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 슬픔과 분노를 넘어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앞장선다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님 인터뷰>
강현석 기자
안녕하세요. 4·16재단 대학생 기자단 ‘민들레 빛’ 취재기자 강현석입니다. 이번에 저는 안산에서 4·16재단 박래군 상임이사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사실 상임이사라는 지위에 저도 모르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좋은 말씀과 재단 현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셔서 인터뷰에 즐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4·16재단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이 풀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10월 마지막 주 박래군 상임이사님과 인터뷰 내용을 직접 들어보시죠!
Q1: 안녕하세요 상임이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4·16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래군이라고 합니다. 대학에 1981년에 들어가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거쳐서 인권 운동을 1988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34년 차 인권운동가인 셈이죠. 사람들에게 인권운동가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제가 살아온 세대는 사실 광주 5.18학살을 겪은 세대입니다. 군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여러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자고 노력하다 보니 인권 운동을 계속해오게 되었습니다.
Q2: 4.16 진상 규명과 더불어 이전부터 대추리 미군 기지 반대 운동, 용산 참사가 있었을 때 범국민대책 위원장에 지내셨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셨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힘이 되셨나요.
우선 일련의 사건들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부 각각의 다른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권운동가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국가 폭력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는 공통점을 가진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추리 미군 기지 같은 경우도 반미 투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군 기지 때문에 쫓겨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관점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했던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용산 참사도 당시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압적이고 무리한 진압 때문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폭력에 대한 저항운동을 한 것이죠. 국가 폭력이 발생하면 반드시 피해를 받는 피해자들이 있게 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함께 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들 곁을 지키면서 문제를 풀기 위해 활동들을 계속해 왔던 것입니다.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적어도 인권운동가로서 피해자의 고통에 연대해야 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각오에서 온 것입니다.
인권 운동은 쉽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 속에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계속 인권 운동을 할 수 있는 힘은 문제를 함께 바꾸어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큽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런 힘으로 다시 또 자기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계속 보게 되면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Q3: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셨습니다. 이러한 억압 받은 자들에 대한 시선을 태도를 삶 전반에서 유지하셨습니다. 혹시 영향을 받으신 분이 계십니까?
광주 시민들한테 배웠습니다. 저희 세대를 언론에서는 386세대 586세대라고 부르지만 저는 광주 세대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죽을 줄 알면서도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가 돌아가신 그분들을 기억하면서 세상에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그 사람들의 그런 꿈. 대동 세상에 대한 꿈 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특히 제 동생이 1988년에 학생 운동 중에 광주 학살 원흉 처벌을 주장하며 분신하여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유가족이 된 거잖아요. 하지만 당시 학살 원흉인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것이고 그걸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항했던 광주 시민들의 정신을 우리 형제들이 고스란히 배워서 자기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세대는 광주에 빚진 마음들이 굉장히 큽니다. 광주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학살당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거나, 아예 그런 상황들도 모르고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돌아가신 상황에 대해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투쟁이 1980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광주의 불의에 대한 적극적 저항을 보면서 광주 문제를 자기 문제로 삼고 거기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왔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Q4: 아직까지 4·16재단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민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4·16재단은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 분들이 먼저 나섰고, 거기에 시민들이 함께 출연하여 만든 재단입니다. 재단을 만든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때 재난 참사 공화국이라고도 불린 우리 사회가 이제는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Q5: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4·16재단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16재단은 세월호 추모사업과 시민들이 안전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체입니다.
4·16재단의 활동은 크게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사업, 두 번째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세 번째로 안전 문화 확산 사업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4·16재단의 본연의 임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재단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직접 기획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이나 피해자, 시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추모, 기념사업들을 개인이나 단체가 하는 일을 재단이 지원합니다. 특히 안전 문화 확산의 경우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서 재단의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됩니다. 재단의 존재로 다양한 활동들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훨씬 유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Q6: 4·16재단이 이제 설립된 지 3년 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3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재단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 방향성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재단이 지금 설립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설립해서 지금까지는 재단의 기초를 놓는 시기였습니다. 지금부터는 기초를 다진 그 위에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가야 되는 이런 상황인데 아직도 준비기를 크게 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4·16재단이 맡아야 될 역할들이 있는데, 그중에 비중이 높은 것은 추모 시설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추모시설인 생명안전공원이 2024년에나 완공됩니다. 생명안전공원을 통해 계속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우리 사회에 생명·안전 이런 가치관들을 또 심어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안전 문화 확산 사업들도 우리 사회의 시민사회 운동이 발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사회운동 이런 쪽은 많이 부족합니다. 계속 문제를 제기해 오면서 산업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자는 산재 추방 운동을 해왔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매일 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렇기에 4·16재단은 안전 문화 확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Q7: 4·16재단에서는 꿈 기금 지원 사업, 4.16의 꿈, 안전정책 공모사업, 문화콘텐츠 공모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모,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모사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올해 처음 시작했던 것 중에 한 공모사업은 청소년들한테 노란 배지 나눔을 진행한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신청이 들어와서 두 배 더 늘려 지원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공모사업 중 하나로 416의 꿈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그러면서 일상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청소년들 같은 경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꿈들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416의 꿈을 통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안전을 중심 가치로 잡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시민들 이 직접 스스로 참여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안전 분야 공모사업을 통해 민간 사회의 안전역량을 계속 강화시킬 계획입니다.
Q10: 앞으로 4·16재단의 사업 운영 방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생명안전공원은 내년에 착공이 들어갑니다. 공원이 계획대로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가 활동을 곧 종료됩니다. 법 개정을 통해 기록을 제대로 이관 받아서 관리하는 것,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진상 규명을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서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다음으로는 안전사회와 관련해서 내년에 피해자 권리 보호 센터를 만들고자 합니다. 재난 참사 피해자들을 모셔서 교육을 받는 과정을 통해 2024년부터는 이제 사회적 참사 피해자분들이 직접 운영하는 피해자 권리 보호 센터 설립을 내년에 시동을 걸고자 합니다.
또한 안전교육 콘텐츠를 만들고자 합니다. 메타버스를 활용해 누구든지 접근하기 쉽도록 하여 안전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는 안전과 관련하여 피해자 권리 보호 센터가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이 만들어지고 온라인상에서는 시민들이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2024년이 재단에 중요한 한 해입니다. 세월호 참사 10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생명안전공원 완공, 피해자 권리 보호 센터, 메타버스 안전 체험 구축 사업 모두 24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을 때 세상은 조금 달라졌고 우리 사회에 안전 문화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11: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많은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회에 있습니다. 오히려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시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요?
누구도 자신이 재난 참사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들은 자신이 재난 참사의 당사자가 아니고, 관련 없다고 믿기에 악의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닥친 피해는 정말 우연적인 일입니다. 누구도 겪지 않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유가족들이 했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활동한다고 해서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활동하면 할수록 우리와 같은 유가족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난 참사를 겪을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재난 참사 겪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어도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재난 참사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정부 및 기업이 앞장서서 재난 참사의 흔적을 빨리 치운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서 정부와 기업이 취한 자세는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역사적 경험일수록 가까이에서 보며 환기하고 교훈을 계속 새롭게 찾아가려는 노력이 함께해야 더 이상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재난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잊으면 잊을수록 참사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나 또한 그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사가 더 이상 없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1시간 30분가량 박래군 상임 이사님과 진행한 인터뷰는 마쳤습니다! 인터뷰 정리에서 미쳐 못 실었지만 이사님은 현재 안전 사회 문제와 더불어 기후 위기 문제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들이 좀 더 힘을 내서 우리 시대의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말씀 역시 덧붙이셨습니다.
기자단인 저에게 이번 인터뷰는 4·16재단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질문에 답해주신 박래군 상임이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Q8: 올해 재단에서 진행한 가장 중요했던 사업을 꼽자면 어떤 사업이 있었습니까?
여러 일 들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 공모 과정을 통해서 설계작을 선정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사업은 재단이 해왔다기보다는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들, 시민들, 재단의 사람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안산시에 직접 찾아가고 안산시와 정부를 견인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국제설계 공모를 통해서 생명 안전공원의 설계도가 나왔다는 것. 수준 높은 시설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생명안전공원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올해 가장 큰 성과 아닐까 싶습니다.
Q9: 4·16재단과 4.16연대 세월호 가족협의회 세 곳의 소통은 잘 이루어지는 편이십니까?
우선 4.16관련 단체들은 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 유가족 협의회 등 더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지금 세월호 참사 가족은 이전의 재난 참사 가족들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의 재난 참사 가족들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면이 있었습니다. 주로 정부나 시민단체들에게 끌려갔던 측면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참사 이후 초기부터 상당히 자기 스스로 목표를 제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일례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 역시 세월호 가족들이 서로 토론해 가면서 만들어서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거기에 사회운동 단체들이 결합을 하여 함께 연대해서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간 거고요.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제 피해자들이 주체가 되는 피해자 중심의 운동을 새로운 차원에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우리 사회에서 재난 참사를 발생시켰던 문제들이 점점 해결점에 도달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사회로 만들자고 한다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활동들을 진지하게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7천여 명의 시민들이 구체적인 진상 규명 활동을 위해 모인 활동체인 4.16연대, 가족들의 모임인 가족협의회, 일반인 유가족 협의회와 소통 회의를 하며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엔 광화문 분향소 기억 공간의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 서울시의 강제 철거를 막아내고, 서울시의회 앞으로 이전 설치하는 일에 4.16재단, 4.16연대, 가족협의회가 협력해서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각자의 성격을 유지하며 앞으로도 서로 협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