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리핑] 재난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법

언론 속 4.16
작성자
4・16재단
작성일
2023-11-21 10:13
조회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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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기사 내용

 

얼마 전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제정하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오래전부터 여러 번 외쳐왔던 구호, 익숙해져 귀에 익을 만큼 반복되는 호소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토록 오랫동안 외쳐왔음에도 미처 이뤄지지 못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동안 재난,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외쳐왔다. 수많은 사건 속에서 아프게 배워왔음에도 여전히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를 살아간다. 변화가 너무 더디게만 보여 마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무력감까지 들곤 한다. 안전한 사회를 요구해온 지난 시간 동안 변한 것과 여전히 변해야 할 것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 변한 것과 변해야 할 것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한국사회에서 반복되어온 재난, 산재를 겪으며 개별 사건에 대응하는 일을 넘어 안전한 사회에 대한 지향을 확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넓어졌다.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커졌다. 이러한 요구가 모여 지난 9월 28일, 안전권 명시, 조사기구 설치, 피해자 권리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의 청원인을 모으며 성사되었다. 2020년 안전기본법,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된 데 이어 최근 성사된 국민동의청원까지, 현재 국회에는 3개의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원래 없던 권리가 생겨나지도 않고, 법이 없다고 해서 있는 권리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생명과 안전의 권리, 재난 피해자의 권리는 이미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다. 호소하는 피해자에서 권리의 주체로 나아간 재난 피해자들의 투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재난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인식,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국가의 책무에 대한 요구도 점점 넓어져 왔다. 이는 재난을 먼저 겪었던 피해자들의 투쟁, 이와 함께 해온 사회운동이 만들어온 것이다.

동시에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을 때 518 유가족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그리고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세월호 유가족이 같은 말을 다시 이태원 유가족에게 건넸다. 정부와 책임 당국은 여전히 재난을 개인화하며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책임을 돌리고, 구조적 원인을 밝히며 재발방지책을 세우는 대신 미봉책을 내놓기에 급급하다. 여전히 재난 피해자들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배려한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고수하기도 한다. 재난 피해자가 사회의 불의를 먼저 발견하고, 끝까지 질문하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애써 외면한다. 재난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 왔음에도 피해자가 겪어야만 하는 시간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문제는 재난을 겪으며 달라지고 만들어온 변화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국가와 정책에 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모인 배경이다. (후략)

 

비마이너 / 어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