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김중미]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그 이후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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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2024년 2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중미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그 이후>

 

 

2016년 1월 3일 저녁, 공부방 아이들과 신년회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날 새벽 3시 조업을 나갔던 영욱이네 배가 밤 8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욱이 아내와 공부방 삼촌들이 연안부두로 나갔다. 해경이 선장과 선원이 없는 영욱이네 빈배를 발견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영욱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부인 엄마 손을 잡고 공부방에 왔다. 영욱이의 꿈은 부모님처럼 어부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은 당연히 영욱이의 꿈을 무시했다. 그런데 영욱이는 대학을 졸업한 뒤, 기어코 어부가 되었다. 영욱이가 어부가 되는 걸 응원하고 지지했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영욱이와 영욱이 아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이 공부방에 다닌 친구였다. 공부방 아이들은 어부 삼촌을 자랑스러워했고, 우리는 영욱이 덕분에 비싼 꽃게나 삼치, 자연산 광어를 얻어먹었다.

이틀 만에 뭍으로 올라 온 영욱이의 시신은 잠이 든 것 같았다. 흔들어 깨우면 눈을 떠 우리를 향해 멋쩍게 웃어줄 것 같았다. 그때 2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구조되어 올라올 때 유족들이 아이들이 바로 전까지 살아 있었던 것 같다고 울부짖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랬겠구나, 수온이 낮은 바닷속에서 올라 온 시신은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났어도 그대로였겠구나. 그걸 본 부모와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졌겠구나.’ 생각했다.

장례를 2주나 미뤘지만 끝내 선장과 다른 선원의 시신은 찾지 못해, 영욱이 혼자 장례를 치렀다. 영욱이 아내와 아들이 강화로 이사 온 것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해 봄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무렵 세월호 생존자와 청소년 유족들의 글 모음집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출간되었다. 책을 읽고 북 콘서트장에 가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2년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내는 생존자와 청소년 유족들을 보며 미안했고, 부끄러웠고, 몹시 아팠다. 벚꽃을 반길 수 없다던 세월호 유족들이 떠올랐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죽어가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무력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마당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는지 고양이 레오가 다가와 야옹거렸다. 처음에는 밥을 달라는 줄 알았는데 밥그릇을 밀어내며 계속 야옹거렸다. 물을 주어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을 치워줘도, 놀아주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돌아앉았다. 그러기를 되풀이하다가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레오의 눈에 걱정과 원망이 가득했다.

“레오야, 혹시 엄마가 걱정 돼?”

레오가 그제야 내 발목에 몸을 비비며 가릉가릉 거렸다. 며칠 동안 레오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한 마음에 레오 앞에 앉아 영욱이와 세월호 희생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오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 귀를 쫑긋거렸다. 다 듣고 나서는 내 무릎에 앞발을 올리더니 뺨을 핥아 주었다. 레오의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레오가 내게 말을 건네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동안 나는 눈과 귀가 멀어있었다. 그동안 레오나 다른 고양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몸짓과 눈빛을 유심히 살피려고 노력해 왔지만, 고양이들이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는 길고양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별을 경험한 존재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국가와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그 주인공들을 통해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과 슬픔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이별을 지켜보는 우리는 어떻게 그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나누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4.16 참사는 우리가 이전에 겪었던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대구 지하철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사고, 해병대 캠프 사고, 용산참사까지. 유가족과 시민들이 외쳤던 철저한 사고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고, 세상은 ‘사건’만을 기억할 뿐 희생자와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기억하지 않았다. 늘 고통과 진실규명은 당사자와 유가족의 몫이 되었고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끝까지 감시하지 못했다. 평범한 시민인 내게 그 참사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다시는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16 참사 2년 뒤 인천 남동공단의 한 전자 회사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희생자 9명 중 한 명이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아기의 엄마였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아기를 두고 일하러 나왔을 엄마가 처한 현실은 어떠했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 후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와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고, 공장에 대한 소방 점검이 형식적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억울한 죽음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을 마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2019년 ‘웃음을 선물할게’라는 청소년 엔솔러지의 청탁을 받고 4.16 참사와 그 화재 사건을 모티프로 단편소설을 썼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희생자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에게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에 대해 썼다.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을 접한 것은 4.16 참사 이후였다. 성폭력 피해자, 사회나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의 몽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 년을 버텨 온 힘은 그와 같은 고통을 지닌 이들의 연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함께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안산분향소를 지키고, 도보 행진과 오체투지를 하고, 단식을 하고, 청와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동안 그들은 함께해 준 사람들 덕분에 종종 웃고 종종 슬픔을 잊었다. 그런데 그 웃음을 꼬투리 삼아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언론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비난을 들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져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이 년 뒤 대학생이 된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의 형제자매로, 생존자로 만나 함께하게 된 인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혼자서는 웃을 수 없다. 웃음은 관계 속에서 나온다. 웃음은 견고한 슬픔과 고립을 깨는 힘이다.“

4.16 참사는 작가로서의 ‘나’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인 ‘나’, 세월호 세대라 하는 청년 세대의 어머니인 ‘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4.16 참사는 그저 2014년 일어난 불운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4.16 참사가 사회에 던진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4.16 참사 때 청소년기를 지난 청년들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 트라우마와 함께 성장했다. 당연히 내 작품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단편 동화 ‘다이너마이트’에도, 빈곤과 노동 그리고 여성 3대의 이야기를 다룬 ‘곁에 있다는 것’에도 4.16 참사가 등장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인 ‘너를 위한 증언’에도, 2023년에 낸 ‘느티나무 수호대’에서도 4.16 참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4.16 참사를 작품 속에 억지로 꿰맞춰 넣으려는 것은 아니다. 4.16 참사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각인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그 시대를 말하는 창작 작품 속에 4.16 참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4.16 참사 이후 공동체 식구들은 2014년 내내 주말마다 시청광장, 청계천, 광화문으로 나가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외침에 목소리를 더했다. 그 큰 배가 왜 침몰했는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왜 구조되지 않았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의 무기력한 국민으로 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유족들과 희생자 또래의 청소년들을 보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해만 해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로 대학생 10명이 죽고 100명이 넘게 다쳤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에만 고양 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원 화재,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환풍구 붕괴 사고, 오룡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메르스 사태, 팬데믹,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건물 붕괴, 22년 광주 아이파크 붕괴가 이어졌고 이태원 참사 같은 어이없는 사건들이 멈추지 않았다. 그 참사들로 가까운 지인을 잃은 것도 아는데 가시를 삼킨 것 같은 고통이 이어졌고, 모든 날이 살얼음을 디디는 것과 같았다. 해마다 일터에서 2000명의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깔리고 불에 타 죽는다. 청년, 청소년의 사망 원인 중 절반이 자살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생명이 존중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국가와 이웃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를 사는 것은 사공 없는 배를 탄 것처럼 불안하다. 그 불안을 이겨내려면, 내가 억울한 사고나 사건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가 목소리를 보태고 손을 잡아야만 한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또 다른 4.16을 막을 수 있다. 어쩌다 어쭙잖은 작가로 살아가게 된 내가 작품 속에서 4.16을 말하고, 불러오는 이유다.

 

……

 

김중미 (어린이청소년 작가)

작가이자 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라 불린다. 2000년 창비좋은어린이책 공모전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청소년소설·동화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너를 위한 증언』, 『곁에 있다는 것』, 『느티나무 수호대』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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