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김신지]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기억한다는 말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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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신 지


7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신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기억한다는 말 >

 

 

비바람이 불던 저녁,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를 봤어. 영화는 제이크 가족과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면서 시작돼. 제이크는 양을 수리하려는 과정에서 그의 안에 있던 기억 장치를 전달받아. 안드로이드는 하루에 3초 정도의 기억을 저장하는데, 어떤 순간들을 선별해 기록하는지 알고리듬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다는 설명과 함께. 어느 새벽, 제이크는 홀로 그것을 열어봐. 영화의 배경인 미래에서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메모리에 접속하면 광활한 우주를 닮은 공간에 양의 기억이 별처럼 흩뿌려져 있고, 어느 한 점을 선택해 ‘재생’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녹화된 장면이 펼쳐지니까. 양이 과연 무엇을 저장했을 것 같아? 그가 기억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울기 시작한 장면이야. 하나의 별이 열릴 때마다 그 속에 담겨 있던 건 그저 아름다운 찰나들이었거든. 오후의 햇빛이 스며든 방 안, 나뭇잎 그림자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벽,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의 옆모습, 숲속을 걷다 돌아보는 동생의 표정. 3초 남짓 짧게 녹화된 장면들. 어쩌면 양의 영혼이 깜빡 깜빡 켜졌을 순간들. 안드로이드에게 무슨 영혼이냐고? 아니야, 기억을 들여다보는 순간 알아. 영혼 없이 남길 수 없는 장면이란 걸. 어쩌면 기억하는 존재야말로, 영혼이 있는 존재라는 걸. 스크린 속 장면은 내내 아름답고 오래 전 좋아했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만일 한 존재가 저 메모리 속에 압축된 거라면? 우리가 실은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게 전부라면?

그런 생각을 해봤어.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의 기억을 열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가까웠던 사이여도, 그 사람의 기억은 너무나 그 사람만의 것이어서 나는 슬프고도 당혹스럽겠지. 이런 걸 기억했구나. 이런 순간을 좋아했구나. 이 사람, 마음이 오래도록 여기에 머물렀구나. 그러다 끝내는 어째서 이 깊고 넓은 존재가 사라졌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울게 되겠지. 알아, 이건 가정일 뿐이라는 거. 기억을 열람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 불가능 앞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대신 기억하면 된다고, 나는 영화를 보다 중얼거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말과 같을 거야. 자기 이름을 쓸 때 첫 획을 어떻게 그었는지, 붕어빵을 어디서부터 먹던 사람이었는지, ‘나중에’ 하는 말 뒤에 어떤 미래를 덧붙이곤 했는지. 구체적인 한 사람이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그건 사라져도 사라진 게 아니지 않을까. 무엇보다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로 이 세계 안에서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런 사람들을 알아. 또 다른 상실을 막고자, 나처럼 슬픈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는 일을 막고자, 슬픔을 연료로 힘을 내는 사람들을.

언젠가 카페 창가에서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다 네가 말했었지. 이제 그만 떼도 되지 않을까, 하고.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때 나는 지겹다는 말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지겹다는 말이 그토록 잔인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지난 몇 년간 반복해서 알았으니까. ‘아직도’ 기억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 잊지 않고서, 잊지 않는 힘으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란 리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그해 봄 서울광장 분향소에 적혔던 수많은 추모 글과 우리가 함께 건 리본, 종이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 어느 밤 나는 그게 궁금해져서 제이크처럼 흩어진 별들을 열어본 적 있어. 그리고 행방을 알았지.

“으레 버려졌겠거니,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다행히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모든 것은 서울시에서 잘 보존하고 있고, 일부는 서울도서관 3층에 있는 서울기록문화관 안의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분향소 기록들은 서울기록원에 영구 보존됩니다. 당시 분향소의 기록을 나중에 꼼꼼히 정리해보니 추모 리본은 83,000여 개, 추모 종이배는 450여 개, 추모 글은 12,900여 장, 그림이나 문서도 수백여 점이었습니다.”

서울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찾은 문장이야. 나는 저 말이 좋았어. ‘으레’ 버려졌다고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보존되고 있다는 말. 지겹다는 말과 가장 멀리 있는 말. 당연히 기억할 거고 영구히 보존할 거라는 말이 새로운 봄을 건너는 위로가 되었던 걸 기억해. 개인이 한 일이 아니라 공공의 결정이어서 더욱. 그건 우리가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니까.

고작 기억인데, 함께 기억하는 게 무얼 바꿀 수 있느냐고? 그럴 때 나는 이 문장을 떠올려. 동굴인 줄 알고 웅크려 있었지만 발을 떼었더니 실은 터널이더라는 말. 유가족의 상실과 절망보다 캄캄한 어둠이 있을까. 하지만 소실점 끝에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보이는 순간 동굴은 터널이 될 거야. 한 사람이 캄캄한 동굴 속에 있다 느낄 때, 희미한 빛이 되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실감일지 몰라. 나의 슬픔 곁에 누군가 있다는 인기척일지 몰라. 같이 걷는다 해서 길이 짧아질 리야 없겠지. 하지만 이 지난함에 끝이 있을까 싶을 때는, 우리가 끝을 향해 걷는 게 아니라 빛을 향해 걷는 거라고 생각해. 발밑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끝끝내 빛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라고.

네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길게 썼어.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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