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왼손’ _ 참사 현장엔 언제나 모두의 왼손이 있었습니다.

시민안전의식 향상을 위한 재난지원

시민 활동을 주제로 한 콘텐츠 공모사업

모두의 왼손은
재난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를 돕는 시민들의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문학·예술 작품 등으로 표현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해 진행된 공모전입니다. 약 한달 간 진행된 공모전에는 구술부터 산문 수필을 아울러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등 총 121작품이 출품됐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총 13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 저작권 및 편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 변형, 편집 등은 불가한 점을 알립니다. 

나는 다시 나를 가뒀다. 세상이 멈췄던 그 시간동안, 사람들이 대처법을 생각하고, 적응법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우리’에는 나는 없었나. 나는 버려진 걸까. 그렇게 내 세상만이 다시 멈췄다. 아니 내 세상만이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서 버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혼자 지냈을까. 또 다시 빛을 잃었다는 생각에,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것에 나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우리의 세상」中

문학 작품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다희님·이경화님을 만났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글을 써내렸을까.

김다희님은 코로나19로 인해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세상에 갇혔었고 다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그때, 그에 대한 배려는 없었습니다. 한줄기의 빛이던 점자는 향균 필름에 갇혀버렸고, 이곳 저곳에 대한 안내는 점자 대신 종이 한 장이 대신했죠. 거기에서 오는 절망, 답답함에 대한 담담한 토로. 그 글을 쭉 읽으며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얼마나 당연한듯 편안히 살아왔는지에 대한 반성이 일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이해는 어디로 갔는지, 그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그 담담한 질책에 오만 감정이 물밀 듯 밀려왔습니다.
 
이런 작품을 탄생시킨 김다희님은 위생과 안전을 위해 사용되는 향균 필름으로 인해 시각장애인 분들이 점자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글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시각 장애인 분들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진정한 ‘우리’의 의미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 중 특히나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저는 재난피해자를 모두의 왼손이라 지칭하면서, 사회적 약자이자 언제나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바로 왼손에서도 ‘아픈 손가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정한 우리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정한 우리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어떤 평가를 남겼을까요?
 
 
“전염병, 천재지변이라는 재난이 사회적 재난이 되는 순간을 잘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세상 
김다희 
세상이 멈췄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고, 세상은 멈췄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대처법을 생각해냈고, 적응하며 세상은 다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세상이 다시 돌아가면서, 내일부터 다시 문화센터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할 생각에 들떴다. 그리고 오늘 설레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현관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뭔가 이상했다. 점자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1층 버튼을 누르려는 데 정말 점자가 없다.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하지만 항상 타던 엘리베이터이기 때문에 그래도 쉽게 1층을 찾을 수 있었다.
거리는 예전의 거리보다 활기가 덜 하다. 천천히 돌아가는 중이니까, 나도 그렇고.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항상 들어가던 쪽문으로 왔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더듬더듬 문을 만져보지만, 붙여져 있는 한 장의 종이는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당황스럽다. 급하게 다른 문을 찾아 도착한 내 사무실은 잠시 장소가 이전됐다고 한다. 그렇게 바뀐 장소를 찾아 헤맸다. 문화센터의 지도를 보러 갔다. 또 다. 또 점자가 읽히지 않는다. 세상이 멈췄던 그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또 다시 나는 시각은 잃었다. 내 첫 번째 시각을 잃은 후, 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던 점자가 사라졌다. 
점자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자, 나는 다시 어둠에 갇혔다. 시력을 잃고 난 후, 그래도 이 어둠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조금의 빛이 사라졌다고 이렇게 혼란스러울까. 나는 이 다시 찾아온 어둠에서 도망쳤다. 걸음이 빨라졌다. 집으로 급하게 돌아오면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넘어졌다. 마치 그 사고를 당한 후 방황하던 예전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무릎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렀지만, 쓰라리진 않았다. 그저 집으로 빨리,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
나는 다시 나를 가뒀다. 세상이 멈췄던 그 시간동안, 사람들이 대처법을 생각하고, 적응법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우리’에는 나는 없었나. 나는 버려진 걸까. 그렇게 내 세상만이 다시 멈췄다. 아니 내 세상만이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서 버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혼자 지냈을까. 또 다시 빛을 잃었다는 생각에,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것에 나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시력을 잃은 후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걱정이 담긴 격앙된 목소리에서 나는 내 편의 존재를 느꼈다. 다신 내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함께 어둠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언니는 누군가가 향균필름의 문제점을 공론화시키며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래, 그것 때문이었구나, 답답했던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불쾌감에 휩싸였다. 
왜 사람들은 세상을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들에서, 그 생각들 속에서 나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 나서서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왜 당연스럽게도 나를 배제하는 것일까. 그렇게 이번엔 어둠이 가고 설움이 찾아왔다. 나도 그들의 ‘우리’가 되고 싶다. 난 처음부터 그 ‘우리’란 것을 느껴봤기 때문일까. ‘우리’의 밖에 있는 지금의 나는 어느 곳에서도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하고 싶다. 나도 세상의 ‘우리’가 되고 싶다.
그렇게 겨우 다시 찾아왔던 혼란의 어둠에서 벗어나, 나는 다시 출근을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느껴진다. 작고 섬세하지만, 차갑고 단단한 나의 빛이. 그래도 세상은 나를 다시 기억해 내고 ‘우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행이다. 나의 세상도 다시 움직일 수 있어서.
“여보, 나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잠시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 어렵사리 입을 열어 물었다.
“……?”
갑작스런 내 물음에 남편은 대답대신 한동안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재난상황에서 그저 맘 편히 지낼 수만 없어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하겠다고 하니 남편도 일말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당신, 가장 늦게 나올 자신 있어?”
“……네?”
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이 무슨 뜻인지 당신도 잘 알지? 당신은 소방관의 아내이자 간호사잖아. 이왕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단 마음을 먹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하겠단 마음으로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하란 얘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남편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中

 

소방관의 아내이자, 코로나19 최전선에 서있던 간호사.

이날 수상에는 근무로 참석하지 못한 이경화님 대신 남편 이성은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이 글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풀었던 이성은님. 소방사로 3년차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 누구보다 나중에 나온다.’라는 신념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고 있는 분입니다.

2년 전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 어린 아들과 함께 있던 이경화님은 이렇게 끝이 나나 싶은 찰나 정신을 잃었고, “여보, 여보”라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응급차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열감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소방복을 입고 눈물리는 남편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던 그 순간을 생생히 담아냈습니다.

더불어 코로나19로 파견 근무를 신청한 사실을 토로하는 자신에게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남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방관으로서 늘 재난 현장에 먼저 뛰어 들어가 최후까지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고, 아내는 간호사로서 헌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가지고 충실하게 노력하는 저와 아내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감동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사회 속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영웅들. 그들의 이야기를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결국 모든 참사는 사회적 참사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개인의 헌신과 신념에 기대어야 하는 상황, 목숨을 담보로 다른 목숨을 구해야 하는 상황, 인재의 대부분이 구조적 원인에 기인할 때 사회적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이경화
 “……운명하셨습니다.”
 응급실 당직의가 하얀 시트를 끌어 올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곳곳에서 유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일순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당직의를 옷자락을 잡아 흔들며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명운을 달리해 버린 마당에 당직의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지 않았던가.  
 “죄, 죄송하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직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는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 한바탕 유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이어지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유가족들도 점점 사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4도 화상으로 인해 근육과 뼈까지 심하게 손상된 주검은 하얀 시트가 덮인 채 영안실로 옮겨졌고, 긴박했던 응급실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영안실 직원들에 의해 영안실로 향하는 주검을 멀거니 바라보니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과거 아찔한 사고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애써 체머리를 흔들어 지워 보려 하지만 기억은 더더욱 또렷해지면서 날 괴롭혔다. 급기야 두 눈에 눈물까지 베이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가끔은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해질 때가 많았다.
 ‘퍼스터 인, 라스트 아웃’
 서재를 청소하던 중 소방관으로의 삶을 살고 있는 남편의 좌우명이 내 눈에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사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에 난 극구 반대하고 반대했다. 소방관이 얼마나 위험한 직업인 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단명하는 직업이란 소리에 더욱 반대를 했다. 사실 평생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다 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더욱 재난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던 중 낙상사고로 운명을 달라하신 걸 생각하면 온 몸이 떨리면서 두 눈이 붉게 물들곤 했다.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고자 당신의 목숨을 내 던진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아비로서 어여삐 키운 딸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연애시설부터 소방관이 되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난 소방관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 반대했다. 사고로 친정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는 남편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방관 꿈을 접던지, 아님 나와의 결혼을 접던 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나의 집요한 요구에 남편은 소방관의 꿈을 접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이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에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쩜 남편에게 있어 소방관은 남편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남편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방관이 되었다. 소방관이 된 남편의 모습이 늠름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갑자기 날 향해 말했다.
 “당신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이 말의 의미가 뭔 줄 알아?”
 남편의 물음에 난 별 관심 없다는 듯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은 소방관이셨던 아버지의 신조이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소싯적부터 늘 봐왔던 것이기도 했다.
“제일 먼저 들어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의미지. 당신도 알다시피 소방관이셨던 장인어른의 신조이기도 하지. 나도 이제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나도 돌아가신 장인어른처럼 훌륭한 소방관이 되고 싶어. 어떤 화재 현장에서도 제일 먼저 들어가 인명을 구조할 것이며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인명을 구조하도록 노력할 생각이야.”
 득의양양한 남편의 말에 난 대답대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어째 남편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난 그런 남편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오랫동안 바라보다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무 늦게 나오지 말고, 가족들 생각해서 조금은 일찍 나오도록 해요. 내 말 무슨 의미인지 알죠?”
 내 말에 남편은 헤헤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헤헤 웃는 남편의 모습에 난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꾸만 남편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을비 내리던 늦은 오후에 어린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인근 스포츠 센터를 찾았다. 며칠 동안 감기 몸살을 앓았던 터라 사우나를 통해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스포츠 센터를 찾은 것이었다. 어린 아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다. 누가 소방관의 아들 아니라 할까봐 큼직한 소방차를 가지고 노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난 절대적으로 어린 아들 만큼은 소방관이 아닌, 안전한 직업을 택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뭐랄까, 검사나 판사로 키우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까 걱정되어 어린 아들을 급히 불러 세웠다. 어린 아들은 남편을 따라 남탕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남편은 어린 아들과 함께 한가롭게 사우나를 찾을 시간도 없었다. 가을을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화재사고로 인해 남편은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하영아!”
 내 부름에 어린 아들은 소방차를 품에 안고 날 향해 겅중겅중 뛰어왔다. 어린 아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려던 순간 둔탁한 쇠 파열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곧이어 뭔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난 서둘러 어린 아들을 붙들어 세우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다시 둔탁한 쇠 파열음이 더 크게 들려왔다. 이윽고 운무 같은 흰 연기가 공중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뭔가 폭발한 모양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잠시 후 비상사이렌 소리가‘윙윙윙’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비상방송을 통해 스포츠 센터 내에 화재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경고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경고음을 들은 사람들이 일순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아우성을 쳤다. 스프링클러가 터져 천장에선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난 어린 아들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는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빠져 나가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았다. 
 그 때였다.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옆 공간에서 불길이 솟구쳤고, 거무튀튀한 연기가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로 인해 호흡이 곤란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더욱 아우성이었다. 도저히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서둘러 밖으로 빠져 나가려 해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갈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검은 연기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자리 잡으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서둘러 안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은 연기로 인해 호흡이 힘들었다. 어린 아들은 양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발을 동동 굴러댔다. 그런 어린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여보, 불, 불이 난 모양이에요.”
 “뭐, 불? 그럼 당신 지금 스포츠 센터에 있는 거야?”
 “…네. 하영이와 함께 있어요.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뭐?”
 난 어지럼증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온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난 어린 아들을 끌어안았다. 어린 아들이 호흡 때문에 괴로워했다.
“당신 내 말 잘 들어! 나 지금 출동 중이야! 조금 후면 현장에 도착할 거야. 그 때까지 잘 견디고 있어. 우선 손수건 있지? 손수건에 물을 적셔 코와 입을 틀어 먹고 연기가 들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 최대한 연기를 피하도록 하라고. 아, 스프링클러가 터져 물이 쏟아지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해. 화상을 입지 않도록 몸에 물을 충분히 적시도록 하라고. 사람들 때문에 정신없겠지만, 조금만, 조금만 버티고 있어. 알았지?”
 남편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때였다. 중천장이 떨어져 내리면서 오른쪽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검붉은 핏물이 솟구쳤지만, 아파할 틈도 없이 남편의 지시에 따라 손수건을 꺼내 물을 뭍인 후 아들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남편에 지시에 따라 스프링클러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프링클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그나마 뜨거운 열기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밀려드는 열기에 견딜 수가 없었다.
 ‘삐뽀삐뽀, 삐뽀삐뽀.’ 
 잠시 후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고, 점점 더해지는 열기 속에서 온 몸이 잉걸불에 데인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정말 이대로 죽는 걸까!’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화염을 피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흡이 깊어지면 질수록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정신은 혼미해져만 갔다. 혼미해지는 정신 가운데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소리도 점점 들려오지 않았다. 난 그렇게 어린 아들을 품에 끌어안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잃는 순간에도 친정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여보! 정신 차려!”
 남편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어린 아들과 함께 앰뷸런스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후우우, 이제 정신이 좀 드는 모양이네!”
 “……여, 여보!”
 “나 당신 죽는 줄 알았어. 그나마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정말 하늘이 도우신 거야.”
 남편의 말과 손길에 가슴이 울컥거리더니 눈물이 솟구쳤다. 다행이 어린 아들도 안정을 찾았다. 어린 아들이 손을 꼭 쥔 채 흐느껴 울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욱신거렸다. 다리를 꿈틀거리자 남편이 내 오른쪽 다리를 어루만지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리에 화상을 좀 입었어. 아무래도 흉이 좀 남을 것 같아! 어쩌지?”
 내 다리를 매만지며 안타까워하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나와 어린 아들을 살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그제야 소방관인 남편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어이! 이 소방사!”
 앰뷸런스 뒤에서 남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나와 아들을 일별한 뒤 앰뷸런스에서 빠져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은 나와 아들의 손을 꼭 쥐었다. 남편의 손이 거칠었지만, 참 따뜻했다.
 “여보! 아무래도 나 다시 현장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네?”
 “아직 현장을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야.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해내 와야지.”
 남편의 말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편에게 가지 않으면 안 되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서재에 걸린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이란 글귀가 생각나 남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남편을 막아 세우는 것은 소방관의 아내로서 결코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친정엄마도 화재현장으로 달려가시는 친정아버지 앞을 절대 막아서지 않으셨다.
 “여보! 너무 늦지 마세요. 하영이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알았죠?”
 “그래, 서둘러 돌아올 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나와 어린 아들을 뒤로 한 채 화재 현장을 향해 뛰어 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워보였다. 
 남편은 화재현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급기야 왼 어깨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지만,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방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음에 후회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진정한 소방관의 아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때 그 사고로 인하여 오른쪽 정강이게 깊은 상처를 얻게 되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였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는 상처임엔 틀림이 없었다. 소방관의 아내로서 몸에 화상 하나 쯤 지나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 나도 모르게 한동안 씩씩 웃고 말았다. 분명한 것은 난 어찌되었든 소방관의 아내가 아니던가.
 “여보, 나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잠시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 어렵사리 입을 열어 물었다.
 “……?”
 갑작스런 내 물음에 남편은 대답대신 한동안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재난상황에서 그저 맘 편히 지낼 수만 없어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하겠다고 하니 남편도 일말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당신, 가장 늦게 나올 자신 있어?”
 “……네?”
 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이 무슨 뜻인지 당신도 잘 알지? 당신은 소방관의 아내이자 간호사잖아. 이왕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단 마음을 먹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하겠단 마음으로 코로나 의료진에 지원하란 얘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남편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그랬다. 바보스러우리만치 자신의 사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남편이 아니던가. 그런 남편의 아내인 나 역시 기왕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혹 코로나로 인해 내 목숨을 잃게 된다할지라도…….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소방관인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요. 간호사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 아니겠어요. 당신이 그리 원한다면 코로나가 종식되는 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을 테니 혼자 아이들이나 잘 키우세요. 아시겠어요? 호호호!”
 “뭐, 뭐라고? 이 사람이!”
 남편과 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목젖이 보일 정도로 함박웃음을 웃어댔다.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나 사고로 인해 무수히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너무 아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코로나에 대처를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노고 때문 아니겠는가. 나 역시 코로나가 하루속히 종식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간호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다.  하루속히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오늘도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할 것이다. 친정아버지와 남편의 좌우명이 문득 생각난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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