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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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2024년 10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박일환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수정이 아빠의 십자수를 생각하며>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글을 썼습니다.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소설을 쓰고, 약전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홀로 단원고와 그 주변 동네를 찾아 나서기도 했고, 화랑유원지 분향소와 기억전시관, 팽목항, 희생자들을 안치한 몇 군데의 추모공원, 인양한 세월호를 세워 놓은 목포신항 거치소에도 다녀왔습니다. 교사이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고, 그렇게 쓴 글들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기억 작업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다 한들 나의 슬픔과 나의 분노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한끝에라도 가 닿을 수 있었을까,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알량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자료를 보고 많은 사연을 접했습니다. 잊히지 않는 사연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김수정 학생의 아빠 김종근 씨의 십자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도 했습니다.
아빠의 십자수
-2학년 2반 김수정
수정아, 보고 있니?
아빠가 네 얼굴을 십자수로 떴어.
하루에 9시간씩 11개월이나
십자수 바늘을 붙들고 있었어.
7만 7천 땀, 그리고 4만 땀
십자수 얼굴 두 개에 들어간 땀이
너를 향한 그리움이란 걸
수정아, 너도 알고 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던 마음
수학여행비에서 만 원을 떼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간 마음
영상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카메라 사달라는 소리조차 안 하던 마음
늦게 일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마음
잊지 못해서, 아니 잊을 수 없어서
네 얼굴 보고 또 보면서
한 땀 한 땀 바늘을 움직였어.
그렇게라도 네 마음에 가닿고 싶었어.
아빠의 마음이 너에게 포개지고
네 마음이 아빠에게 포개지는 동안
눈이 생기고 코가 생기고 입술이 생기면서
너는 십자수 속에서 다시 태어났어.
수정아, 다시 한번 웃어 보렴.
그 모습 그대로
아빠 품을 향해 활짝 뛰어들어 보렴.
십자수를 놓는 바늘 한 땀은 그냥 한 땀이 아니라 딸을 그리워하는 아빠가 피눈물을 찍어가며 놓는 한 땀이었을 겁니다. 그토록 사무치는 고통 곁에 감히 어떤 위로의 말을 놓아둘 수 있을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 슬픔의 무게가 조금은 줄었을까요? 혹시라도 그렇게 묻거나 말하는 이가 있다면, 슬픔의 싹은 도려낼 수도 없거니와 그러려고 할수록 더 아프게 자라나기 마련이며, 그저 견디고 견디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말밖에 건넬 게 없습니다. 망각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걸까요? 작년 4월 김종근 씨는 페이스북에 “너의 목소리가 생각이 나지 않아 너무 무섭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무섭다고 하는 그 마음을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부평구 평온로 61번지에 자리한 인천가족공원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습니다.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만 희생당한 게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따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추모관 안에 일반 탑승객뿐만 아니라 승무원들, 구조 작업 중 안타깝게 돌아가신 잠수사들의 영정을 같이 모시고 있다는 사실도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저도 뒤늦게야 그런 사실을 안 뒤 몇 차례 방문했습니다. 그동안 관심의 축이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4월 16일이 되면 해마다 추모 행사를 합니다. 그 추모 행사장에서 다 같이 일어나 국민의례를 할 때, 저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을 수 없었습니다. 인천시장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시의원, 지역 기관장과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석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정해진 임기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꼬박꼬박 국회가 열리고, 온갖 국가기관이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서 국가의 존재가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너 나 할 것 없이 목 놓아 소리쳤지만 국가가 달라졌다는 소식은 여태 듣지 못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통해 여전히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아프게 깨달아야 했을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꿨는지 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정이의 아빠 김종근 씨가 11만 땀이 넘도록 딸의 얼굴을 십자수로 뜬 그 마음과 아픔을 헤아리는 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겹다”거나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직 시작도 못 했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참사가 일상이 된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추모와 애도에는 기한이 없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일환(시인)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문학이 사회와 역사, 특히 그 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랫동안 국어교사로 일했다.
작품
시집 『만렙을 찍을 때까지』, 『귀를 접다』, 교양서 『어휘 늘리는 법』, 청소년소설 『바다로 간 별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