘리며 일해야 했던 물류센터. 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시기에도 일용직과 단기 계약직들로 현장을 돌려야 했는지, 방역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생계를 위해 나선 노동자들이 아닌 기업과 정부에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필요 없으면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아직도 우리나라 산업 현장은 옛날에 머물러있는 것 같아요. 그저 효율과 능률, 그리고 돈.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왔을 때 기업은 무얼 했죠? 밀접 접촉자 몇몇만 돌려보내고 그 결원된 자리를 또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로 채웠죠. 정말 노동자를 생각했다면 즉각적인 봉쇄 조치가 이뤄졌어야 하지 않나요? 대기업 사옥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면 태도가 달라요. 우리 같은 사람인데, 정규직 대기업 사원들은 바로 해산되고 격리되죠. 우리는 그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현장에서 계속 일만 했어요. 심지어 명단 제공조차도 늦장을 부렸죠. 우리는 그렇게 사람이 아닌 부품으로 방치됐던 거예요.

“코로나가 기회였던 곳이니까.”

코로나 전에는 하루 평균 170만 건을 처리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19가 터지고는 330만 건 정도로 2배가량 물량이 늘었어요. 극성수기였던 거죠. 그런데 작업 공간은 한정적이잖아요. 그런데 물량은 확 늘었으니까 일용직 노동자들한테 매일 문자를 돌리는 거죠. 그런 부분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방역에 더 철저히 신경 썼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 부재했어요. 일을 시킬 때 인격 모독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기 위해 관리자들이 마스크를 내리기도 했죠.

“고객이 받아보는 상품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안전하다. 믿고 써도 된다.”

쿠팡 사과문 보셨나요? 노동자의 안전은 어디로 가고 그저 상품이 안전하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무너지겠더라고요. 우리는 그놈의 상품보다 못했구나, 우린 그런 존재였구나. 그냥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그저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고 미흡한 점은 없었고, 상품은 안전하니 배송시키라는 듯한 메시지를 담은 그 문구가 정말 몸서리치게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절망 속 단비가 내리더라고요.”

일용직은 쿠팡에서 취업을 막아버려 돌아가지 못했어요. 트라우마나 후유증 때문에 일을 못하기도 했어요. 생계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말하지 않고 관심 두지 않아서. 그저 우리끼리라도 잘 싸워보자, 잘 이겨보자. 그렇게 위로 아닌 위로하며 버텨왔어요. 그런데 단비가 내리더라고요.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님께서 재난피해긴급지원사업이란 게 있으니 신청해 보자고.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했고 반신반의하며 신청했죠. 그런데 연락이 오더라고요. 됐다고, 지원한다고. 그 말을 전하는데 정말 메말라 갈라지는 땅에 내리는 단비가 이런 걸까 싶더라고요. 또 한 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말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있었는데, 4·16재단이 그 줄을 끊어줬다고….

“그렇게 노란색과 세월호참사 이후 진행된 4.16운동은 오늘의 우리를 살렸네요.”

사실 잊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날을 잊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해결된 줄 알았어요. 정말로, 세상을 바꿨고 촛불을 일으킨 사건이니까 지레짐작 끝났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앞에 간 날 노란 옷을 입은 무리가 국회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물었죠. 무슨 일인지. 세월호참사 엄마·아빠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어요. 끝나지 않았다는 걸… 그런 막연함으로 기억했는데 그 참사 이후 안전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4·16재단이 오늘 우리를 살렸어요. 정부도 기업도 책임지지 않아 당장 생계 걱정에 막막한 나날을 보내는 우리에게 숨을 쉬게 해줬죠. 그래서 생각해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해결될 때까지 기억하고 지켜보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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