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을 만하고 웃음꽃이 필 때가 진짜 봉사지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이성민 님
“술을 좀 끊어보려고요.”
이성민 군포시 방범기동순찰연합대장에게 어떻게 자원봉사를 하게 됐냐고 묻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직업상 술자리가 많다보니 건강이 걱정되던 때였어요. 길을 지나는데 방범기동순찰대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거예요. 저거다 싶었죠. 방범대원이 되면 일주일에 1~2회는 순찰을 돌아야 하니 그때만큼은 강제적으로 술을 못 마시잖아요.”
건강도 지키고, 마을도 지키고, 1석 2조라 생각했다. 이성민 씨는 망설임 없이 방범기동순찰대에 입회했다. 올해가 환갑이니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이성민 씨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첫 직장은 대우전자였다. 국내 자재 구매 업무를 담당했는데 IMF로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했다. 이후 그는 자동차 판매업을 시작했다. 대우전자 재직 당시 계열사인 대우자동차의 홍보와 판매를 돕곤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24년간 해온 현재의 직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은 할 만한데 늘 술이 문제였다. 판매업의 특성상 ‘한잔 하자’는 고객의 유혹을 매정하게 끊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 방범기동순찰대 활동은 꽤 적당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분명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세월은 이웃과 서로 돕고 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가 대장을 맡고 있는 군포시 방범기동순찰연합대(이하 방범대)는 320명의 대원을 둔 군포시 내의 가장 큰 민간봉사단체다. 군포시 12개 동에 하나씩의 지대가 설립돼 운영 중인데, 한 지대당 보통 25~35명의 대원들이 있다.
방범대는 5개 조로 편성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마다 12개 동네를 구역별로 나눠 돌며 범죄 예방 순찰, 청소년 유해활동 감시 등을 한다. 최근에는 아동, 여성의 안전이 중요해지면서 공중 화장실의 불법 카메라 설치 등을 정기적으로 단속하는 일도 하고 있다. 관내 행사 시 질서유지와 독거노인, 저소득층 등의 이웃을 지원하는 것 역시 주요 활동이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다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이 대원들로 두루 포진해 있다 보니 어려운 이웃에게 제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역할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또한 방범대는 재난 등 위급 상황에 조력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화재, 수해, 코로나19 등 재난이 일상화, 대규모화, 복잡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민간의 체계적인 조력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고통을 경감하는데 기여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불예측적인 재난의 특성상 공공 영역으로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는 부분들을 관과 협력해 사각지대가 없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4년 세월호가 발생했을 때 이성민 씨와 방범대는 군포시 합동분향소를 지켰다. 분향소 주변의 교통을 정리하고, 추모 국화를 나누는 등의 지원활동을 하며 시민들과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나눴다. 2020년부터 지속된 코로나19 국면에서는 선별진료소와 백신 예방접종소 질서유지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땡볕 더위에 교통정리를 하고, 방호복을 입고 야외에서 안내 업무를 담당해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 거기에 코로나19는 방범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상태였다.
“4인 이상 집합금지가 오래되다 보니 방범 순찰 활동이 위축되면서 대원들의 활동력도 줄어든 상태였어요. 또한 우리는 여성 회원들이 40% 가량 되는데 자꾸 집에서 이 시국에 밖에 나간다고 눈치를 주니 활동을 못하게 된 주부들도 많았죠. 그래서 코로나19로 420명이던 대원이 320명까지 줄어들었어요. 모든 대원들의 활동이 영향을 받다 보니 방역 활동도 했던 분들 위주로 순환이 돼 참여한 봉사대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그럼에도 오랜 방역 활동기간 동안 단 한 명의 봉사대원도 코로나19로부터 큰 위해를 입지 않았다. 대원들의 안전을 관장하고 지역의 방역 활동에 조력하는 대장으로서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2022년 3월, 수리산 일대에 발생한 산불에서도 방범대의 활약은 계속됐다. 안산시 수리산 일대에서 발생한 불은 군포시 수리사 인근까지 번졌다. 이성민 씨와 대원들은 새벽부터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소방호스 연결을 돕고 물이 잘 분사될 수 있도록 호스를 펴주거나, 소방대원의 뒤를 따르며 채 잡히지 않은 잔불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뿌려대는 물로 산길이 얼어버린 상태였다. 미끄럽고 가파른 산길을 오가며 상황을 수습하는데 순간순간이 아찔했다. 불씨만 보이면 분사했던 탓에 소방헬기의 물벼락을 맞기도 했는데,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수압이었다. 다행히 모두의 노고의 힘입어 산불은 큰 피해 없이 진화됐다. 부상자도 없었다. 하지만 이성민 씨는 며칠간 감기몸살을 독하게 앓았다. 강원도 산불 당시 봉사활동에 비하면 훨씬 봉사 강도도 높고 체력적으로나 안전상으로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방범대의 일원이 된 이래 평대원부터 시작해 주요 보직을 거쳐 지난 18년간 수많은 재난 현장에 함께했던 이성민 씨.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해 군포시 수해복구 활동이라고. 2022년 8월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수도권 일대에 105년 만의 어마무시한 폭우가 쏟아졌다. 군포시에도 시간당 110㎜, 총 강수량 483㎜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군포시 산본1동 주택 449세대 포함 총 623세대가 침수됐다. 주민들은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온 흙탕물에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한 채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수해복구 활동이 시작됐다. 이성민 씨와 방범대원들은 가장 피해가 컸던 산본1동, 대야미동 등에서 수해복구 활동을 벌였다. 십여 년 전, 경기도 광주에 둑이 터져 피해를 입은 농작물 하우스 수해복구에 동참한 적은 있었지만 주택은 처음이었다. 물과 함께 쓸려 들어온 진흙을 퍼내고, 냉장고 등 큰 가전제품과 장롱들을 해체하여 빼냈다. 폐기해야 할 물건들을 수거 차량에 실어주고, 소각장으로 이동한 차량을 쫓아가 폐기물을 하차하는 것까지 도맡았다. 이후 도배와 장판에도 손을 보태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기도 했다. 아침부터 30도를 훌쩍 넘기는 무덥고 습한 8월의 여름이 수해복구로 빼곡히 채워졌다.
“제가 1998년부터 군포시에 거주했는데 최대의 침수 피해였어요. 피해를 입은 분들 중에 유독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일손은 제한적인데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은 많아 복구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죠.”
사실 방범 대원들 역시 폭우를 피해가지 못했다. 대원 중 5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어 상황이 꽤 좋지 않음이 발견됐다. 대원들은 십시일반 모금하여 침수 피해를 입은 몇몇 대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따듯한 정이 오가며 방범대를 향한 신뢰, 그리고 대원들 간의 돈독한 관계가 만들어 졌다.
방범대는 모든 대원을 대상으로 한 예정된 역량강화 워크숍을 취소하고 비용 전액을 시에 반납하기도 했다. 이웃들이 곤경에 처했는데, 워크숍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범대가 좋은 선례를 보여준 덕에 군포시 타 단체들도 예정된 행사를 취소하고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참고로 작년 8월의 수해복구는 군포시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이 발족한 이래 첫 재난이었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대규모 재난현장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 운영하기 위해 통합자원봉사지원단 운영지침을 제정했다. 대규모 재난 때 현장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단체 간 활동 협의나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특정 분야나 시간에 봉사가 몰리는 현상이 있었던 상황을 고려해 현장에 유입되는 자원봉사단체와 개인을 체계적으로 배분하고 활동을 조정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에 군포시도 2020년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구성하였고, 2022년 8월 2일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발족한 상태였다. 통합자원봉사지원단에는 방범대를 비롯하여 군포시 관할 내 14개 단체가 속해 있다.
“그 전만 해도 사안이 있으면 자원봉사센터에서 각 단체에 연락하는 식이었어요. 단체별 소통과 조정이 잘 안 되다 보니 현장에 투입되는 날짜나 위치가 중복되는 일들이 빈번했고요. 하지만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이 운영되면서 재난 상황에서 봉사단체의 컨트롤타워가 분명해졌어요. 역할 배분이나 투입시간, 장소도 체계적으로 조정되다 보니 이번 수해 때 봉사활동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던 것 같아요. 봉사단체끼리 함께 모이는 자리도 많아지다 보니 봉사자들 간 소통과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런 것들이 재난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합니다. ”
하지만 차츰 변화, 발전하는 재난 현장에서 아쉬운 부분 역시 상존한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장비 부족과 교육 미흡이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를 줄이는 것 만큼이나 또 다른 피해를 사전 예방하는 것이다 보니 수습 인력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또한 당연 중요한데, 재난 현장에 필요한 안전 장비가 부족할 때가 많아 문제라는 그.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장화와 장갑, 무릎 보호대, 안전모는 상시적으로 비축되어야만 하는, 최소한의 필수품이라고.
이성민 씨는 봉사자를 위한 교육 역시 아쉽다. 대다수 자원봉사자들이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봉사에 참여하다 보니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 교육 받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간부진들이 주로 교육을 받아 해당 내용을 알려주는데, 교육과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걱정을 표했다.
“1년에 한두 번씩 소방이나 수해복구와 관한 교육을 받는데 장비나 기구가 아닌, 주로 교재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투입돼 새로운 장비를 접하고 사용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럼 그 시간만큼 투입이 지체돼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지는데, 이 부분이 잘 개선되질 않네요.”
이성민 씨는 봉사활동 제도가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될 때 사각지대가 효과적으로 방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선은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방범대나 개별 봉사단체에 대한 넉넉한 지원은 사양한다. 특히 “조직이 딱 움직일 수 있는 만큼만의 지원”이 전제될 때, 민간 봉사단체 본연의 취지에 맞는 활동이 이뤄진다고 생각함을 밝혔다. 풍족하고 여유가 있으면 오히려 잡음과 분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봉사란 무엇인지 물었다.
“자원봉사는 내 스스로 해야 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면 뭔가 갭이 생기고, 벽이 생겨요. 또 내가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보단 내가 시간을 쪼개고 틈을 내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부딪쳐야 기쁨도, 보람도, 성취감도 두 배가 됩니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봉사는 늘 즐거움과 한 쌍을 이룬다.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방범대 활동시간을 현실화해 만족도를 높이고, 순찰을 도는 방범대원들과의 무선교신에서 일상의 안부를 묻는 것 역시 그런 취지다. 즐거워야 봉사도 오래 할 수 있고, 타인에게 권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박수받을 만하고 웃음꽃이 핀 봉사일 때 새로운 봉사자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그는 봉사를 하며 늘 웃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했다. 주말에도 봉사일정 및 관련 행사가 많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하지만 아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이유다. 오늘도 그는 군포시 어딘가에서 손길을 보태고 있을 거다. 좀 더 안전하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길이다.
- 참고문헌 – “[보도자료] 군포시 수해복구 현장에서 구슬땀 쏟는 자원봉사단체”. 군포시 자치분권과. 2022.08.22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