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4.16생명안전공원] 공감과 연대로 반환점을 돌며_김민환(4·16재단 기억과추모사업위원회 위원장)

2025년 2월 13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명시된 ‘추모공원 조성 및 추모기념관 건립’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서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 건설의 이정표가 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4·16재단에서는 공원이 완공될 때까지 매월 공사가 진행되는 소식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합니다.

 

공감과 연대로 반환점을 돌며

김민환(4·16재단 기억과추모사업위원회 위원장, 한신대 교수)

며칠 전 우연히 딸과 ‘허전하다’, ‘허탈하다’, ‘허무하다’, ‘공허하다’는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단어의 미묘한 뜻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핍’과 연관된 이 단어들의 뜻 차이를 딸은 중학생답게 시험을 치고 나서 느끼는 감정으로 표현하려 애를 썼다. 시험을 치고 나서 목표로 했던 점수에 조금 못 미치는 점수를 얻었을 때가 허전한 경우이며, 아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시험문제가 너무 쉬워서 ‘그렇게까지 공부를 안 해도 됐을텐데’라는 감정이 들면 허탈한 것이라고 했다. 허무한 것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감정’과 유사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시험을 못봐서 정작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고, 이 허무한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어 시험 자체에 아무런 의미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 공허한 것이라고 했다. ‘결핍’의 강도를 표현하는 데 있어 나름대로 꽤 기발한 생각을 한 녀석이 기특해서 ‘아빠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어휘들과 관련해서 딸과 나의 의견이 갈린 곳은 현재의 성취와 미래의 성취 사이의 관계 속에 이 어휘들을 배치하는 문제에서였다. 딸은 허탈>허전>허무>공허의 순으로 현재의 성취를 평가하였다. 투입한 노력 대비 얻은 결과라는 기준으로 만족도가 높은 순서가 위의 순서라는 것이다. 시험점수에 관해서라면 딸의 이 순서에 동의할 수 있었겠지만, 시험이 아닌 현실의 어떤 일을 대입했더니 나는 딸보다 ‘허탈’에서 기인한 분노를 더 크게 느꼈으며, 공허에 빠지지 않은 ‘허무’의 위대함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어졌다. 얼마 전 있었던 생명안전공원 착공식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생명안전공원 착공식에서 느낀 나의 첫 감정은 ‘허탈’이었다. ‘아니 이렇게 그냥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왜 그전에 하지 못하고 이제야 하게 된 것일까’ 하는 원망이 매우 컸다. 돌이켜보면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도 몇 년 앞당겨 결정할 수 있었고, 2021년 생명안전공원 선포식 이후의 과정도 행정에서 약간만 신경 썼다면 2년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이 두 과정 모두에서 나와 동료 및 가족들은 충분한 근거와 타당한 논리, 합리적인 예측 등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이러저러한 점을 고려해야 하고, 이 문제는 미리 대비해야 하며, 그 사이사이에 이러저러한 일을 신경 쓰고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지적했지만, 그 말들은 당시에는 무시되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적어도 3년 동안 지연된 그 착공식의 현장에서 나는 많이 허탈할 수밖에 없었고, 허탈에서 오는 분노는 매우 컸다.

우리의 말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적어도 받아들여진 것은 다행 아니냐고 많은 분들이 우리를 위로했다. 오늘은 이제라도 착공식이 진행된 것만을 축하하자고도 말씀해 주셨다. 물론 나도 그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허비된 3년의 시간이 아까워 진정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 3년 동안 ‘아이들이 안산시민에게 주는 선물’인 생명안전공원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하는 것을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모색했다면 그 시간은 얼마나 충만한 시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던 것이다.

나의 허탈한 마음과 분노를 달랜 것은, 여러 번 공든 탑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공허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먼저 길을 나선 분들이 그날 지었던 표정이었다. 가족들과 그분들 곁에서 함께 하신 분들이 진심으로 웃고 계셨다. 지난 10년 동안의 과정에서 공허의 늪에 빠질 뻔한 나를 건져 올렸던 몇 장면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순간은 2016년 늦여름 영석 아빠의 울부짖음과 그 이후의 의지였다.

영석아빠는 그날 부지 선정과 관련해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지난 2년간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우리 엄마, 아빠에게 양보하라는 말이었어요. 특조위법 만들 때도, 단원고에 기억교실 남겨두려고 했을 때도, 광화문에서 단식할 때에도… 아이 잃은 부모들에게 우리가 50을 양보했으니 너희도 50을 양보하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은 50을 양보했다고 마음의 위안을 얻어서 편안해질 수 있지만, 우리 엄마, 아빠들은 50을 양보하면 전부를 양보한거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거예요. 왜 우리에게만 양보하라고 해요” 이 울부짖음은 그 이후 내가 생명안전공원 관련 일을 할 때 맘에 새긴 원칙이 되었다. 이렇게 울부짖고 난 영석아빠는 내게 가족들이 원하는 부지가 결정될 확률을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5%도 채 안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말했는데, 그는 “이제 바닥이네. 올릴 일만 남았네”라고 의지를 다졌다. 2016년은 11월 촛불로 전국이 불타오르기 전까지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할 때였다.

두 번째 장면은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이라고 하면서 온갖 혐오발언을 일삼던 사람들 앞에서 “내 친구를 모욕하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혼자 맞서던 어떤 청년의 모습이다. 아마도 세월호 아이들과 안산에서 함께 커왔을 그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나는 울컥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웃이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모질고 독한 말을 내뱉던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봉사단’을 만들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던 엄마 아빠들이 누가 더 강한 혐오의 말을 듣고 적대적 행위를 경험했는가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하던 나에게 엄마들이 “그건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예요. 그래도 김치라도 같이 담아서 전해 주고 웃으며 대하면 마음을 돌리지는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내뱉지 않게 된 사람들도 있어요”라고 말하며 위로해주던 그 순간을 어찌 잊겠는가!

여기에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혐오의 세력이 다수가 아니라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안산의 다수임을 증명해 낸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조용히 때로는 적극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날의 착공식은 이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과정을 함께 거치면서 마침내 도달한 소중한 반환점이었다. 그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오셨다고 한다. 내 마음과 의지가 살짝 다시 살아났다.

그렇다! 우리는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어렵게 겨우 반환점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왔던 길만큼의 어려움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해 왔던 우리의 역량과 연대의 힘 또한 그대로이며 앞으로 계속 강해질 것이라는 자신감도 슬그머니 생겨나기 시작했다. 각자가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함께 잘 살펴보고, 생명안전공원의 서포터가 되기도 하며, 때때로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등 생명안전공원의 주인이 될 준비를 해야 나머지 절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생명안전공원 전시를 위해 마련될 워크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며 함께 상처를 입었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노란리본을 달고 그들을 지지하며 분노하고 울었던 바로 그 ‘우리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다시 ‘시민의 시간’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생명안전공원이 될 것이다.

 

**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진행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

2월 13일에 진행된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식. 세월호참사 피해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준비한 착공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공원의 시작을 함께 축하했다.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26년 12월 준공, 2027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4.16생명안전공원의 현재 모습. 공사를 위해 부지 주변으로 공사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으며, 건축감리업체 계약이 완료되면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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