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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선우은실] 코끼리 팔찌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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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은실


2026년 2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선우은실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코끼리 팔찌 >

코끼리 팔찌가 돌아왔다.

*

인천대공원 식물원의 열대식물관 한복판에 일곱 살 즈음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서 있다. 거대한 야자수
나무가 여자 아이 위로 거대하게 드리워져있다. 여자 아이는연두색 홀터넥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챙모자를 썼다.
원피스는 꽤 시원하고 찰랑찰랑하지만 조금 따갑다. 특히 가느다란 어깨끈이 피부면에 거칠게 달라붙는다. 덥고 땀이 나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목 부근을 두어 번 긁는다. 긁은 곳이 살짝 붉어진다. 여자 아이는 청키한 느낌을 주는 통굽의 하얀 샌들을 신었다. 이 슬리퍼는 여자 아이가 여름 내 신게 될 신발이다. 어느 날은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수영복을 입고 모래 사장을 잘도 뛰어다녔다. 여자 아이는 눈이 부신 듯 사진을 찍히는 표정이라기엔 애매하게 인상을 구기고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검지와 중지를 펼쳐보인 손을 따라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면 조금 두꺼운 은색 체인으로 만들어진 팔찌가 걸려 있다. 팔찌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살짝 긁는다. 팔찌는 가끔 거슬린다. 브이를 해 보인 손목 안쪽면으로는 팔찌의 잠금쇠가 보인다. 손목 바깥 부분에 걸쳐 있을 타원형의 장식으로 팔찌를 돌려보면-

*

코끼리 팔찌.
김을 구웠다느니, 귤을 샀다는데 맛이 덜하다니 하는 엄마는 요즘 부쩍 재태크에 관심이 많다. 금값이 많이 올랐다더라고 말한다. 금 같은 걸 사는 건 당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엄마는 미래를 생각한다. 당신 자신의 그리고 나의. 아마도 10년이나 20년쯤 뒤까지 금 같은 것을 팔지는 않고 오직 사두기만 한다면, 사서 모아둔다면 약간의 이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유 있는 미래. 나중엔 이런 것이라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조만간의 미래에는.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을 산다.

요즘엔 은도 많이 올랐대. 엄마는 지갑에서 뭔가를 꺼낸다. 나는 그걸 알아본다. 미취학 아동 시절 끼고 다녔던
팔찌, 곧잘 끼고 다녔고 그런 탓에 유년 시절의 사진 이곳저곳에 잔뜩 찍혀있는 그것. 대체로 브이를 했기 때문에 장식은 보이지 않고 늘 잠금쇠와 체인만 보였지만 코끼리 팔찌라는 건 그 일부만 봐도 전부 알 수 있는 거였다.
그걸 알아본다. 팔찌의 잠금 장치가 고장난 뒤에는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을 그것을, 그렇게 된 지 벌써 20년도
훌쩍 지나버린 그것을.

어, 코끼리 팔찌다.
너 이게 기억나?
당연하지. 이거 어디서 찾았어?
찾긴, 갖고 있었어.
타원형 은판 앞면에는 코끼리가, 뒷면에는 이름과 당시 인천 살던 집의 전화번호가 손글씨로 적혀있다.
이것은 미아 방지 팔찌다. 예전에는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이름, 집 전화번호 따위를 적어서 팔찌나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주었다. 만약 아이가 길을 잃는다면 누군가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 아이를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길을 잃는다면 이 아이를 발견한 사람은 팔찌나 목걸이 안쪽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번호를 확인할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행방을 알릴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을 소리내어 호명하는 일은 미아방지 팔찌나 목걸이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는 코끼리 팔찌를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끊어진 팔찌를, 더는 착용할 수 없는 팔찌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잃어버리지 않았더니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았다.

금은방에 가서 금은 사지 않았고 대신 팔찌를 맡겼다.
팔찌를 수선하려고 하는데요. 좀 짧아서 길이를 늘리고 잠금장치도 교체하려고요.
네, 전부 은으로요. 체인하고 비슷한 디자인으로 연장해주세요.
아뇨, 뒷판에 글자 적혀 있는 건 지우지 말아주세요.

나는 더는 미아가 될 수는 없고, 전화번호도 더는 유효하지 않지만 미아방지 팔찌를 차고 걷는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것이다. 유효하지 않은 번호로 전화를 걸 수도 있다.
선우은실 tel. 032-……..

선우은실 (평론가)

삶의 실제에 더 밀착한 언어로 동시대 문학을 읽어내는 문학평론가다.
2016년 비평 활동을 시작해『소설보다』시리즈 등 다양한 지면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첫 평론집『시대의 마음』을 통해 젊은 비평가로서의 단단한 문제의식과 성찰을 선보인다.

주요 작품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시대의 마음』,
『TEXT』전시, 『고대대학원신문』연재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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