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보도자료
[뉴스클리핑] 8년 만에 산재보상, 세월호 민간잠수사 김순종씨, “나 혼자만 산재로 인정받아서 너무나 미안합니다”
------------
언론보도 기사내용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면 김순종(70·사진)씨는 쉬 잠들지 못한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물속에 있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왼쪽 어깨뼈가 썩어 문드러졌던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의 깊은 골짜기가 그려진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투입된 민간잠수사 25명 가운데 김순종씨가 있다. 그날 2014년 4월16일 그 배가 가라앉고 안산 단원고 아이들이 배에 남아 있다고, 같이 아이들을 찾으러 물속으로 가야 한다고 김순종씨에게 전화를 한 건 공우영 민간잠수사였다. 그때 김순종씨는 다른 민간잠수사 3명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른) 배가 빠졌어요. 그 배를 인양하러 저를 포함한 잠수사 네 명이 갔지요. 세월호가 터지기 전이었는데 그날 따라 파도가 거세서 일을 못 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던 길 위에서 그 전화를 받았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김순종씨는 차를 돌려 진도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목포에서 온 민간잠수사 네 명이 있었다. 하지만 제일 먼저 투입된 건 김순종씨 일행이었다. 첫 잠수에서는 빈손으로 올라왔다.
시야는 흐렸고 배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물속에서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격실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유리창을 깨야 아이들을 꺼내는데 도통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
“구명조끼가 물에 뜨잖아요. 배가 기울어서 격실 창문이 위로 향하니까 아이들이 유리창에 막혀 있더라고요. 워머 끝을 뾰족하게 해서 유리창 모서리 쪽을 내리치니까 깨졌어요. 4명의 아이들이 우리 눈앞으로 떠오르더라고요. 2명씩 안고 물 위로 올라왔죠. 그때가 4월17일이었어요.”
김순종씨는 “만약 아이들이 격실에서 나왔다면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대부분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참혹하게 세상을 떠났을 리 없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후략)
매일노동뉴스 / 김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