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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한정현] 복수 보다 더 깊은, 기억되기 그렇게 기억하기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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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2026년 5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한정현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복수 보다 더 깊은, 기억되기 그렇게 기억하기 >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을 뜬금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극중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 중 한 명이자 나중엔 또 다른 가해자들 때문에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최혜정을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문동은은 최혜정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않냐며 약을 건네는데, 최혜정은 도무지 자신을 도우려는 문동은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그런 최혜정에게 문동은은 이렇게 말한다. 왜 자신이 그토록 복수하고 싶었는지 아냐고.

“기억되고 싶어서.”
문동은은 그렇게 말한다.

가해자가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것, 그건 피해자와 피해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수보다 뼈 아픈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애당초 ‘얼마가 필요한 거냐’라고 묻던 박연진도, 자신을 도와주는 것에 또 다른 대가가 필요한 게 아닌지 의심하던 최혜정도 전부, 모두 다 틀렸다. 어차피 가해자들은 절대 모를 테지만, 처음부터 문동은은 보상을 바란 것도, 복수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저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 거다. 그래, 기억되기. 나는 이 짧은 영상 끝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랬으니까. 사람들에게서 어떤 사람들이 영원히 그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 역시 ‘기억되게 만들기’ 방식의 복수인 글쓰기를 선택했던 것 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기억되기, 기억하기에 집착하면서 글을 써왔다. 그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가족사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세대엔 증거도 없는 좌익사범으로 몰려 할아버지의 두 형이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졌고 아버지 세대인 90년대 초에는 작은 아버지가 서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한국 같은 총기 강력 규제의 국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다니. 솔직히 모든 기억이 생생한 나조차도 우리가족에게 일어난 그 일이 가끔은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실제 일어났고 가족을 잃은 가족들은 인정하지 않은 국가 앞에서 깊은 절망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래도 매해 작은 아버지를 기억해주는 그의 친구들이나 지인들 덕분에 조금은 이겨내고 살았던 것이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년엔 오랜만에 그런 의심을 받았다. 작년 연말 광주의 한 문학 관련 국제 행사에서 작은 아버지의 일을 다른 패널로부터 의심받은 것이다. 그 행사는 5.18과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피해자의 가족인 내게 밑도 끝도 없이 ‘네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던 것인지 그것이 농담이라면 농담인 채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참고로 그는 5.18 피해자나 관련된 인물, 행사 기획자들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 채 흐지부지한 채 멍한 기분으로 행사가 끝났고, 그렇게 행사장을 나오는 중에 미술평론을 하는 관객 중 한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여성 분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네이버 신문 라이브러리를 켜서 년도와 내가 말한 작은 아버지의 성함을 검색했고 곧장 그 사건의 기사를 줄줄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 또한 방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게, 검색만 해도 나오는 그 사건이 자신이 알고 있지 않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피해자 유가족의 면전에 대고 진위를 의심하는 상황이라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 가족들이 무수히 겪었던 일들, 그러니까 도리어 피해자를 의심하고 심문하는 그런 일들. 그저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 일이 잊혀져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 국가에 항의하고 세상에 어렵게 목소리를 내었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도리어 ‘네 기억이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그런 일에 무너져내리던 가족들을 수도 없이 보고 자랐다. 나는 내 가족을 잃은 또 다른 내 가족들의 진심이 기억되길 바랐다. 물론 그들이라고 항상 옳은 말만 하거나 도덕적인 선택을 하며 인생 전체를 살아가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적어도 그들이 당한 피해를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망각하고 도리어 그걸 팔아먹기까지 한다는 굴레까진 씌우게 하고 싶진 않았었다.

매해 4월 16일이 되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망연히 서 있던 어린 내가 된다.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의심의 말까지 꺼내놓는 사람들 앞에선 복수를 하고 싶었던 글을 막 쓰기 시작하던 시절의 한정현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오래 4월 16일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복수가 아닌 기억이라는 말을 좀 더 오래 용기 내어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설사 작년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믿고 싶다. 그리고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의심이나 망각 대신 기억이라는 단어를 새긴다면, 아마 이 복수심은 영원히 기억이라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계속, 4월 16일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한정현 (소설가)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대표작으로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가 있다.
개인의 서사와 사회적 기억을 교차시키는 작품을 선보여왔으며, 2020 퀴어문학상,
2021 젊은작가상, 2022 김유정문학상, 2022 부마항쟁문학상, 2025 5·18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쿄코와 쿄지』, 중편소설 『마고』,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산문집 『환승 인간』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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