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황인찬]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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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일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제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황인찬 시인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안심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제법 여러 사람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까닭도 가지각색이었다.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사람도 있었고,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다.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은 자신을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 같아 안심된다는 말도 어딘가의 기사에서 읽었는데, 나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인 학생이었고, 그 가운데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이 있어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읽으며 세대에 따라 노란 리본에 대한 감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기본적으로는 일종의 연대의식을 공유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반가움을 느낀다.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을 발견했다는 데서 오는 반가움, 그리고 이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가려진 진실이 남아 있으므로, 그리고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싸움을 함께 하는 이를 보며 반가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 반가움 탓에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2017년에 군대에 갔는데, 서른 살에 입대를 한 것이었으니 상당히 늦은 입대였다. 나와 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친구들(그 친구들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과 생활을 했는데, 그 가운데 노란 팔찌를 항시 차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20140416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고무 소재 팔찌였다. 내가 속한 부대는 여러 부대를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여러 부대를 돌아다녀도 노란 리본을 매단 사람을 본 것은 그 친구가 유일했다.

그 친구의 팔찌를 처음 알아차린 날, 예상하지 못한 마주침에 반가움을 느낀 나는 그 친구의 팔찌를 가리키며 알은체를 했다.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고, ‘오~’ 정도의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젊은 친구가 기특하다는 식의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친구가 굳이 그런 대답을 하지도, 내가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 친구는 나의 알은체를 듣고, ‘친구’, 단 두 글자만 말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져서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 친구가 안산 출신이라는 것도, 1997년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 두 사실을 연결 짓지 못하고 그렇게 가볍게 말을 걸었을까. 물론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은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내가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친구의 노란 팔찌를 보며 내심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나에게 세월호는 나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벌어진 슬픈 일로 기억되지만, 그 친구에게는 친구의 일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일이기도 했다. 기특함이란 결국 내가 세월호를 나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기에 갖게 되는 감정일 터였다. 나는 4월 16일의 슬픔을 잊지 않고, 진실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함께하리라 다짐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얄팍함과 경솔함에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가 내가 살면서 가장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 친구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 후로도 그 친구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그 친구는 전역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나는 유일한 군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그때의 일을 꺼내지는 않는다. 어쩌면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다만 그 친구는 여전히 노란 팔찌를 찬 채로, 여자친구가 어떻고 학교가 어떻고 하는 말을 들려줄 뿐이다. 나 역시 때로는 가방 밖에, 때로는 가방 속에 노란 리본을 매단 채 그 친구의 말을 들을 뿐이고.

그 후로 내게 무슨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노란 리본을 매달고 다니고, 길에서 노란 리본을 매단 사람을 마주치면 반가움을 느낀다. 당신도 그곳에서 함께 싸우고 있군요.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또 다른 곳에 있지만, 하나의 마음을 갖고 있군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을 더 떠올리게 되기는 한다. 내가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는지 궁금히 여기게 된 것이다. 아마 그 궁금함만큼 4월의 그 날이 나의 삶과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 한다. 그렇게 세월과 더불어 나의 삶이, 그리고 당신의 삶이 계속 가까워지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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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월간 십육일에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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