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31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들 |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1주기 추모식

'서울 서초구 양재동 227-3'

매헌시민의숲을 걸어본 시민이라면 지나갔을 이곳에, '횃불탑'이라고도 불리는 삼풍참사위령탑이 있습니다.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듯, 대지에서 새싹이 움트는 듯, 봉황이 두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듯 보이는 '횃불탑'은 둥근 태양을 상징합니다. 그 이면에는 앞으로 이런 참사가 없고 햇빛처럼 밝은 세상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지난 6월 29일, 이 횃불탑 앞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31주기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올해 추모제는 하반기 삼풍백화점 미수습자가 있는 노을공원 내 추모표지석 설치를 앞두고 열렸습니다.

추모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삼풍백화점 참사로 희생된 502명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소중한 마음들이 놓였습니다. 이름 앞에는 "사랑하는"이 붙었고, "보고싶다"로 끝났습니다. 말로는 미처 다 못 담을, 자꾸만 눈에 밟혀서 지나칠 수 없는 마음들이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1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세 번은 변했을 시간입니다. 당시 중년이었던 유족은 노년이 되었을 시간입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추모제에 함께했습니다. 삼풍유족회 등 삼풍백화점 유족을 주축으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416재단, 416연대, 416합창단, 한국시설안전협회 측에서 참석했습니다.

추모제의 발언은 삼풍유족회장학재단 이사장의 경과보고로 시작됐습니다. 이사장님은 삼윤장학재단이 故 김창식 삼풍유족회장, 서울시북부교육청 교육장 등의 협조와 서울시교육청 위탁으로 공익법인장학재단이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2001년 설립 이후 2026년까지 "유가족 자녀와 사회배려자계층 청소년 668명에게 장학금 총액 6억 990만 원을 지원했다"는 성과를 보고하며, 장학재단의 취지는 "붕괴사고로 명을 달리한 이들의 거룩한 명예를 보존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보람된 사업"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11월 중에는 노을공원 추모조형물이 설치되고 제막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노을공원 추모공간의 조성 경과는 진옥자 유족(故 정창숙 어머니)이 보고했습니다.

 

진옥자 님은 미수습자 정창숙 님의 어머니입니다. 진 씨는 노을공원이 "편히 와서 쉬는 공간이 아니고 내 딸이 잠들어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먼저 짚었습니다.

 

이어 노을공원 추모공간의 의미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가족 향우들과 함께 기억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두 모인 곳"이며, 앞으로 노을공원이 "희생자를 오래 기억하고 유가족이 언제든 찾아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경과보고에서 진옥자 님은 줄곧 노을공원 추모공간 조성은 혼자였다면 어려웠을 일이었지만, 재난참사피해자연대와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끝까지 함께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3천여 명의 시민이 추모표지석 설치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는 의미를 되새기고, "서명운동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꼭 기억해주셨으면 한다"는 점을 공유했습니다.

 

추도사에서 삼풍유족회장학재단 이사장은 장학재단에 뜻을 함께한 유가족과 후원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장학금의 의미는 "희생된 영령들이 남기신 씨앗을 세상에 다시 심는 일"이며 "지원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그 뜻을 이어 사회를 밝히는 따뜻한 인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하늘의 별이 된 502명의 영령들'께 간절히 기도하며, 숭고한 뜻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살아 숨쉴 것이라며 추도했습니다.

 

한국시설안전협회 정석봉 회장은 "참사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남았다"며 "안전은 어느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중요 가치이자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한국시설안전협회는 전문가단체로서 "보다 정밀하고 책임 있는 정밀진단을 시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추도사가 마무리되자 헌화 및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스텔라데이지호참사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재난참사피해자연대에서도 헌화하였습니다.

이후 삼풍유족회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는 김문수 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삼풍 참사로 동생을 잃은 형"이라고 소개했다. 추모 행사가 전 과정에서 참석자들을 안내하고 다른 재난 피해자 단체와 인사를 나누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1년이 지난 지금, 청년 세대가 삼풍 참사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묻자 그는 먼저 '인식'을 이야기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를 우연히 벌어진 사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참사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닙니다."

 

그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도 이미 여러 경고 신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백화점 내부에서는 정전이 반복되고 수도관이 터지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임시 조치와 보수로 상황을 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러한 선택들이 누적되면서 참사로 이어졌다고 바라봤다.

 

"사람들은 보통 '설마 저 큰 건물이 무너지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전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합니다."

 

그는 이후에도 반복된 여러 사회적 참사를 언급하며 사고의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고, 사고 이후에야 원인을 되짚고 후회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년 세대가 참사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안전 불감증을 경계하는 태도'였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재난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경고들이 쌓인 결과라고 말했다. 위험을 과장된 걱정으로 치부하기보다 사전에 문제를 감지하고 관심을 갖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무관심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는 "참사가 일어나면 결국 다들 후회합니다.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때 더 목소리를 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부채의식'이라고 표현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지나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야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실제로 삼풍 유가족들 역시 이후 반복된 재난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그때 더 강하게 싸웠더라면, 더 사회를 바꾸려고 했더라면 이후의 참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동안 참사를 보도한 언론에 대한 생각도 질문했다. "많은 재난을 거치며 언론 보도로 인해 유가족들이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느끼셨는지"를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끝까지 추적하기보다 누가 더 슬퍼하는지, 누가 더 크게 우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그는 참사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비극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질문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자신의 발언이 기사에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 경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서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기사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힐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상처로 남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언론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바라는 점도 전했다.

"앞으로 피해자를 또 만들지 않으려면 원인을 보고, 구조를 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꼭 "그런 기자가 되겠다"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꼭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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