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암흑을 직시하는 동시대인’ 전시와 연관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304 낭독회’ 시인 김현이 말하는 재난의 문학적재현>을 주제로 했는데요. 304 낭독회는 세월호참사에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사람을 위해 304번의 낭독회를 하자는 뜻으로,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4시 16분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날 사회는 김현 시인과 함께 ‘해변’이라는 작업실을 운영하는 이소연 시인이 맡았습니다. 이소연 시인은 ‘거의 모든 기쁨’, ‘콜리플라워’라는 시집을 낸 시인입니다.
먼저, 이소연 시인이 김현 시인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소설가로 소개된 김현 시인은 시 쓰고, 소설 쓰고, 산문 쓰는 시인”이라며 “암흑을 직시하는 동시대인이라는 전시와 연계된 세미나로, 이 전시와 연계해 김현 시인의 단편 소설 ‘고유한 형태’라는 작품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고 전했습니다. 김현 시인은 재난 현장에 언제나 연대하는 시인으로, 기고하고 글을 쓰는 것에서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김소연 시인의 질문과 김현 시인의 답변으로 이번 세미나가 진행됐는데요. 질문과 답변을 Q&A 형식으로 정리해 소개하겠습니다.
Q. 고유한 형태를 재난 관점에서 다시 읽게 됐습니다. 고유한 형태를 소개해준다면?
A. 소설에 밑바탕에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기억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정서가 깔려있습니다. 사회적 참사로 인해서 돌아오지 못한 분들. 그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유가족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태가 고유한 형태에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 혹은 전부 등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전과 이후의 글쓰기가 세월호참사 전후로 글쓰기가 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비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목격하고, 목격자로서 혹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방관자의 마음 때문에 부채 의식과 죄책감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것이 모든 작품의 기조에 스모그처럼 깔려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Q. 작품에서 슬픔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 장면을 쓸 때 생각은?
A. 암흑을 직시하는 동시대인이라는 전시에 연계해서 세미나를 하고 있으니까 이와 연관 돼 말할게요. 고유한 형태를 아직 못 읽으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대략 소개하자면, 10대를 갓 지나온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주가 되는 것은 청년이 청소년기, 즉 10대 때 사랑했던 사람들, 떠나보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전시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학생들과 연계돼 세월호참사를 그린. 그 나이의 학생들이 10대 때 겪었던 일이기에, 고유한 형태와 작품이 연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다른 시나 소설에서도 자전적인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녹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삶이나 경험이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0대 때의 이야기를 하니까, 자전적인 요소들이 많이 투영돼 있습니다.
주인공은 혼자 하는 사랑을 많이 말합니다. 저 역시 혼자 하는 사랑 많이 했었고, 그럴 수밖에 없던 까닭은 저는 대학에 와서 커밍아웃을 친구에게 하고,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10대 느꼈던 여성스럽다라고 놀림 받았던 저는 수치스럽고, 부끄럽게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가해자들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대학은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용기낼 수 있었습니다.
10대 때 저는 달걀 껍질이 두껍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세계로 옮겨왔기 때문에 변해가야지라고 생각했었고요. 자연스럽게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게이라는 것에 대해 숨겨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자 노력했고, 이러한 삶의 궤적에 고유한 형태에서 혼자 좋아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을 인물로 삼아야겠다고 했죠. 그 사람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소환해야겠다고 해서 투영하기도 했습니다.
Q. 재난으로 인해 누군가 잃어버린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A. 희철과 상민이라는 동성 10대 커플이 등장합니다. 부모님께 걸려서 동성애 전환을 치료하는 곳도 갔다가 한 명이 자살하게 됩니다. 그 친구를 잊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가 위로해주면서 만나는 장면인데요.
유가족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죠 가까운 사람일 수도. 키우던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저도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 속에서 늘 하고 있는 건,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한, 우리가 어떤 모임자리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거나 추억하거나 등 내 곁에 있다면 ‘삶을 대신 살아주고 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우리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껴요. 304 낭독회에서 304명의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습니다. 그 경험을 100번째 낭독회 할 때 진행했습니다. 책에 넣자고 해서, 원고를 넣고 편집하는데, 이름이 잘못되어 있고, 빠져있고, 바뀌어있었어요. 원고 검토하던 사람들과 찾았습니다. 그 304명을 온전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죠. 이름을 고치고 바꾸는 작업을 했는데 되게 이상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10년 동안 해왔는데, 이름이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무언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처럼 이름에 담겨있는 힘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