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은유]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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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2024년 5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은유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

나의 동지이자 친구랑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베트남・캄보디아 문학기행 안내를 보고 호기심이 일던 차에 친구에게 제안했다. 우리의 첫 해외 나들이로 의미 있을 것 같은데 여기 갈까? 친구는 여정에 있는 ‘앙코르와트’에 꼭 가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응했다. 네가 가면 나도 갈게.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일정표를 자세히 보니까 문학 관련 행사가 많네. 나 같은 비문학인은 재미가 덜할 것 같아. 그에 비하면 참가비가 비싼 편인데 이 정도 돈을 들일 거면 나중에 우리 둘이 가는 게 낫지 않겠니?”

실은 여행 경비는 내게도 떨쳐지지 않는 고민거리였다. 돈과 시간이 늘 모자란 현대인에게 ‘가성비’는 선택의 핵심 요소다. 나 역시 여행처럼 목돈이 나가는 일엔 요리조리 셈해보게 되는데, 이번엔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돈에 앞서는 기준, 나중은 없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그즈음 나는 영화 <너와 나>를 본 여운에 휩싸여서 내내 약간은 울먹이는 마음으로 지냈다. 아마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친구와 같이 여행을 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서로 전하고 싶은 말을 담은 채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맞다. 슬픔의 대명사가 된 그 수학여행이다. 시간적 배경은 2014년 4월 15일, 공간적 배경은 안산. 정보를 거의 모르고 봤다가 나는 속수무책 그날로 돌아갔다.

세월호 10년, 그동안 세월호를 다룬 책과 영화가 여러 편 나왔다. 영화 <생일>부터 <장기자랑>까지,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부터 생존 학생이 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까지. 나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보는 것으로 일상의 애도를 이어갔고 질문을 붙들었다. 무고한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와 나>는 다른 작품과 결이 좀 달랐다. ‘세월호 영화’가 아닌 ‘사랑 영화’인데 주인공이 세월호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물음이 솟구쳤다.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대체 누가 죽었는가로.

내 머릿속 세월호 아이들의 존재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자매나 형제, 친구, 단원고 학생, 희생자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들은 사랑에 애태우고 눈물짓고 노래하고 포옹하는 열일곱 살 사랑의 주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희생자’는 단지 희생자가 아니라 사람이거늘. 여지껏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다. 304명의 죽음은 304가지 사랑의 소멸이라는 것. 304개의 전구가 꺼진 만큼 세상은 어두워졌겠고 304개의 사랑 이야기가 중단된 만큼 인간 정신은 쪼그라들었다. 이게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한 편의 영화는 그렇게 세월호를 통해 우리 공동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귀한 사물을 다루듯 일렁이는 빛으로 감싼 채 보여주면서 나를 사랑 앞에 데려다 놓았다.

<너와 나>를 만든 조현철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앞둔 사랑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꼭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영화에서 하은과 세미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고, 우리 일상 어디에나 있고 존재하는 어떤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과 죽음의 공통점일 것이다. 일상 어디에나 있고 어떤 방식으로도 존재하는 것.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으면 안 보인다는 사실까지도 닮았다. 영화에도 죽음에 관한 메타포가 생활 동선 안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세미의 발치에 새의 죽음이 걸리고, 장례 화환의 행렬이 들뜬 아이들의 등 뒤로 지나간다. 나는 극장에 앉아 스크린으로 꼼짝없이 직면했다. 삶의 배경화면으로 이미 거기 와 있는 죽음과, 죽기 전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소소한 일들과 일렁이는 감정의 귀중함을 말이다.

그날 나는 망설이는 친구에게 간절함 한 스푼 얹어 말하고 있었다. “다음에 가면 좋겠지만 우리가 나중에 아플 수도 있고 또 싸울 수도 있어. 다 변하더라.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틀어지고 가까웠던 친구랑도 멀어지고, 멀쩡했던 사람도 병에 걸리고. 같이 여행을 가도 좋을 우정, 건강, 시간, 마음, 여윳돈… 이런 조건이 너와 나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게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지 않을까. 거기다가 가성비까지 완벽한 여행의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몰라. 완벽한 삶이 없듯이.”

친구는 설득됐다며 팔랑귀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웃었다. 나는 나의 진심을 받아준 친구가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아픔은 한 세대를 성장시킨다. 고통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이치일 거다. 군부독재를 거치며 민주주의를 배우고 아우슈비츠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세월호 참사도 내게 커다란 배움과 각성을 안겨주었다. 사회에 큰 구멍을 만든 기성세대로서의 면목 없음,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들리는 비명을 수신하는 일의 중요함, 유가족의 말씀대로 내 자식만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깨달음 같은 것들. 남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의식에 눈뜬 것도 세월호 덕분이다.

그래서 관용구처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무엇을 잊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했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죽음과 더 가까운 나이에 이르렀고 그러면서 조금씩 선명해짐을 느낀다. 무엇을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지. 그건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랑이다. 살고자 했던 삶이다. 세미와 하은이 했고, 하고자 했던 사랑을 잊지 않고 싶다.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겠구나 다짐한다.

영화에서 세미는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뜻깊게 보낸다. “오늘은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라며 다가가고 고백하는 일로 하루를 온전히 다 쓴다. 이 설정은 무척 아프지만 다행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닮고 싶은 삶이다. 그래서 세미가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연습시키듯이 나도 나를 길들이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삶의 유한성을 우선 고려하기. 이것이 생의 마지막 일이 되어도 좋은가. 그럴 만하다면 실체도 없는 다음으로 미루지 말기. 세상이 주입하는 효율과 계산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기. 먼저 손 내밀기.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한 번 더 시도하기.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같이 싸울 친구를 곁에 두기. 침투하고 침투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그리하여 내 삶의 최후가 사랑의 일이면 좋겠다. 세월호 아이들의 사랑의 역사를 이어 쓸 수 있도록.

은유(르포 작가)

책과 사람이 있는 현장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좋은 글은 세상을 낫게 만든다는 믿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며, ‘메타포라’, ‘감응의 글쓰기’ 등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품

『해방의 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있지만 없는 아이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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