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최민석] 마음의 방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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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2025년 2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최민석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마음의 방>

삶에는 종종 예기치 못한 순간이 닥친다. 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치니, 폭설이 쏟아진다. 강풍까지 동반한 눈은 사선으로 흩날린다. 그 기세가 무서울 지경이다. 설 연휴에 세상이 끝날 듯한 풍경이라니.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봤던 순간도 이랬다. 몇 해 전, 지인의 추천을 떠올리며, 별생각 없이 본 후 깨달았다. 영화의 보기 이전으로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 ‘리’는 늘 우울한 기운을 풍긴다. 잡역부로 일하는데, 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의 어투에 힘도, 의욕도 실려 있지 않다. 젊은 여성 고객이 호감을 표시해도 들은 체 만 체한다. 바(Bar)에서 낯선 여인이 말을 걸어도 별 대꾸 하지 않고, 벽의 한 점만 멍하니 쳐다본다. 그러다, 낯선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면 별안간 ‘왜 쳐다보느냐’며 따지다, 주먹다짐한다.

관객들은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왜 삶의 의지가 전혀 없는지, 그의 내면 어딘가에 응축된 슬픔과 분노가 대체 무엇인지. 그러다, 영화는 중반부에 그의 과거를 보여준다.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파티하는 도중, 아내가 분노한다. ‘새벽 2시인데, 이렇게 떠들면 어떡하느냐’고. ‘애들이 자고 있는데,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고. 이 소리를 들은 친구들은 귀가하고, 리는 풀이 죽은 채 여흥을 달래기 위해 혼자 맥주를 사러 간다. 한데, 집이 추운 것 같아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땔감도 넉넉하게 넣는다. 2층에서 자는 그의 세 아이가 춥지 않게 하려고.

작은 동네에서, 새벽에 맥주를 사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렇기에 리는 20분을 걸어간다. 그 와중에 문득 벽난로에 방지막을 세웠는지 신경이 쓰이지만, 이미 집에서 한참 걸어온 후다. 마침내 맥주를 한 꾸러미 안고 귀가하다, 새벽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어두운 새벽임에도 환한 불빛이 보인다. 그는 불길한 낌새에 달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오열하는 아내를 마주한다. 화마가 집어삼킨 그의 집은 불기둥이 되어, 그의 눈동자에서 이글거린다. 사람들에게 붙잡힌, 아내는 절규한다.
“놓아줘요! 아이들이 있단 말이에요. 아이들이!”

경찰서 취조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리는 무죄로 판명 날 것이란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린다. 무죄인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한 경찰관의 허리띠에 채워진 권총을 낚아채 자기 머리를 겨눈다. 순식간에 경찰들이 달려들어 그를 말리고, 그는 아내와 헤어진 채 고향인 맨체스터를 떠난다. 그렇게 삶의 희망을 모두 상실한 리는 보스턴에서 지하 단칸방을 얻어 생활해 온 것이다. 육체적 호흡은 하지만, 영혼의 교감은 누구와도 하지 않은 채, 살았지만, 죽은 사람처럼 지내온 것이다.

영화를 보며 2014년 4월 16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아무런 글을 쓰지 못했다.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가 쓸모없을 것 같아, 십 년간 장편소설에서 손을 뗐다. 내 상황에 답하듯, 영화는 생의 비참을 겪은 이후의 상황을 조명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듯, 또 비보를 접한 리를 비춘다. 그나마 남은 혈육인 형마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예견치 못한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형은 생전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고교생 아들인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정했다. 이 때문에, 리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이제, 리는 아버지를 잃은 조카 패트릭을 슬픔의 동반자로 여기며, 앞으로의 삶을 헤쳐 나갈까. 그리하여 트라우마를 직면한 채, 패트릭과 함께 서로 위로하며 각자의 상처를 극복할까.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상처도 희석될 것이고, 새로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를 건넬까.

영화는 그런 동화는 현실 세계에 없다는 듯, 기대를 배반한다. 리는 조카 패트릭에게 자신은 후견인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며 솔직히 터놓는다.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미안해.” 조카 패트릭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낸, 형의 친구에게 후견인 자격을 넘겼다고 한다. 패트릭은 리에게 묻는다. “그럼, 삼촌은 어떻게 지낼 거냐?” 리는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가, 잡역부로 살겠다고 한다. 하지만, 패트릭에게 말한다.
“이번에는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어.”
“왜?”
“네가 보스턴의 대학으로 오면, 집에 놀러 오라고. 그리고 접이식 침대도 샀어. 자고 가라고.”
그 말에 패트릭은 대학 따윈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웃으며 삼촌과 함께 길을 걷는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둘이 함께 바다낚시를 떠나며, 말없이 둘 앞에 생처럼 펼쳐진 넓은 바다 위에서 긴 시간을 낚는 듯한 광경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우리는 세월호로 사회적 상처를 겪었고, 그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은 채, 이태원 참사로, 무안 공항에서의 여객기 참사로 재현되곤 한다. 어쩌면, 우리는 ‘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영화는 나에게서 살기 위해 눌렀던 슬픔과 아픔을 모두 소환했다. 그리고 정리할 수 없어 억제했던 감정들도 모두 불러일으켰다. 그렇기에, 영화의 결론을 갈구하듯 기다렸다. 그리고 영화는 말했다. 감정의 처리법에 대해 여전히 해답을 줄 수는 없다고. 아울러, 그 해답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하지만, 오직 하나의 해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슬픔을 나눌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의 방을 내어줘야 한다고. 내 마음의 방을 기꺼이 내어줄 때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그것이 우리와 슬픔에 빠진 자를 가장 깊게 위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2025년 1월 28일에 이 글을 쓴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지 3,940일째 되는 날이다. 세월호 탑승 희생자들에게 마음의 방을 내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나 역시 계속 내 마음의 방을 계속 내어준 채로, 생의 항해를 해나가려 한다.

 

최민석 (소설가)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행하며 쓰는 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뮤지션이기도 하다.

작품

『능력자』, 『풍의 역사』, 『요즘 사는 맛』, 『베를린 일기』, 『마드리드 일기』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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