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재난피해자지원센터에서 ‘만화’를 중심으로 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연사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엄기호 교수로, ‘재난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경험: 구조하지 않는 국가, 탈출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함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수업인 ‘참사와 서사’를 통해 학생들이 세월호참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를 소개했습니다.
수업 참사와 서사는 재난 피해자 공간에 가서 강의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재난을 조금 더 확장해서 그거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재난이나 참사에 대해 연관해 강의를 듣고 상상력을 더해서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4일까지, 재난피해자지원센터에서는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바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기획전시 <암흑을 직시하는 동시대인>인데요. 이번 전시는 총 7명의 학생이 함께했습니다. 웹툰 형태로 된 작품은 PC를 통해 스크롤을 내리며 읽을 수 있고, 만화책으로도 나와 만화책을 넘기며 볼 수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앞서 수업을 진행했던 엄기호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이번 전시의 목적과 의의, 그리고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나의 이름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말은 존재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재난을 당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저 남이 아니라 사실은 거미줄이 흔들릴 때 그 줄의 어디에 있든 미세하게라도 같이 흔들리는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다. 다만,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그 연결이 강할 때는 ‘연결됨’을 느끼고 인지하고 행동하지만, 그 연결을 부를 이름이 없을 때는 그렇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부를 이름’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감각과 인지에서 매우 중요하다. 연결을 부를 이름이 없다면 흔들림은 그저 일회적인 것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반대로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흔들림을 강력하게 느끼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 이름을 찾으려고 한다.


너의 이름은?
반대가 있다. 이 연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연결이 강할수록, 그리고 그 연결을 감지하게 하는 사건이 강력할수록, 나에게 너의 이름만 남고 나의 이름은 지워진다.
사회는 그것이 유가족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평생을 전태일의 어머니로 살았다. 그분 스스로가 너무나 훌륭한 노동운동가였지만 그의 모든 노동 운동에 대한 헌신은 아들이 전태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아들의 몫으로 돌려졌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선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전시는 참사 이후 남은 이들이 어떻게 ‘나의 이름’을 삼키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삼킬 수 밖에 없는 것은 곁을 고립시키고, 곁에 ‘너’에 대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부재에 따른 결과다. 전시에 오신 분들이 사회 없이 곁에 선 이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생각하며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곁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기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라는 것을 생각해주시기를 청한다.

이 서문을 읽고 나서 전시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전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만화 ‘당연한 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수업을 듣다가 급식 시간이 찾아오고…
그러다가 독감에 걸려 아프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고… 어쩌면 당연한 일을 우리는 당연함으로 남겨두고 있지 않을까. 만화는 ‘당연함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당연(當然)이라는 말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나 함축된 의미였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라는 작품 역시 상당히 많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서둘러 학교로 떠나는 학생의 모습과 ‘탁!’이라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뀝니다. 이후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팻말이 눈에 띕니다. ‘다녀오겠습니다’와 ‘다녀왔어’로 장면이 연결되지만, 그사이에 우리는 대략적으로 어떠한 참사가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죠.
청년기자단 조수연 기자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