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희정]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재난-지역-공동체, 2024년 9월 15일에 나눈 이야기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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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2024년 1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희정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재난-지공동체, 2024915일에 나눈 이야기>

 

“재난과 혁명, 이 두 현상은 연대와 불확실성, 가능성, 평소에 가동되는 체제들의 전복 같은 측면들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규칙들이 깨지고 많은 문이 열린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펜타그램 2012)

리베카 솔닛의 저작인 <이 폐허를 응시라하>는 재난을 다룬다.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라는 긴 부제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재난과 참사라는 단어가 이토록 일상에 깊이 들어올 줄 몰랐다. 그때는 세월호라는 배를 몰랐고, 이태원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슬프지 않았다. 팬데믹도, 기후 재난도 낯선 용어였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지금,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이것은 재난이 놓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가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고 나눈 이야기들이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이지만, 이야기마다 화자를 구별하지 않았다. 하나의 이야기에도 여러 모임원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우리는 이날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고 덧붙이며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목소리의 구별 없는 서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리베카 솔닛 말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대”이니까. )

 

재난참사당사자

“재난은 시스템을 뒤집어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인 것 같아요. 재난으로부터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하고 지나가선 안 되는 거죠.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이 재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우리의 대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등 되돌아보는 작업이 있어야 하고요. 그건 재난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같이 학습하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국내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후, 그런 배움을 남기는 일이 조금씩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사건이 터지면 공동체가 함께하고 협력하는 일도 벌어지지만,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도 분명 있거든요. 재난의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하는데, 재난이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책을 읽으면서 불편하기도 했어요. 계속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니까, 국내에서 재난으로 불릴만한 사건이 뭐가 있지? 찾아봤는데. 삼풍백화점 붕괴, 남영호 침몰, 서해훼리호 침몰, 대구지하철 화재, 독도 오폭 사건, 순천여수간 열차 탈선 등. 제가 몰랐던 참사도 많더라고요. 책에 나온 재난은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들인데, 국내에선 대규모 재난이 대부분 인재라 불릴만한 것들인 거예요. 그래서일까, 책에서 재해 속에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공동체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뭔가 걸리는 거예요.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은 재난의 경우, 이 분이 말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뭉칠 수 있을까. 의문하면서 책을 읽었어요.”

리베카 솔닛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재난은 기본적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며, 제아무리 긍정적인 효과와 가능성이 부수적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 이유, 즉 재난 속에서 생겨났다는 이유로 그런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17쪽)

그럼에도 우리는 이 책을 편히 읽을 수 없었다. 재난이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테다. 그 슬픔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재난 속에서 슬픔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재난국가지역

“참사를 지나오면서 국가를 향해 안전하게 해달라 요구하고 끝일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우리(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검토하고 지켜보는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때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나 싶고요. 사람들은 k-방역이라고 해서 자랑스러워했지만, 저는 무서웠거든요. 국가에 통제와 관리의 권한을 넘겨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개인의 움직임을 국가가 사찰하듯 파악하고, 언론-미디어가 통제되고, 감염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징역을 가고, 아웃팅을 당하고. 그에 대한 어떤 반향이나 저항도 없고. 그래서 국가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방식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고 만들어내는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책에서 말하는 공동체가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코로나19때 보면 초반에 시설을 다 격리시켰잖아요. 그 시설 속에 사는 사람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어마어마했을 거라고요. 수치로만 접하면 몇 명이 죽었구나 하면서 방역이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도, 내부로 들어가면 개개인과 특정 집단에게는 굉장히 폭력적인 경험이었던 거죠. 국가 통제가 오히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가로막았던 것 같아요. 원전(핵발전소) 노동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으니 없애라 또는 원전을 더 안전하게 더 관리해라, 이런 요구만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분 이야기가 원전의 안전관리 정보를 한수원 같은 일부 전문가들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원전은 지역에 세워진 거고, 지역사회가 원전의 안전을 관리하고 감시하고 검토할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보 공개 권한을 확보하고 원전 문제를 다루는 거버넌스 등 만들어서 지역사회가 원전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거죠. 지역사회의 역할을 생각할 때 의미 있는 요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는데, 지역 인구가 5만이 안 돼요. 처음 코로나 걸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다 알 정도로 좁은 사회에요. 감염자 동선은, 국가가 발표하기도 전에 지역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30분 단위로 왜곡이 돼요.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다더라, 누가 지침도 어기고 돌아다녔다더라, 이런 식으로 혐오를 바탕으로 왜곡된 내용이 번지게 되는 거죠. 무분별한 정보가 오가고 불안이 쌓이고, 그때 지역 신문사 전화가 불이 났어요. 뭐가 진실이냐. 이동 동선을 밝혀라. 압박 속에서 어떤 가치를 부여잡아야 할까 고민이 깊었어요. 지역적 특성이 있는 거죠. 책에 나온 재난들보다 지금은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요. 합의점을 찾아내는 시도가 필요하고, 지난 재난의 경험에서 학습하고 경험을 쌓아가야 해요. 그래야 도래할 재난을 지금보다 놓치는 것 없이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재난은 더 복잡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가는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사고의 가능성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어떤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참사의 원인이다. 인재를 넘어 ‘관재(官災)’를 말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국가에 안전을 요구한다. 그러나 위험관리는 국가가 독점할 사항이 아니다. 공공의 영역이다. “재난은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의 건강과 사회의 정의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18쪽) 우리도 지역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마을에서 살아가니까.

 

재난마을공동체

“사실 시골에 살다 보면 국가가 가깝게 있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개인이 모든 걸 할 수 있지도 않아요. 도시에는 내가 내 집에 들어가서 문 딱 닫으면 그만이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같이 짓는다는 건 여러 사태에 함께 대처한다는 거예요.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거나 산사태가 나거나. 이걸 국가가 하나하나 해주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마을 사람들끼리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거죠.
우리 지역에 큰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2천 명인가 모여 앉은 거예요. 진짜 누가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시작됐는데, 다들 자발적으로 발언하고 참석하고. 매일 2~3천 명씩 모여 집회를 하는데, 때마다 빵과 음료가 나왔어요. 지역 사람들이 갑부도 아닐 텐데, 그게 가능했던 게 지역에 00회가 많잖아요. 모임이나 풀뿌리 조직도 많고. 그 조직들끼리 서로 나눠 간식을 마련한 거예요. 대단한 거죠.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가 빛을 발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지역에 송전탑 건설 등 어떤 사안이 등장하면 다 같이 싸우지만 또 공동체가 분열하는 과정이 있어요. 참사 앞에서 굉장한 협력을 했던 사람들이 그 참사랑 같이 들어오는 이해관계 앞에서 분열하는 거죠. 그 역할은 실은 국가가 하는 거예요. 국가는 재난이나 참사 앞에서 공동체를 쪼개는 데 돈을 쓰고 역할을 하죠. 선거 국면이 되면 촛불을 들었던 힘이 표로 빠져나가고 분열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거리나 지역이나 엄청나게 중요한 이슈가 터졌을 때 그게 어떤 대표자를 뽑을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되는 일이 반복되는 거 같아요. 작은 섬마을을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진짜 작은 섬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상조회부터 시작해서 모임, 계 등 자발적 조직이 엄청 많은 거예요. 마을에 일이 생기면 그 조직들이 움직이는 거죠.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이런 풀뿌리 조직들은 전통적으로 마을이 행해왔던 방식이잖아요. 그게 관변단체로 흡수된 거고. 그 많은 00회들이 선거가 되면 표로 움직이죠. 그 힘을 어떻게 우리 쪽으로 가져올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농촌 지역과 다르게, 도시에서는 개인과 국가만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특히 도시 1인 가구에겐 더. 개인과 국가 그 가운데 있어야 할 공동체가 유실된 느낌이랄까. ‘공동체를 회복해야 해’ 라고 생각하지만, 소외된 개인이 의지할 곳이 지금으로는 국가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국가에 더 요구하게 되고, 또 다들 바쁘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국회의원을 뽑았으니 알아서 잘 해줬으면 좋겠고. 공동체 회복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공유지가 회복되고 공동체의 자발성이 기능할 수 있는 순간이 재난에 있다고 책에선 말하는데. 앞서 농촌 사회 이야기를 들으며 ‘그러게, 도시에는 지역만 있지, 지역사회가 없네’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참사를 바라볼 때 좌절감을 공유하고 있었지. 대안으로 지금 내 상황과 일상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어, 같은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재난의 각성의 시간이라 하나 봐요.”

우리의 고민은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노동의 양태(집-직장을 오가면 끝나는 하루에서 어떻게 마을을 상상할 수 있을까)와 부동산이 되어버린 주거의 형태(아파트 단지로 구획된 공간에서 어떤 마을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권위와 나이주의가 만연한 문화에서 사적인 모임 자체도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덧붙는다. 공동체를 향한 길을 멀고도 험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네라는 작은 공간에서 작은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지역에서 풋살하는 여자들의 모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누군가는 ‘당근 마켓’에서 동물권 모임을 제안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나는 독서모임이라는 이 작은 공동체에서 유대를 발견하다.

“재난은 우리가 선잠에서 깨어나도록 충격을 주지만, 우리를 계속 깨어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능숙한 노력뿐이다.”(183쪽)

사람들은 놀랍도록 지치질 않는다. 재난과 참사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하려는 노력을 멈추질 않는다. 슬픔을 멈춰보려 하고, 연대를 하려 하고, 기억하려 하고, 연민하려 하고. 그리고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려 한다. 그 지치지 않는 노력을 믿는다. 그 믿음으로 서로를 돌볼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이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함께 읽어준 고은(서울). 경민(창원). 열매(성주), 은진(서울), 정미(울산), 지안(서울), 현경(옥천)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희정(기록노동자)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이름 모를 사람들을 만나고, 글쓰기를 노동 삼아 세계를 알고자 한다.

작품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뒷자리』,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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