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김복희] 우리들의 팔복을 위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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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2023년 5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복희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우리들의 팔복을 위해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의 시 <팔복-마태복음 5장 3~12>이다. 이 시를 가끔 암송한다. 암송하다보면 같은 구절을 여덟 번 외어야 할 것을 열 번 외던가, 열두 번을 외던가, 하염없이 외던가 할 때도 있다. 확실한 것은 저 구절을 외우면 외울수록 마음이 잠잠해진다는 것이다. 슬퍼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슬퍼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다짐하게 된다.

슬퍼하는 자가 어째서 복이 있지?
어려서 읽었을 때는 참 모를 소리다 싶었기에, 이런 것도 시인가 싶었으므로, 슬쩍 밀어두기도 했던 시였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진짜 여덟 가지 복은 원래 다음 내용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여기서 윤동주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구절을 가져와 다른 구절들을 다 대체해, 저 시를 쓴 것이다.
위로를 받겠다는 말 대신에 저희가 영원히 슬퍼하겠다는 말을 와야했던 까닭을, 2023년에 이르러서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나는 상갓집에 있었다. 상갓집에 앉아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 뉴스 속보를 봤다. 그리고 며칠 내내 뉴스를 찾아보며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가고 시를 썼다. 등단하기 전이었으므로, 응모작을 모으려고 더 열심히 썼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자주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분노로 녹이며 광화문을 지나다녔다. 많은,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도 무색하게, 겨울이 됐다. 그 추운 봄에서 겨울로 계절이 갑자기 좁혀 앉은 것처럼,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시간이 아주 길어져서, 그 안에서 계속 춥다 추워 하면서 오래오래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저희가 영원히 화를 내야할 것 같았다. 화를 내지 않으면 이대로 얼어붙어 버릴 것 같았다. 잊혀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해 겨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등단을 하면, 등단소감을 써서 신문사에 보내야 한다. 나는 등단소감에 자주 슬프고 화가 나지만, 무서워서 화를 잘 못내겠다고 썼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유연한 건축물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도 썼다. 등단 기념 시상식 자리에서 소감도 아주 짧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공적 자리에서 제대로 화를 내고 싶었는데, 당시의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에둘러 말했고, 짧게만 말할 수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울고, 혼자 있을 때 화내는 것만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벌써 2023년이 왔다. 지금의 나는 좀 더 크게 화내고 이제는 슬퍼함을 감추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슬퍼하고 아직도 화내고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화낼 것이고 영원히 슬퍼할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천국에 가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도 없고 똑똑하지 못한 내가 유일하게 아직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슬퍼하는 일이어서 슬픔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윤동주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다른 구절을 다 지우고 반복해 놓은 까닭이, 사람이 혼자 슬퍼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퍼하는 이가 있다면, 함께 슬퍼하라는 뜻 같다. 나는 잊지 않는 사람들 옆에서 듣고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기억과 슬픔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고 잊지 않고 싶다. 나는 우리들의 팔복을 영원히 남기고 싶다. 내 옆 사람에게, 그 옆 사람에게도. 윤동주가 그랬듯이. 영원히.

-끝

 

……

 

김복희(시인)
시인,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작품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
산문집 <노래하는 복희>,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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