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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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
2025년 5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따개비와 나>
나는 주먹만 한 따개비를 쥐고 있다. 2년 전 이 따개비는 껍질인 채로 내 손에 쥐어졌고 나는 이 따개비와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작년 4월에 세월호참사 10주기에 맞춰 출간한 『우주로 간 고래』(교유서가, 2024)이다. 나는 전라남도 진도가 고향인 작가이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에 등단을 했다.
누구도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고향에서 일어난 일을 쓰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있었다. 소설가로서 내 고향에서 일어난 참사에 관해서 한번은 쓰고 싶었다. 나는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고 7년이 지난해에 목포에 갔다. 목포 신항만에 세월호가 거취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차를 타고 목포에 간 다음 택시를 타고 신항만으로 갔다. 세월호는 펜스 안에 갇혀있었고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서 땡볕에 서서 오랫동안 선체만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나는 세월호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북항으로 갔다. 천천히 케이블카가 움직이면서 녹슨 세월호가 보였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터미널에서 혼자 놀고 있는 흑인 소녀를 보았다. 얼마나 심심한지. 쇠봉을 붙들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가 귀여웠다.
저렇게 심심한 소녀가 친구가 없는 소녀가 내 소설 속 인물이라면.
원래 생각해 두었던 주인공인 칠십대 노인 라한은 가만히 있는데, 열다섯 살 흑인 혼혈 소녀가 불쑥 솟아났다.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을 목포의 한 독립서점에서 썼다. 열다섯 살 소녀가 내 노트에서 불쑥 일어나더니 스스로 움직이고 사건을 일으켰다.
심심해!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아.
라한 할아버지랑 친구가 되어야겠어.
나는 이 소녀에게 신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책은 세월호참사를 겪은 라한이 50년이 지난 후 칠십대 노인이 되어서 맞닥뜨리는 사건이다. 근미래에 관한 소설이다. 미래의 그 시간에 우주선 참사가 일어난다. 참사 후 7년이 지나서 우주선은 새안시로 옮겨졌고, 라한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낡은 우주선을 해체하는 작업을 맡는다. 우주선 참사 사건 때 언니를 잃은 신율이 새안시로 이사 온다. 외국인 노동자 옴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숙소에서 쫓겨난 옴은 해체 중인 우주선에 숨어서 밤을 보내곤 하는데, 이 우주선에 신율이 놀러 온다. 신율은 밤마다 옴에게 와서 언니의 이야기를 한다. 라한과 신율과 옴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이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의 초고를 2021년에 썼다. 초고 때 배경은 우주선이 아니라 세월호였다. 그러나 세월호에 들어가 보지 못했기에 내부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없었다. 선체의 내부를 볼 수 없으니 소설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고지식한 작가인 나는 모름지기 작가란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실제의 공간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그러지 못하고 썼으니 만족스럽지 않았다.
2023년 3월에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유튜브 방송팀과 동행해 진도와 목포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세월호 선체 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진도에 도착해 팽목항에서 배를 탔을 때부터 비가 내렸다. 마치 4월의 아이들이 우는 것처럼. 우리는 팽목항에서 동거차도로 향했다. 동거차도에 가는 길에 세월호가 침몰했던 지점에서 배를 멈추었다. 일행들이 국화를 바다에 던졌고 나는 내 두 번째 소설집을 4월의 아이들에게 보내주었다. 우리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와 동행했는데, 문지성 학생이 발견되었던 곳이 동거차도였다. 동거차도는 뜻밖에 아름다운 섬이었다. 동거차도에 도착해서도 계속 비가 내렸다. 나는 노란 우비를 입고 일행을 따라갔다. 동거차도의 산을 오르는 길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대숲은 마치 동굴처럼 연결돼 있었고 미끄러웠다. 대숲의 그늘을 빠져나가 언덕 위로 오르자 작은 소녀 동상이 있었다. 철로 된 소녀 동상 옆에 문지성 학생의 학생증이 걸려 있었다. 지성이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가 가슴에 품고 있던 비명을 내질렀다.
지성아!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고 몸이 마르고 부쩍 늙어 있었다. 그는 딸의 이름을 외치며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큰 슬픔 위에 놓여 있는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위에 놓이는 글은 어떤 이야기로도 부족할 것임을.
내가 가진 문장으로는 그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음을.

<세월호 선체 취재 당시> – 박지음 작가 제공
목포 신항만에 가서 세월호 선체 내부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슬픔이 차갑고 아프게 다가왔다. 선체 내부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넓고 바람이 불고 한기가 돌았다. 3년 동안 바닷속에 잠겨 있던 선체의 벽에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따개비는 바닥에도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따개비 하나를 슬그머니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선체의 내부는 녹슬어 있었고 물속에 잠겨 있던 쇠들은 날카롭게 솟아 나와 있었다. 우리를 안내 하는 분도 4월에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분은 우리를 학생들이 가장 많이 죽은 방으로 데려갔다. 방으로 나뉘어 있던 부분이 뜯겨서 자리만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아직 아이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에는 선체를 통과해서 불던 바람이 멈추고 지독한 슬픔을 품은 한기가 내 몸속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얼마나 안일한 글을 써왔던가.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나섰던가.
집에 돌아온 나는 사흘을 앓고 누워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후 주머니를 보자 따개비가 있었다. 주먹만 한 따개비는 백색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연한 보라색을 띠었다. 가운데에 손톱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작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
조그마한 따개비가 주먹만 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그 배는 물속에 있었다. 따개비는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내 몸에 담아 온 슬픔의 한기와 따개비가 지켜본 그 시간을 가지고 소설을 쓰자, 다짐했다.
나는 써놨던 글의 반을 밀어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부모들은 십 년 전 그 시간 안에 갇혀있었다. 뜯겨나간 삶의 한 부분을 채우지 못하고, 매일 그 시간 안에서 자식을 보내고 다시 끌어안으면서 견디고 있었다. 나는 따개비를 손에 쥐고 혹은 옆에 두고 소설을 완성했다.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참사 10주기였다. 나는 『우주로 간 고래』를 출간했고, 다큐멘터리 촬영팀의 윤솔지 감독은 《침몰 10년 제로썸》을 만들었다.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는 《바람의 세월》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진도 동거차도에서 같이 울고 목포 신항만의 세월호 선체 안에서 몸을 떨던 우리가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책을 출간하고 나서 강연과 북토크 하는 자리에 갈 때면 따개비를 쥐고 갔다. 나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와 《바람의 세월》 다큐멘터리의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극장 안에 가득 찬 애도를 느끼면서 손바닥이 아프게 따개비를 쥐고 견뎠다. 윤솔지 감독의 《침몰 10년 제로썸》 다큐멘터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나도 같이 갔다. 전주에서 식당에 갔을 때, 그 도시의 밤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자식을 잃고 10년 동안 싸운 부모이거나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들이 서로를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그들의 10년과 내가 책을 써온 시간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내고 나서 나는 종종 질문을 받았다.
왜 하필 세월호에 관해 썼나요?
이제 시간이 지나갔으니 그만해야 하지 않나요?
나를 외면하는 시선 앞에서 책을 쓴 나는 할 말을 잃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손에 쥐고 다니던 따개비를 꽉 쥐었다가 놓았다.

<세월호참사 10주기에 출간한 장편소설 『우주로 간 고래』> – 박지음 작가 제공
어느 날부터 뭔가가 내 몸을 짓누르는 기분을 느꼈다. 몸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지곤 해서 지인들을 만나면 기운이 없다고 말했다.
따개비 때문인가?
험한 자리의 물건을 들고 왔다고 사촌이 나를 타박했다. 정말 내가 힘든 게 따개비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부모들의 한과 4월에 죽은 아이들의 시간을 품은 따개비를 어딘가에 묻어주거나 보내주고 싶었다. 제주도에 수학여행 가지 못한 아이들이니 제주도에 보내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컵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잊고 있다가 다시 봄이 되었다.
따개비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옆에 놓여 있다. 이제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색깔은 더 진한 보라색으로 변했으며 귀퉁이가 깨져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내가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했던 부모들과 팽목항과 동거차도의 시간, 노란 리본이 펄럭이던 신항만의 선체를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인 내게 생생하던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4월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어떤 존재였는지. 따개비처럼 껍질만 남은 유가족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내가 담을 수 있었던 이야기와 내가 담지 못한 애달픔이 어떤 것인지.
지난 2년은 나를 내적으로 성장시켜주었던 시간이었다.
유가족이 내 손을 잡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줘서 고맙다고 애썼다고 말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손이 준 힘으로 인해 나는 계속 작가로 살고 있다.
나는 이제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2년 전과 같은 작가가 아니다. 따개비가 내게 온 시간 동안 나는 한 귀퉁이씩 깨지면서 나의 4월과 나의 세월호와 내 고향 섬을 다시 세웠다.
꽃이 핀다. 4월의 바람은 아프다. 차다. 따개비는 세월호의 기억과 내 손의 기억을 작은 구멍에 담고 내 옆에 놓여 있다.
박지음 (소설가)
2014년 영남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취재를 통해 10주기인 2024년 장편소설 『우주로 간 고래』를 발표했다.
작품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관계의 온도』, 『우주로 간 고래』, 『나 거기 살아』, 『소방관을 부탁해』, 『나의 왼발』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