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좋은 중독 같아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차칠언 님
2022년 8월, 115년만의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서울이 침수됐다. 영등포구에도 시간당 최대 110mm가 넘는 비가 쏟아지며 대림2동에서만 1,500여 가구가 침수되었다.
“비가 억수로 왔어요. 지하 기준으로 대략 160cm정도 물이 올라왔으니 지하가 다 침수된 거죠. 물이 차면 문을 못 열어요. 모든 현관문이 다 밖으로 열리게 되어 있거든요. 주민들이 유리창을 깨고 나왔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다행히 우리 동네에서는 희생자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요.”
사람은 상하지 않았지만, 집과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다. 냉장고, TV와 같은 대형가전은 물론이고 살림살이와 장사할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뒤엉켜 물에 동동 떠다녔다. “살기는 힘들고, 이사 갈 돈은 없고, 이제 나는 어떻게 사냐”며 울부짖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태안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 현장 등 다양한 곳에 지원을 다녔지만, 자원봉사경력 31년 차칠언 씨도 처음 겪어보는 현장이었다.
그는 소속된 자율방범대원들과 수해복구지원팀을 꾸려 매일 봉사활동을 벌였다. 4~5명이 한 팀이 되어 양수기 사용법 교육, 하수구 부산물 제거, 침수 물품 정리와 청소, 곰팡이 제거, 도배봉사 등 수해현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내가 진짜 감사하고 놀라운 게, 1,500여 가구의 수해복구를 단 22일 만에 끝냈다는 거예요. 누가 봐도 대단한 일이죠. 이건 국가가 한다고 되지 않아요. 관에서 했다? 그것도 아니에요. 자원봉사자 한 분 한 분 모이고 보태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고사리 손부터 연세 많으신 어른신들까지 다 모여서 해낸 거죠.”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에 따르면, 최근 20년(2000~2019) 사이 전 세계에 발생한 자연재해는 7,348건으로, 앞선 20년(1980~1999) 동안 발생한 4,212건 보다 1.7배 증가했다. 유엔은 물론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기후위기로 지목했다. 급증하는 재난엔 국경과 경계가 없다지만 전 지구적으로도, 한 국가차원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늘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번 수해를 통해 또 한 번 재난이 불공평하다는 점을 배웠다.
대림2동에는 이주민이 많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1세대 이주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4세대까지 폭넓게 거주하고 있다. 다른 동네에 비해 물리적 환경이 양호하고 정주환경이 안정적이며 다양한 편의가 제공되다 보니 장기 거주 이주민들이 많은 것. 그로 인해 침수에서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주민들이 되었다. 문제는 재난뿐 아니라 재난 이후조차 불평등하고 불공정했다는 사실이다.
“건물주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침수 예방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건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집을 고칠 뿐이었어요. 거기다 정부에서 세입자에게 복구지원금을 주면 그 절반을 달라고 하는 등 심보가 나쁜 집주인도 더러 있었고요. 특히 중국인, 조선족분들이 많이 당했는데, 그 사람들은 한국법도 모르고 도움 청할 곳도 없으니 여러모로 참 억울할 거 아닙니까? 진짜 돈 없고 빽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재난 때 가장 취약하더라고요.”
다시는 지하에 살지 않겠다, 다짐한 사람들이 대림2동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구할 수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칠언 씨는 그들이 더욱 외진 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여러 감정이 스쳤다.
“현장에 직접 와봐야 제도가 어떻게 적용되고, 누구에게 뭐가 필요한지 제대로 알지 않겠어요? 안 와보고는 절대 알 수가 없는데, 오는 사람이 없어요.” 그가 관료들의 탁상행정을 비판하는 이유다.
그는 1967년 전남 강진군에서 삼 형제의 첫째로 태어났다. 1983년에야 전화가 들어왔을 만큼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마치고 군 전역 후 고향을 떠났다. 객지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시골에서의 삶에 전망이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었다.
32년 전, 사촌 형들이 미리 터 잡은 서울 대림동에 정착해 전기 일을 배웠던 것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인 차 씨. 그가 상경한 90년대는 ‘제1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 붐이 일었을 때로 일감이 참 많았다. 심부름부터 시작해 전기기술자가 되었지만, 차 씨가 선택한 분야는 월급이 적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20년간을 전기기술자로 살다, 중간에 에어컨 A/S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것만은 아니지만 봉사만큼은 부지런히 행하며 주변에 마음을 베풀었던 그.
자율방범대 활동은 대림2동에 자리 잡은 그 이듬해,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시작했다. 방범대 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동네 지인의 권유에 차 씨는 그다음 날부터 동네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그에게 봉사에 관한 특별한 결심, 혹은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에게 자원봉사는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봉사는 이 생각 저 생각하면 절대 못 해요. 내일 친구랑 약속 있는데, 가족들과 밥 먹기로 했는데, 내일 출근하는데 등 갖가지 생각은 봉사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요. 그렇게 한번 봉사를 시작하잖아요? 자연스레 또 하게 될 거예요. 봉사는 좋은 중독 같아요.”
지역의 범죄예방활동을 목적으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는 경찰 소속 자원봉사자 조직이다. 취약지역의 정기적 야간 순찰이 주된 봉사활동인데, 지역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활동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다. 순찰은 기본이고, 대규모 행사의 질서 유지와 코로나 방역, 제설과 수해복구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곳마다 손을 보태다 보니 그는 어느덧 31년 경력의 베테랑 자원봉사자가 되어 있었다.
“제가 항상 우리 대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분들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어렵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니 절대 말 크게 하지 마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상대방은 크게 다칠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말을 줄여라.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도 가만 보면 다 달라요. 사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그러다 보니 봉사 와서 세간살이 치우던 중 대뜸 ‘이거 몇 푼 한다고 좀 버리지 뭐하러 갖고 있냐’는 분도 계시고… 피해를 입은 분은 그 소릴 듣고 막 우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사전에, 우리가 피해 입은 분들 심경 알 것 같냐고. 본인 아니면 절대 모를 거라고, 우리가 아는 건 1%도 안 된다고 늘 강조하죠.”
마음은 고맙지만 현장에 준비 없이 오는 사람, 다칠까 몸을 사리는 사람, 쉬운 일만 찾는 사람들은 늘 꺼려진다는 그. 그 가운데서 단연 그가 제일 멀리 하고픈 사람은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라고.
“일이 많으니 그만큼 빨리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찬조금이나 물품 준다고, 혹은 단체장 온다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불러서 사진부터 찍자고 해요. 그리고 장관, 국회의원 등 높은 분들이 현장에서 쓰레기 몇 개 줍고서 사진 찍고 가는 모습을 보면 진짜 허탈해지죠. 생색내기식으로 그분들이 왔다 가면 일은 일대로 못하게 돼버리거든요. 봉사라는 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완전히 펑크가 나버려요.”
“솔직히 비 좀 더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지난 8월, 수해복구 지원 현장에서 국회의원이 던진 말이다. 그가 내뱉은 말 속에 고통받는 재난 피해자와 조력하는 자원봉사자가 설 자리는 없다.
“봉사 다니다 보면 정말 똥물같이 더러운 곳에서 일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장화랑 장갑은 절대 못 벗어요. 밥 먹고서 화장실 갈 때나 겨우 벗는 거죠. 그런데 자원봉사 증빙을 위해서는 사진을 제출해야 하거든요. 얼굴이 나와야 하니까 마스크도 내려야 하는데, 솔직히 현장에서 어떻게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겠어요. 우리 팀이 다 같이 나가면 한두 명이 돌아가며 그나마 사진을 좀 찍기야 하겠지만, 혼자 갔을 땐 모르는 분에게 부탁하기도 뭣하고. 그래서 봉사한 시간 대비 인증받은 시간이 늘 적을 수밖에 없죠. 큰 불만은 없지만 좀 아쉽기도 해요.”
한국은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정을 통해 자원봉사를 제도화했다. 전국에 245개의 자원봉사센터가 설립됐고, 1365(1년365일의 의미) 포털을 통해 자원봉사자와 이들의 활동을 관리하고 있다. 정부의 통합 관리는 재난과 같은 위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자원봉사자를 조직, 운영,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활동시간을 인증받는 제도로만 운영되다 보니 정량적 시간인증의 부작용과 인증시간에 상응하는 인정과 예우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대안적 참여인증제도와 마일리지 간병제와 기부제, 선진지 시찰, 공공시설 할인, 포상 등의 인정 방안이 강구되고 논쟁 중인 이유다. 풀뿌리로 시작해 지역사회에 뿌리 내린 서구의 자원봉사가 지역사회 변화와 자기 성취에 만족하는 것과 다른 배경이다.
한편 자율방범대의 범죄예방활동은 경찰 소관 업무지만 예산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다 보니 자율방범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에도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약과 관심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재정 상태에 따라 지역 간 지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역시 고질적인 문제로 꾸준히 지적돼왔다. 자원봉사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공헌자들에 대한 예우와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숙고가 필요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봉사자들은”이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지 묻자 “편견 없이 대하고, 악 없이 한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자원봉사 현장에서 인류애와 공평성,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 이는 인도적 지원의 핵심 기준이지만, 오랜 봉사활동을 통해 그 스스로가 터득하고 정한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율이잖아요. 자율에는 책임감이 따르거든요. 이게 엄청 무서운 거예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봉사를 지속하고 싶다는 차 씨. 자원봉사에 대한 그의 신념과 열정이 부족한 제도와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꺾이지 않기를,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참고문헌
신지연·박인권 (2021). “외국인 밀집지 내 이주자 시민행동과 장소 애착심.” 《공간과 사회》 31(1), 168-207.
이진경·박종철 (2015) “자율방범대 운영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 안양시 자율방범대를 중심으로 .” 《자치경찰연구》 8(1), 56-84.
이진경 (2016). “지역사회 자율방범대 활성화방안에 관한 연구.”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