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김애란] 모두의 일곱 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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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4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대산대학문학상>과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하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김애란 소설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일곱 해>

 

열일곱에 일곱 해를 더하고

-다시 스물둘에 일곱 해를 보탠 뒤

일곱 살에 일곱 해를 합하고

마흔셋에 다섯 해를 덧대보았다.

 

언뜻 이상한 산수처럼 보이는 저 문장들 속에는 누군가 이 세상에 머물다 간 시간과 떠난 시간이 모두 담겨 있다. 열일곱에 일곱 해를 더하면 스물넷, 스물둘에 일곱 해를 보태면 스물아홉, 일곱 살에 일곱을 더하면 열넷, 마흔셋에 다섯 살을 합하면 마흔여덟이다.

이 중 굵게 표시한 맨 처음 숫자는 7년 전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의 나이다. 만약 살아있다면 올해 스물네 살이 되었을 아이들. 모두 알다시피 사고 당시 이들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두 번째 굵은 숫자는 세월호 승무원 고 박지영씨의 나이다. 그녀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구조를 돕다 배 안에서 숨을 거뒀다. 세 번째 숫자는 세월호 참사의 가장 어린 희생자 고 권혁규 군의 나이다. 권 군은 가족들과 제주로 이사하다 사고를 당했고 끝내 육지로 돌아오지 못해 지금까지 미수습자로 남았다. 마지막 숫자는 2016년 스스로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님의 나이다. 어두운 바다 속에서 희생자 분들을 ‘손으로 한 구 한 구 달래가며, 한 구 한 구 안아’ 올린 잠수사 분. 그 뒤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과 트라우마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신 분. 만일 살아계셨다면 올해 마흔여덟을 맞으셨을 거다.

고 김관홍 님의 마지막 해 나이를 제외하고 나는 나머지 사람들의 나이를 모두 가져봤다. 열세 살도 돼보고, 스물네 살도 겪어보고, 스물아홉 살도 맞아본 적 있는 사람. 운이 좋다면 앞으로도 또래들과 비슷한 삶의 무게를 지고, 엇비슷한 고민과 기쁨, 회한을 느끼며 살아갈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쓰기 전 저기 저 분들이 모두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얼굴로 이 봄을 맞고 계실까 궁금해졌다. 그런데도 내겐 여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어렵게 느껴져, 내 얼굴에 저 분들 얼굴을 포개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미 겪은 시간을 당신도 경험한 양 덧대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의 이십대와 지금 청춘들의 상황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나눌 법한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를 테면 이런 마음 같은 건.

스물네 살 나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잠 못 이뤘다. 버스정류소에서 연인과 헤어질 때마다 항상 그가 다음 버스를 타길 바랐고, 그러다 홀로 돌아서는 길, 보세 옷가게의 쇼윈도에서 자주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기억도.

스물네 살 나는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담당자가 단수 여권으로 하실 건가요? 복수로 할 건 가요?’ 물었고, 잠시 고민하다 단수로 해주세요답했다. 내 앞에 펼쳐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크기는 딱 그만했고, 그마저도 좋았다.

스물네 살 봄에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립스틱을 선물 받았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팥빙수를 먹고, 비 오는 날에는 부대찌개를 사먹었다. 취업 생각에 가끔 가슴이 어둑해졌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맡는 비 냄새, 교정의 풀냄새가 가끔 더 큰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저기 버스정류소에 선 사람이 너였으면, 정말 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시하고 남루한 것조차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다 겪어봤다면, 사랑이나 우정뿐 아니라 권태도, 회의도, 지리멸렬도 다 경험해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러다 마흔 즈음에는 지친 중년의 눈빛을 가진대도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고 박지영씨가 살았을지 모를 아니 살아봤어야만 할 스물아홉도 내 모습에 포개 되짚어봤다.

스물아홉에 나는 은행에서 처음 대출상담을 받았다.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었지만 막상 나보다 훨씬 노련해 보이는 직원 앞에 섰을 땐 아이처럼 긴장했다. 스물아홉에 나는 내 자매의 신혼집에 화분을 사들고 놀러갔다. 가욋돈인 생기면 부모님께 용돈을 보냈고, 후배들에게 밥을 사는 식으로 가끔 삶에 자부를 느꼈다.

열네 살 혹은 마흔여덟의 모습은 또 어땠을까.

열네 살에 나는 용돈을 계획 없이 써 언니들에게 자주 돈을 빌렸다. 일기장에 적는 말이 늘었지만 진짜 비밀은 적지 않았다. 누군가 자꾸 그리운 마음이 들었고, 친구들과 관계가 어려워도 친구들이 좋았다.

다만 마흔여덟 살만은 나도 겪은 적이 없어, 상상으로 이미 지난 일인 양 그려봤다.

마흔여덟에 나는 옷값을 줄이고 의료비를 늘였다. 소설이나 영화로 익힌 그 모든 예습에도 불구하고 삶의 많은 것이 예상과 달라 당황했고, 그런 내 몸과 화해하느라 바빴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마저 다스리며 적응하고,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을 만나 종종 서로의 고독에 시치미를 떼며 웃다 헤어졌다.

그리고 여기 다 적지 못한, 여러 가지 비밀을 포함한 무수한 날들. 그런 것이 내게 있었다. 그 일들과 함께 살아오며 나는 전과 또 다른 내가 됐고, 여전히 그렇게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지금은 여기 없는 누군가의 삶에 나의 서른하나, 마흔, 스물일곱을 겹쳐 봐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절을 포개도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 누리지 못한 것이 눈앞에 수만 장의 벚꽃처럼 흩어진다. 하루하루 그 밝기와 온도가 다 다른 햇빛, 바람의 질감을 비롯해 혹 그게 실망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겪었어야 할 실망, 실연, 실패까지도. 그들이 그 안에서 배웠을 무수한 감정, 가까운 이들과 나눴을 그날치 웃음,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부모님과 형제, 친구와 선생님, 이웃과 나눴을 하루하루의 사랑이 떠오른다. 누군가 살아본, 살았을 법한, 살았어야 할 어떤 7년. 그 모든 일곱 해. 평범하고 흔해 더 귀하고 찬란한 시간들. 그 사이 꼭 훌륭해지지 않아도, 무언가 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충분히 빛났을 모두의 일곱 해가.

그러다 비록 그들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주고 간 것, 우리가 받은 것에 생각이 미치면 이내 숙연해진다. 누군가 그토록 훼손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뺏기지 않은 어떤 존엄과 태도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그 모든 것의 무게를 다 합한다 한들 그들이 온당히 누렸어야 하는 것들의 가치만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7주기다. 떨어지는 꽃잎 위로 일곱 해의 무게가 쌓인다. 그들이 누리지 못한 삶은 매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갱신될 것이다. 그 어떤 말들 앞에서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무거워 쉽게 고개 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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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월간 십육일에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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