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태재] 자동차들은 칸에 맞춰 자리를 잡았지만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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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재


6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작가이며 독립서점 책방지기로 활동하는,

 태제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자동차들은 카에 맞춰 자리를 잡았지만>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주차선들이 거뭇하게 그려져 있었다. 한낮이었기에 더욱 뜨겁게 떠오르는 장면. 자동차들은 칸에 맞춰 자리를 잡았지만 사람들은 칸도 자리도 잡지 못한 채 슬프고 있었다. 멈춰진 차에 기대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 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폭삭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 그 사람들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눈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 눈물을 흘릴 겨를은 없었다. 누군가는 옆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갈 길을 가야 했으니까.

2014년 5월이었던 것 같다. 416 합동분향소에 갔을 때는. 분향소는 밖에서 보아도 안에서 보아도 웅장했다. 아마 내가 살면서 가게 될 수많은 장례식장 중에서도 가장 크고 넓은 곳일 터였다. 또 반드시 그래야 하고. 그 크고 넓은 공간이 여백 하나 없이 슬픔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몸속도 빼곡하게 채웠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었고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는 단원고에서 고작 5km 거리에 있었다. 학교 – 전철역을 오가던 셔틀버스는 노선을 변경하여 학교 – 분향소를 오갔고 나도 셔틀버스를 타고 분향소로 향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눈이 질끈 감겼다.

평소의 셔틀버스라면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학우, 쪽잠을 자는 학우, 이어폰을 낀 학우, 다른 학우와 이야기하는 학우가 보였겠지만, 분향소로 향하는 셔틀버스에서는 전부 본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버스는 금세 분향소에 도착했고 학우들이 한 사람씩 빠져나갔다. 먼저 내렸던 학우들 중 한 학우가 중력을 쏠린 듯 갑자기 휘청거렸고, 다른 학우들이 그 학우를 부축했다. 그 학우가 과외로 가르치던 아이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다시 눈이 질끈 감겼다.

분향소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얼굴들이 있었다. 아는 얼굴이 있는 사람들은 그 얼굴 앞에서 쓰러졌다. 나도 줄지은 추모 행렬을 따라 걸으며 움직이지 않는 그 얼굴들을 한 명 한 명 어렵게 보았다.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나로서는, 모르는 사람들의 장례식에 간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 본 적도 없었던 스물다섯이었다. 세상 속에서 사람을 사귀는 방법들을 시험하기 바빴던 나이였고 동시에 사람을 배웅하는 방법에는 무지했던 나이였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말을 건네야 하고 어떤 말을 건네야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헤맸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사고에 대한 분노와 떠난 사람들에 대한 추모도 있기는 했지만, 내 마음 한쪽에는 나에 관한 바람이 먼저 불었다. 다음번에 누군가를 배웅할 때에는 내가 좀 덜 헤매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리고 7년이 지나 서른둘. 7년 사이 몇 번의 배웅을 더 했다. 나의 친구가 사고로 숨을 거두었으며 나의 친구를 길러준 사람이 떠나기도 했다. 나의 어른들을 길러준 사람이 돌아가셨으며 나의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나의 자리를 가리지 않고 왔다. 일자리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소식은 왔고 이제 나는 헤매지 않고 옷장을 연다. 준비된 동작을 해내듯 드라이를 해놓았던 정장의 비닐을 벗기고 까만 구두를 신는다. 셔틀버스가 아니고 직접 운전을 해서 장례식장에 간다. 주차장 자리에 맞춰 주차를 한다.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봉투를 넣는 자리에 봉투를 넣는다. 빈자리에 앉아서 준비해주신 식사를 한다. 자리를 찾고,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지킨다. 덜 헤맨다. 7년 전 바람대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따금 자리잡기 어려운 배웅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배웅하는 사람이 침대가 아닌 곳에서 죽었을 때다. 자리도 없이 떠난 사람을 배웅하는 날이면 나도 중력이 쏠린 듯 휘청거리고 만다. 나는 또 한 번 휘청거리기 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본다. 나의 모든 사람이 누운 자리에서 평평한 채로 죽었으면. 물 속에서 불 속에서 허공 속에서 죽지 않았으면. 폭신한 침대에 누운 채로 마지막 눈을 감기를. 내가 두 발로 서서 배웅할 수 있기를. 슬픔이 자리를 못 잡고 휘청거리지 않게. 삶의 다른 자리에서 슬픔이 불쑥 나타나지 않게.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자리를 잡고, 배웅하는 사람은 배웅하는 자리를 잡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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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월간 십육일에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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