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김금희] 아이들에게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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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2025년 3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금희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아이들에게>

2014년 4월 16일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나는 11년이 지나서야 진짜 내 마음을 꺼내 편지를 써. 늘 미안하기만 하던 앙상한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 내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어. 2014년 이후 ‘사람’을 구하지 못한 이 나라에 대해 잊은 적이 없단다. 잊은 적이 없는 건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 그 죄책감, 비통함, 자기 보호에만 혈안이던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그리고 유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너희가 떠나고 몇 년간 너희를 기억하는 304낭독회를 조직해 참여했어. 그러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의 2014년 4월 16일에 대해 들었지. 그중에는 너희의 친구도 있었고 선생님도 계셨어. 울었던 기억이 자주 나는구나. 광장에서 울고 연희문학창작촌 숲에서 울고 단원고 교정에서 울고 대학도서관과 서점, 칼국수집, 쫓겨나기 직전의 카페,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도 울었지.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도서관장을 찾아갔던 날이 생각 난다. 그는 나에게 “당연히 저는 해드리고 싶죠.” 하며 웃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항의가 엄청 들어와요. 추천 책 하나 선정하는 데도 양쪽을 다 고려해야 해요.” 집무실 통창으로는 아주 멋진 산등성이가 보였지. 그런 그의 기계적인 중립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 딸을 잃고 단식을 해야 했던 한 아버지를 만나며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했던 그 말이 없었다면 그 시절은 더 희망 없이 기억되었을지도 몰라.
무엇이 더 중요한가, 범법자는 누구이며 우리가 보호해야 할 피해자는 누구인가, 죄의 경중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성찰 없이 억지 평형을 만드는 중립. 나는 그것이 포용과는 거리가 먼, 마비 된 마음이라 생각해.
내가 통과한 11년은 너희를 지키지 못한 이 사회와의 갈등과 일시적 화해의 반복이었어. 2016년 겨울, 너희를 태운 고래가 사람들의 손과 손으로 이어져 밤의 광장을 밝히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동안 믿지 못하던 타인들의 속마음을 비로소 읽은 기분이었거든. 침몰선에서 사망한 이들이 무려 304명이라는 사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엄정한 사실, 이후 유가족들을 냉대하고 폭력적으로 적대하던 무리들을 처벌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모든 사실에 부끄럽고 괴로웠던 이들이 광장에 모였다고 생각했지. 이후 여러 번 실망하고 안도도 했지만 그 서사 속에는 언제나 4월 16일이 있었어. 수학여행길에 오른 너희의 그날이 말이야.
너희를 보내고 한동안 집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걸로 기억해. 광장에서 낭독회를 열면서 겨우겨우 입을 떼고 나서볼 수 있었지. 낭독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너희를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이들이었지만 때론 내게 어떤 분심(憤心)을 일으키기도 했어. 누군가는 너희에 대한 자기 마음보다 지식을 뽐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누군가는 고통 앞에 절규하는 자기 모습에 도취된 것처럼도 보였지. 그런 평가를 내가 왜 하고 있는지 반성하다가도 불쑥불쑥 화가 났어.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낭독할 때는 매우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버리고는 황망히 내려오곤 했지.
시간이 지나니 그 또한 내 무력감의 일부 아니었을까 싶어. 방향을 잘못 찾은 분노이었겠지 싶어. 나 같은 어른도 자기가 뭘 하는지를 모르곤 한단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는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살았어. 어쩌면 늘 우는 기분이었는지도 몰라.

304낭독회 백번째 날, 2023년 1월 28일 너희 동네에 갔어. 장소는 416기억전시관이었는데 너희가 자주 드나들던 PC방이 있던 건물이라 친근하게 느껴졌어. 날이 추워 길이 얼고 공원 쪽 길가에 차들이 줄줄이 서있어 운전에 바짝 신경 써야 했어. 그런 일상적 풍경 하나하나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나는 그곳이 너희 동네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돌아봤어. 모르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기억해온 아이들의 집이 ‘있는’ 곳. 낭독회가 끝나고 어머니들과 같이 행사 장소를 정리했어.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일일이 손으로 떼어야 했는데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었지. 일하는 날 지켜보시다 도구를 빌려주셨던 분이 생각 나. 키가 커서 높은 데까지 잘 하시네,라고 하신 말씀이. 사실 나는 그렇게 큰 키는 아닌데 기분 좋으라는 칭찬이셨겠지? 너희 동네에서 들은 그 말들이 아직도 따뜻하게 내 마음속에 있어.
아이들에게,라는 제목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어. 이번에는 솔직히 써보자고 마음 먹었지. 슬펐던 것, 화났던 것, 감동했던 것, 용서가 안 되는 것. 2014년 이후로도 나는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어갔고 그만큼 감정을 적당히 숨겨야 할 일도 늘었지만, 나약하다 누가 흉보더라도 솔직히 꺼내야지 별렀어. 너희를 생각하면 매번 파도가 일듯 고통이 찾아온다고, 우리는 여전히 슬픔 속에 있다고. 슬픔의 힘으로라도 뭔가를 해보려고 애쓰지만 그날로 돌아가 너희의 손을 힘껏 잡고 나오는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최근 종교를 갖게 된 나는 이제 또다른 힘에 기대 너희들이 하늘에서 반짝이기를 기도해. 하느님이 너희를 바짝 끌어안고 계시리라 확신해. 엄마, 아빠, 언니, 오빠, 형,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삼촌, 사촌,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종종 꿈으로 안부 전해줘. 우리는 언제나 너희들의 그런 인사를 그리워해. 우리는 여전히 너희를 구하는 삶 속에 있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김금희

 

김금희 (소설가)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일상을 세공하며 인물들의 마음을 보듬는 작품을 써왔으며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승옥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식물적 낙관』, 『대온실 수리 보고서』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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