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우린 그날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고 아파하고 있죠.
아무 곳에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 본 주 감독님 앞에 털어 놓았습니다. 당신의 사월은 정말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눈물보다는 공감을, 그날의 기억을 꺼내도 된다는 허락을 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 묘한 작품을 만든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월호참사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죄책감과 눈물 대신 “고마워요, 괜찮아요.”라는 따뜻한 다독임을 건네는 작품을 만든 이유와 작품 속 함축적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생중계를 통해 침몰하는 과정을 봤던 모든 시민이 이 사건의 당사자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참사를 목격하고 그 이후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요. 세월호참사는 사실 피해자이거나, 유가족이거나, 지인을 잃은 사람뿐 아니라, 생중계를 통해 침몰하는 과정을 봤던 모든 시민이 이 사건의 당사자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다큐에요.
이젠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이 다큐 기획을 시작했을 때가 3주기가 지난 시점이었어요. 그때 드는 생각이 이젠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월호참사를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들 각각의 역할이 있잖아요. 진실 규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영화, 분노를 표출하는 영화 등등.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세월호참사 당시 뉴스나 정보 전달해주는 것들을 잘 못보는 거에요. 세월호 침몰과 참사가 주는 충격이 너무 커서. 그날 이후로 제 마음 안에 어떤 덩어리가 자리 잡은 느낌이었어요, 슬픔과 죄책감,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에 대한 분노 등 오만 감정이 뒤섞여서 가슴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거죠. 감정적으로 정형화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사실 뭘 더 한다는 건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3주기쯤? 사람들이 달고 다니는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 눈에는 그제야 그 리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 같아요. 사실 이전부터 달고 다닌 걸 텐데, 충격과 슬픔의 감정이 너무 크니 보지 않으려 했던 거겠죠. 그 노란 리본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벌써 3년이 지났고 저 사람들은 당사자도 피해자도 아닐 텐데도 왜 저렇게 일상에서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그 와중에 저 역시 여전히 세월호라는 단어를 들으면 먹먹하고 슬프고 알 수 없는 죄책감까지 느껴지는데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그때 비로소 저 스스로 마음의 덩어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거 같아요.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잖아요.
한국 사회가 세월호참사를 통해 돌아볼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린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잖아요. 특히 참사 직후 시작된 혐오 프레임은 워낙 강력했었잖아요. 그러면서 우리는 사실 제대로 애도하거나 기억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감당할 수 없는 미안함을 갖고 있고 감당이 안 되니 외면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팠다, 힘들었다, 미안했다.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면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그 시작이 아마 말하는 게 아닐까,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나 아팠어, 나 괴로웠어, 나 너무 슬펐어, 그리고 너무 미안했어.”
이렇게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 그게 416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각자 자기의 목소리로 416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유가족보다는 일반 시민들? 어찌 보면 세월호참사의 직접적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요.
누군가에게 꾸준히 슬퍼하라 말하는 건 폭력 아닐까요?
다큐 안에 피해자다움을 스치듯 언급한 게 있어요. 저는 피해자다움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생각해도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갖고 살아가요. 감독, 주부, 아내, 엄마, 작가… 그런데 참사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슬퍼하라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고 잣대를 들이대는 건 정말 폭력적이지 않아요? 더구나 누군가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그 틀에 가두는 순간 그 사건은 우리가 함께할 사건이 아니라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사건이 돼버려요.
힘들면, 아프면, 슬프면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겹다는 말, 그만하라는 말. 정말 아프죠. 그런데 아프니까, 슬프니까, 힘드니까 그 감정을 이야기하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는 거죠? 누가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사자가 아프다는데, 당사자가 아직 슬프다는데 누가 당사자의 입을 막는 건지 모르겠어요. 단순히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계속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다큐를 통해 본인의 감정을 마음을 다독였으면 했어요.
제 영화관이긴 한데 주인공이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주인공도 결국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이런 걸 느꼈으면 했어요.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이 너무 커버리면 내 감정을 도닥이지 못하고 영화 자체에 빨려 들어가 버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감정을 빼고 사실만을 전달하자 생각했어요. 적정 수준의 감정을 전달해서 지금껏 돌보지 못했던 자신 감정을 편안하게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자. 딱 그거였던 거 같아요.
우리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정말 슬프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참사는 우리가 결국은 같은 사회에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는 걸 정말 슬프게 확인시켜주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몫이구나. 확인하는 시간이었기도 하고요.
기억의 시차라는 게 있잖아요. 꽃들의 개화 시기가 다른 것처럼, 기억하는 그 시간들, 사건을 직면해 바라보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 결국에 모두가 기억하고 사건을 바라본다면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참사 당사자이지 않을까?
저도 주변 사람들도 세월호참사를 목격한 뒤 가슴 안에 들어앉은 덩어리진 슬픔에 이름을 붙이지 못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린 매번 같이 울고, 또는 도망치고… 애써 안 보려 하고… 그런데 그 감정을 어디서 꺼내 보이지도 못하잖아요.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유가족도 아닌데 이렇게 슬퍼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에요. 그래서 이 다큐를 만들었어요. 우리 역시도 피해자이지 않을까? 각자의 입으로 각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위로받길 바랐어요. 그런 시간을 지나면 내가 가진 이 덩어리 진 슬픔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지치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정말 포기하지 않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힘들고 슬프다는 걸 아는데, 우린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게 세월호참사 진실을 밝히는데 가장 큰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민들은, 희망이고 힘이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힘이 돼줬던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했고, 연대하는 활동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당신의 사월을 보면서 저 대신 모든 국민께 고맙다고 대신 전해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저한테 큰 위로가 돼 준 다큐였어요. 지금까지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당신의 사월은 잘하고 있다, 정말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아요. 세월호참사는 이제 누구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들의 이야기, 같이 행동하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많은 분이 당신의 사월을 보고 힘이 되고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_오준영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