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처럼 오늘도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최은영 님
안녕하세요. 저는 두 아이 엄마이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어요. 이번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족회에서 저를 재난 현장을 지키는 사람으로 추천해 주셨는데요. 사실 제가 재난 현장을 지키는 활동을 해온 건 아니라서 인터뷰가 조금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기록했는데요. 서울 시민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억 수집가로 활동하다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까지 기록하게 되었어요.
2013년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울의 기억을 수집하는 ‘기억 수집가’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봤어요. ‘메모리인서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서울 시민을 만나 서울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취지의 프로젝트였어요.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서울의 역사가 된다니,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제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이유에서 기억 수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 기억 수집가로 1년 동안 서울 시민분들을 만나 서울에 대한 기억을 수집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온 제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2015년 삼풍백화점 참사 20주기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울의 아픔’이라는 키워드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기억 수집가 5명으로 팀을 꾸린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에 붕괴했어요. 신혼여행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어요. 저녁을 짓고 있었는데 신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했어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는데 친구가 그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당시 친구를 잃고 힘들어하는 신랑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뉴스는 계속 보고 있었지만,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기록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 해에 기획이 되었어요. 세월호 참사 때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아이가 또래가 겪은 참사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는 많은 시민분들이 세월호 활동을 했잖아요. 세월호 피해 가족분들은 참사 이후로 지금까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계시잖아요. 사실 저는 제 아이 챙긴다고 세월호 활동을 하지 못했어요. 삼풍백화점부터 세월호까지 죄책감들이 저에게 있었어요. 삼풍백화점에 대한 기억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죄책감이 생각났어요.
기억 수집가 다섯 명은 6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서울문화재단에 출근했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공부하면서 기록을 뒤졌습니다.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다룬 기록물이 거의 없었어요. 서울시에서 만든 백서 한 권이 전부였어요. 이렇게까지 자료가 없구나 싶었어요. 기록의 중요성을 많이 생각했어요. 19년 전 백서에 남겨진 이름, 당시 소속만으로 사람을 찾아야 했어요. 백서에 언급된 이름을 전부 추렸더니 600명이 넘더라고요. 민간구조대, 소방, 경찰, 의료진, 자원봉사자, 검찰, 생존자, 유가족 등으로 분류하고 기억 수집가 5명이 나누어서 수소문했습니다. 그 과정이 험난했어요. 소방이나 경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속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다 전화를 했죠. 거절 하신 분들도 많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대, 검찰, 건설 관계자, 자원봉사자분들의 인터뷰는 꽤 진행되었는데 유가족은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사실 저희는 추모식이 매년 진행되고 있으니, 유족회로 연락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이유에서 연결이 잘 안되었어요. 서울문화재단에서 인터넷 검색포털과 지하철에 광고를 실었습니다. 참사 당시 현장에 계셨던 분을 찾는다고요. 광고를 보고 유가족 김문수 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김문수 님은 희생자 유품 등의 자료를 내주시면서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다른 유가족분들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때부터 유가족 인터뷰가 조금씩 진행되었습니다.
2014년 5월 자료 조사를 시작하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가을부터 했어요. 이듬해 봄까지 유가족, 구조대, 자원봉사자 등 108명을 만났어요. 201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0주기에 맞추어 추모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모았던 자료들로 전시회를 열고 판소리를 제작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분들과 작업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정리해서 2016년 구술기록집 『1995년 서울, 삼풍』을 출판했습니다.
인터뷰 요청하는 전화를 드렸을 때는 아픈 이야기를 뭐 하러 꺼내려고 하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1995년 당시에는 기록에 대한 인식이 없었잖아요. 19년 만에 기록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제 와서 왜 기록을 남겨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인터뷰에 참여해 주셨고 참사를 기억하고 묻고 듣는 시간을 따뜻하게 기억해 주셨어요. 출판되고 책을 들고 추모식에 찾아갔을 때 정말 반가워해 주셨어요.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은 처음이라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요.
한 유가족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삼풍백화점 유가족이 제대로 투쟁하지 못해서 이후에 일어난 또 다른 참사 유가족들이 “제대로 진실 규명해라, 제대로 추모해라, 제대로 기억해라”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한다고요. 삼풍백화점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고 추모 공간을 잘 만들었더라면 이후 참사 유가족들이 똑같은 모양새로 싸우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요. 유가족이 유가족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에 재난 참사가 많이 벌어지잖아요. 참사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잘못된 시스템을 찾아내고 바꾸고 메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록이 있어야 빈틈을 찾아서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동화나 소설에는 어려움에 부닥친 아이가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혜택받지 못한 아이들, 아픔이 있는 아이들, 큰 용기나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글을 쓸 때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저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청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힘이 될까?’를 생각해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글로 그 틈을 메워보려고 해요.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을 마치고 『1분』이라는 제목으로 청소년 소설을 출판했어요. 청소년에게 삼풍백화점 참사에 대해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좋아하는 가수 공연을 보기 위해서 공연장을 찾아요. 갑자기 공연장이 무너지면서 주인공은 가까스로 살지만 친구 한 명은 목숨을 잃고 한 명은 부상을 당합니다. 이야기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재현했어요. 삼풍백화점 참사로 502명이 희생되었는데 가해자는 고작 7년 형을 선고받아요. 소설에서 주인공이 말해요. “17살에 죽은 내 친구는 7년 후 겨우 20대 초반인데 내 친구의 시간을 모두 뺏은 그 사람은 고작 7년 후에 자유의 몸이 된다.”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읽고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올해가 삼풍백화점 참사 30주기인데요. 기억 수집가 다섯 명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기록하게 된 20주기부터 지금까지 매해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어요.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요.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습니다. 참사가 깨끗이 지워져 있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이란 곳에 있어요. 10년 전 추모식을 처음 찾았을 때 위령탑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맸어요. 추모할 수 있는 곳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공원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더라고요. 위령탑을 찾으러 들어가는 길에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 858편 위령탑 등 온갖 참사의 추모비가 있어요. 추모비 세울 곳을 찾지 못한 참사를 외진 공원에 모아둔 것 같았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시간이 많이 흘러 유가족 외에 추모식을 찾는 시민이 거의 없어 더 외롭게 느껴졌어요.
27주기 추모식을 마치고 유족회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기억 수집가 다섯 명을 부르셨어요. 추모식에서 부를 추모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삼풍백화점 추모식에서는 늘 애국가를 불렀는데, 참사 유가족들이 모여 애국가를 부르는 게 맞나 싶으셨대요. 그러면서도 참사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은 부모 세대는 거의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분들도 나이가 많이 드셨거든요. 추모식에 참여하는 수도 줄고 참사가 점점 잊혀 간다고 느끼셨을 거예요.
저는 노래 가사를 써, 본적은 없지만 유가족에게 힘이 된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결이 조금 다른 두 개의 노랫말을 썼어요. 다행히 2개 다 마음에 들어 하셔서 하나는 추모곡으로 다른 하나는 추모 시로 쓰게 되었어요.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해요. 6월 29일이면 장마에 돌입하는 시기잖아요. 매년 추모식 때도 비가 자주 왔어요. 그래서인지 노랫말 쓸 때 자연스레 비가 떠올랐어요. 추모곡을 처음 전하는 2023년 28주기 추모식에도 비가 참 많이 내렸습니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을 정도였어요. 감사하게도 416 합창단이 삼풍백화점 추모곡을 불러주시기로 했어요. 종이에 건조하게 적혀있던 노랫말이 그분들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펼쳐졌어요. 저렇게 멋있게 불러주실 줄 몰랐는데 더 잘 써볼걸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은 아직도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하세요.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참사 당시로 되돌아가셨을까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희생자에게 전하는 유가족분들의 마음도 담고 싶었어요. 이 노래가 부디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날처럼 오늘도」
하늘은 오늘도 파아랗더라
바람은 오늘도 보드랍더라
그날처럼 오늘도
무심한 척 아닌 척
굉음이 하늘을 찢고
먼지가 하늘을 덮고
울음이 바닥을 치고
눈물이 땅을 적신 이곳에
너는 여전히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도
선 듯 불어오는 바람에도
네가 있어
지울 수 없는 이름
잊을 수 없는 얼굴
미소 지으며
내안에 살아있는
너를 그리며
주관 – 4·16재단 / 협력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글 – 홍세미 (인권기록센터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