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슬픔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일을 무대에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이 물음에 답해온 지 10년이 흘렀다.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이 꾸린 극단이다. 2015년 10월 희곡 읽기 모임으로 시작돼 2016년 3월 정식 창단했다.
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드러낸 ⟨그와 그녀의 옷장⟩을 시작으로, 이후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다섯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공연장 안팎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노란리본 '엄마들'이 이번엔 낭독극으로 돌아왔다.
9월 6일 오후 5시 단원고 내부 카페에서 공연 '노란리본 희곡산책'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이 꾸려온 희곡 읽기 모임의 결실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함께 대본을 읽어 왔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나갈 사람!"
첫 번째 극이 시작되자 교복이며 체육복을 입은 여섯 명의 배우가 등장했다. 손에는 2019년 4월 초연을 올린 ⟨장기자랑⟩ 대본이 들려 있었다. 극 중 배우들은 2014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잔뜩 설렌 채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단원고 학생들이 됐다.
늘 혼자 다니며 상상 속 친구와 대화하길 즐기는 '아영'은 현실 친구가 고프다. 그런 아영에게 반장 '가연'은 같이 장기자랑에 나가자고 말한다. 손꼽아 기다려 온 수학여행을 의미 있게 보낼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거절할 타이밍을 놓친 아영을 뒤로하고, 가연은 매의 눈으로 또 다른 동료를 찾는다. 그런 가연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백희'와 퀸카 '지수', 사차원 '하늘'. 처음엔 안 한다며 손사래를 치던 친구들이 하나둘 팀에 합류한다.
극의 마지막 장면, 얼떨결에 노래방에 따라온 아영은 잔뜩 흥분한 채 마이크를 잡은 친구들 사이에 껴있다. 여전히 노래에 자신 없고, 춤은 더더욱 걱정이지만 애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면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맞추고, 춤을 추는 장면이면 모두가 어깨를 들썩인다. 낭독 틈으로 불쑥 끼어드는 배우들의 춤과 노래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객석에 앉은 이들도 함께 율동을 하고 곡을 따라 부른다.
창단 4년 만에 올린 세 번째 극 ⟨장기자랑⟩의 극본은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전기를 참고해 쓰였다. 엄마들이 아이들로 분한 건 ⟨장기자랑⟩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없는 이야기, 혹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무대 위에서 엄마들은 자신의 딸, 아들이 된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고 나이에 걸맞은 생기를 뿜어낸다. 그러는 동안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 수학여행 날만을 고대했을 열여덟 살 아이들을 본다.
2025년 7월 개막한 ⟨노란 빛 사람들⟩의 배경은 한참 후다. 2025년 4월 4.16연대 사무실,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구성원들이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모였다. 이들은 참사가 일어난 2014년부터 세월호 유가족들과 연대해 왔다.
이번 만남의 목적은 탄핵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나눌 주먹밥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우엉', '단무지', '햄', '비건'으로 소개한 활동가들이 합심해 주먹밥 1,500개를 만든다. 재료가 든 통은 너무 무겁고 계속 서있자니 허리도 아프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엄마니까요. 우리 다 그렇잖아요. 그때 우리 애가 열두 살이었는데. '세월호가 뭐예요?' 언니 오빠들이 왜 그렇게 된 거네요. 내가 엄마가, 어른이 돼서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나는요. 만약 내 아이들이 잘못됐다면 안산 언니들처럼 못 했을 것 같아요. 누구라도 죽이거나 내가 미치거나 제대로 못 살았을 거예요."
"엄마들도 그랬을 거야.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티고 견뎠을 거야."
도봉모임 활동가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은 또 다른 가족이다. 봄이면 추모 모임을 열고, 여름엔 기억 순례에 참가했다. 가을엔 함께 김장을 하고 겨울에는 연탄을 날랐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딸은 고등학생이,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직장인이 됐다.
이들은 야속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변한 것들을 본다. 구석에서 활동가들을 도와 주먹밥을 포장하던 '무지개'가 입을 뗀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매우 어렸던 무지개는 2025년 광장에서 과거에도 대통령이 탄핵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희미한 과거를 쫓다 잊고 있던 2014년 4월 16일을 마주했고, 마침 광장에서 노란 리본이 그려진 주먹밥을 받았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봉사를 자원했다. 이왕이면 예쁘게 만들려고 미리 영상도 찾아봤다.
"뜨거울 때 뭉쳐야 동글동글 예쁘게 빚어져요. 세상도 그런 것 같아요. 쌀알처럼 흩어진 우리가 식지만 않으면 언제든 뭉칠 수 있잖아요."
무지개의 말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무수한 광장을 통과한 끝에 도착한 2025년 빛의 광장을 향한 듯 들리기도 한다. ⟨노란 빛 사람들⟩이 보여주듯, 이 기억의 여정은 갈수록 깊어지며 넓어진다.
"그래도 같이 갈래요?"
마지막 낭독극에서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 김순덕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던 한 사람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을 오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과정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처음부터 배우가 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참여했지만,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직접 역할을 맡게 되고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처음 맡은 역할부터 이후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 과정에는
웃음이 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공연이 이어질수록 연극이
단순히 무대에 올라 연기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곁을 지키고 함께 걸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분명하게 알아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길을 잘 몰라요."
처음 가보는 길이라 많이 힘들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같이 갈래요?"
그리고 그 질문에는 다시
"네, 같이 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적지는 알고 있지만
그곳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는 알 수 없는 길.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함께 가겠다는 이야기가 공연을 보는 동안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가족과 시민이 함께 만든 무대
이번 공연을 보면서
이전에 혜화에서 관람했던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가족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을 만났다면,
이번에는 시민들이 함께 희곡을 읽고
다양한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대에 참여한 사람들의
연령과 목소리, 분위기가 다양하다는 점이 좋았다.
여러 시민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다 보니
희곡 속 등장인물의 연령이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낭독공연임에도 인물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또한 4·16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가족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공연이 가진 힘이 있다면,
시민들이 그 이야기를 함께 읽고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전하는 공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함께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함께 밥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희곡을 읽고 무대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것 역시
기억을 이어가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같이 갈래요?"
공연 속 이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디까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곶안 희곡읽기 시민모임 낭독공연은
가족의 기억에 시민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4월 16일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마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이어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