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_박보나

4.16세월호참사 6주기 추모전은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대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시문화사업입니다. 전시문화사업을 통해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비대면 온라인 전시회로 진행했습니다.

‘당당한 피해자’

이번 추념전에는 ‘당당한 피해자’ 세월호참사 피해자 형제자매들이 작가로 참여해 작품을 전시하고 자신들이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더불어 작가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말하고자 하는 게 있는지 귀 기울여봤습니다.

저는 2-5 박성호 군의 첫째 누나 박보나입니다.

·이번 추념전에 작가로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작년 형제자매 사진 모임에서 사진전을 처음 진행했습니다. 사진을 통해 세월호를 알리고 피해자로서, 사건의 당사자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면서 피해자, 당사자가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추념전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A. 작년 전시에서는 세월호 형제자매의 삶, 피해자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에둘러 이야기했다면 올해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피해자 비난, 피해자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작가님의 대표작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A. 저는 이번에 “진정한 피해자”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시했어요.

피해자의 뒷모습을 보고 피해자의 앞모습은 어떤 모습을 떠올렸는지, 그 표정을 떠올리고 어떤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는지,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왜 이상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왜 적절한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앞모습을 찍어 직접 여러 표정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외모 평가나 비난, 온라인상에서의 사진 유포 등이 걱정되어 뒷모습을 찍기로 한 것도 있어요. 그 중 「머리카락_미용실」을 대표작으로 정했어요. 사건 이후에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머리카락도 제게 굉장히 다양한 의미가 있는 것이 되었어요. 14년도에 사건이 있고 나서 뿌리염색을 하고 언론에 사진이 실렸는데 댓글에 가족을 잃고 뿌리염색을 한다니 이제 살만해졌나 보지, 이상한 유가족이네 하는 댓글이 달렸는데 그걸 보고 조금 충격이었어요.

염색을 하러 가기까지 한참을 생각했고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염색을 한다는 행위 자체를 저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어떤 이들은 슬픔을 다 이겨낸 것으로 인식하고, 누구는 슬픔을 극복하려 발악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또 누구는 보상금과 연결 지어 비난할 수 있겠구나, 피해자의 이미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어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어요. 어쩌면 사람들이 이 사진을 아주 낯설게 느낄 것 같은데 어떤 감정이 들고 왜 들었는지, 진정한 피해자라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 ‘당당한 피해자’라는 주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A. 사건 초반에는 오히려 검열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스스로 피해자다운 행동이고 표정인지 검열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면 어딜 나가기도 두렵고 유가족인 걸 모르게 노란 팔찌, 노란 리본을 빼놓고 나가고 그러면 또 동생에게 부끄럽고 마음이 매우 불편해지고 세상에서 밀려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새 직장에 들어가거나 새로 연애를 시작한 형제자매들에게 유가족인 거 커밍아웃했냐고 묻죠.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비난, 무례한 질문을 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동생은 유학을 하러 갔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표정을 꾹 숨기고 말을 해요.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불편해요. 괜찮아 보인다고 하면 어떻게 내가 괜찮아질 수 있냐고 자책하고, 괜찮지 않아 보인다고 하면 언제까지 안 괜찮은 거지 생각하게 돼요. 스스로도 계속 검열을 하고 불편해져요. 그렇게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해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형제자매들과 다른 사건,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작년에 피해자 권리 포럼과 독일 기행을 다녀오면서 많은 걸 배우고 다짐하게 되었어요. 피해자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 질문할 권리, 진상규명 절차와 제도에 참여할 권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사과받을 권리, 배 보상을 받을 권리,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 등이 있어요. 피해자가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은 너무 당연하고 피해자의 권리인 것이라고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떼쓰는 피해자, 유가족이 아니라 실은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이요. 피해자로서 말을 할 때 비난에 주저하게 되거나 말을 아끼거나 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들을 만나고 당당한 피해자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되었어요. 사실 세월호 이전에 일어난 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말해왔고 좌절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더 나은 세상이 되었던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거잖아요.

더는 숨이 막혀서 세상이 요구하는 피해자의 이미지에 저를 맞추면서 살 수 없어요.


  •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들에 대한 언급이 있던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지 모른 채 강요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행동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A. 보통 피해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순진무구하고 흠 없고 순박해야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이미지 같은 것들요. 그 이미지를 벗어나면 그 사람은 순수한 피해자가 아닐 것이다, 피해자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느냐, 피해자의 배후에 불순 세력이 있다, 피해자가 어디 울고 있지 않고 나와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와 요구를 주장하느냐고 피해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비난해요. 울고 있으면 언제까지 우냐고 웃으면 어떻게 웃을 수 있냐고 비난하고요.

그래서 대체 “피해자답다”는 게 뭐야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나 표정을 지었다고 해서 그가 더는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가, 피해자가 덜 고통스럽다거나 더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에게 흠이 있다면 그 사건은 없던 일, 더는 부당하지 않은 일이 되는 걸까요? 피해자에게 흠이 있다면 그 사건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게 되는 건가요? 저는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서 내가 그런 일을 겪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상상해보고 나라면 저러지 못할 것 같은데 나라면 저랬을 것 같은데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같은 사건으로 피해자가 된 사람들도 성향, 성격, 살아온 환경 등에 따라 상태가 다 다르거든요. 마음을 마주하는 시기, 극복하는 방법 모든 게 다 달라요. 그런 잣대는 같은 피해자들끼리도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 시선에 상처받았을 것 같은데 응원과 위로받은 적도 있나?

A. 많은 분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농성할 때 자리에 함께해주신 분들, 위로를 건네주신 분들, 6년이 넘도록 함께 해주시는 분들, 노란 리본이나 팔찌를 여전히 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도 많은 위로를 받아요.

세월호 현장, 그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피해를 본 분들도 많았죠. 민간잠수사님들도 그렇고 자원 봉사하며 이 현장에 함께 하신 분들도 병이 난 분들이 정말 많아요. 피해자의 범위가 실은 아주 넓어요. 그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고 그분들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건을 몰라도 상실, 사별의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해주는 이들도 많았어요. 상처에 생채기를 내고 비수를 꽂고 낙인을 찍는 이들 말고도 위로해주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힘을 얻고요.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지만, 그들 덕분에 그래도 좀 더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하게 돼요.


  • 이 사회가 재난참사피해자와 함께 감에 있어 좀 더 세심하게 주의할 것들이 있을까요?

A. 이 사회가 재난 참사 피해자들에게 좀 더 세심하게 조심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 일어난 사건과 참사의 피해자들에게도 비슷한 비난을 해요. 내가 당신의 고통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실례가 되는 일인 것 같아요. 같은 사건의 피해자라도 각자의 고통은 다 다른 것 같아요. 그저 고통을 존중해주시면 좋겠어요.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 페미니즘 리부트』 라는 책에 권김현영 여성 학자의 글이 인상 깊고 공감됐어요.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다시 피해자를 과거의 사건 바로 그 순간에 살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미래는 이미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증언하는 일은 고통을 경쟁하고 증명하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고통 자체가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A. 작년에 독일 기행을 다녀온 후에 저도 동생을 애도하고 싶어서 『애도일기』 나 『슬픔의 위안』이란 책들을 읽어보며 저의 상실과 그 감정들을 마주해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는 애도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애도를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세월호 사건이 다 해결된 거로 생각하겠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언론은 매년 4월 16일 즈음 찾아와서 이젠 좀 괜찮아졌나요, 슬픔을 극복했나요, 아직도 아픈가요,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물어요. 무엇을 얘기하고 싸우고 있는지는 제대로 전하지 않아요. 고통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고통이 반복되고 끝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알리고 그것이 해결되고 반복되지 않도록 다 같이 힘을 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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