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이병국] 안녕을 바라는 마음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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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2024년 9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이병국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안녕을 바라는 마음>

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던 날이 있다. 친구는 2분단 맨 앞 오른쪽 자리에 앉았고 나는 3분단 맨 앞 왼쪽에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친구는 나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가정하고 엄마와 여자친구에게 작별 인사하듯 적어주길 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친구는 엄마가 여자친구와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아서 좀 강하게 반항하는 척, 제 뜻을 이루어내려고 작전을 세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친구의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내가 어떤 내용으로 썼는지 모르겠다. 그저 친구의 부탁을 조금은 장난처럼, 그저 가볍게 생각하며 죽음을 앞둔 이를 상상하곤 친구가 건네준 미색 편지지에 날카로운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적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유서를 쓰듯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도 그 끝에 국화 한 송이가 놓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거였다. 시간이 흘러 첫 시집 표제작이 된 시를 쓰던 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양, 시 안에 친구의 유서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얼굴도 이름도 아득하기만 한, 고등학교 2학년 그곳에 머물러 있는 그의 안녕을 바라며 기억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10년 전, 나는 학원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떠 뉴스를 보는 순간에도 나는 곧 있을 학생들의 중간고사 대비 수업을 생각했고, 그들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목록화하고 있었다. ‘전원 구조’라는 단어에 마음을 놓으며 출근해서야 그것이 오보임을 알았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확인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울기만 했다. 그럼에도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화면 앞에서 구조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강의실에 모여 있는 학생들과 기도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무색할 만큼 정부의 대처는 무능했고 희생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아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스스로를 기만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아무렇지 않은 삶은 사실 없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입을 빌려 말한 것처럼 “삶 속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만,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밝히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될 뿐.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안녕을 기리기 위해 304낭독회에 처음 참여한 것은 2015년 3월이었다. 겨울을 지나 봄에 닿는 시기였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은폐하려는 이들과 희생자를 혐오하는 이들을 상대로 한 지난한 투쟁으로 광장은 스산하기만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낭독한 시는 「가위-우리는 잊기로 했다」였다. 잊을 수 없는 일이기에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잊기로 했다”고 읊었다. 이겨내는 법이 없는 우리를 견디며 잊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잊지 않기 위해 잊음을 변명처럼 내어놓았다. 역설과 시적 아이러니가 부끄러움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쓰고 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 시집 『이곳의 안녕』(파란 2018) 시인의 말에 적은 것처럼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신의 몰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가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에 기댄 안온함이 아니기를, 비교 우위의 삶이 아니라 온전히 다행인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모두의 안녕을 바라야만 한다고 믿었다. 우리는 언제쯤 온전한 안녕으로 다시 봄을 다시 맞게 될까.

이듬해인 2016년에 ‘기억저장소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사진관 겸 타투샵을 알게 되었다. 흔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때마침 마주한 우연으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기억을 새겨두고 싶었다. 어쩌면 304낭독회에서 참여한 모두가 함께 읽는 마지막 문장처럼 계속 읽고 쓰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만한 실감의 기록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왼쪽 손목에 단순한 모양의 조그만 배 한 척을, 오른쪽 발목에 역시 조그맣게 닻을 새겼다. 그 안에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희생자를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우리의 다행한 삶이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을 잠식하지 않고 그 곁에서 닻을 내리고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던 시절로부터 30년이 흘러 내 몸에 쓴 죽음의 기록이자 그 너머를 살피는 공감의 인장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한 참사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이태원에서, 오송에서 벌어져도 그 책임자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슬퍼하고 분노한 자리의 노란색 리본을 아직 떼지도 못했는데 그 자리에 다시 보라색 리본을 덧단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이곳의 안녕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봄볕의 따스함과 가을볕의 안온함을 구부러진 그림자에 꾹꾹 담아 나누고만 싶다.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9년 내일의 한국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

작품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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