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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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2026년 6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아버지의 모자 >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제 막 6월이 되었을 뿐인데 한국은 벌써 한여름처럼 무덥습니다. 며칠 전엔 제가 사는 동네 온도가 31도를 넘었어요. 이번 더위는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빠르게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올여름 폭염을 걱정하고 경고하는 뉴스들이 올해에도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자정부터 새벽까지 원고를 쓰던 습관이 달라져 요즘은 한낮에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창을 향해 앉는 자리라서 원고를 마주 보고 앉으면 한낮의 빛을 향해 얼굴을 드는 자세가 됩니다. 저도 이제는 나이 들어 시력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요즘 햇빛이 유난히 강렬하고 눈을 쏘는 듯해 더 어둡고 그늘진 자리로 책상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11년 주기로 돌아오는 태양 활동의 극대기라고 합니다. 태양의 왕성한 활동으로 표면에 자기장이 강해져 흑점이 늘어나는 시기로 이때엔 지구도 이런저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작년과 재작년엔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극지방뿐만 아니고 지구 북반구 여러 도시의 하늘에서 오로라가 관측되기도 했지요. 매년 기록을 경신하곤 하는 폭염은 인간의 과한 활동이 일으킨 기후 재난일 테지만 올여름 대낮의 유난한 눈부심은 아무래도 태양의 왕성한 활동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 하면 ‘더위’를 떠올려도 곧 ‘휴가’라는 말을 함께 떠올리곤 했는데 이제는 여름, 하면 재난 수준의 날씨를 먼저 생각합니다. 양산을 쓰지 않으면 여름 한낮엔 거리를 걷기가 어려울 정도지요. 여름에 이렇게 햇빛이 따가우면 저는 아버지의 맨머리를 걱정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오십 년 동안 종로3가 세운상가에 있는 오디오 수리실에서 일하셨어요.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에서 머리를 보호하려고 출퇴근길엔 늘 모자를 쓰고 다니셨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오래 전에 [모자]라는 제목으로 시시때때로 모자가 되곤 하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단편을 쓰기도 했지요. 모자를 선택하는 아버지의 기준은 꽤 까다로워서 맞는 것이 있으면 그거 하나만 머리에 쓰고 다니셨습니다. 겨울용으로는 귀까지 덮을 수 있는 방한 모자를 쓰면 좋겠지만 겨울에도 여름에 쓰고 다니던 야구 모자만 사용하셨어요. 덕분에 모자는 늘 낡았고 땀에 절어 있었지요. 저는 여름에 너무 덥고 겨울에 너무 추울 때면 아버지의 맨머리를 걱정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어떻든 그 걱정은 습관이자 자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오늘 모자를 쓰고 나오셨을까. 그걸로 머리를 잘 보호하셨을까. 혹시나 머리가 너무 뜨거워지거나 너무 차가워져서 어딘가에서 쓰러지지는 않을까.
올해 폭염이 막 시작된 날에도 저는 그런 걱정을 했다가 올해부터는 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아버지는 작년 여름에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파주에 있는 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응급실에 계신 줄 알았는데 서울 가는 길에 재차 받은 연락을 통해 그가 이미 영안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족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라서 충격이 컸지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수리실과 창고들을 정리하느라 저는 반년 동안 다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십 년 동안 세 개의 공간에 쌓이기만 한 사물들을 들어내고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연락해 되돌려 보내는 일을 하느라 아버지 삶의 자초지종이며 제 마음 같은 것은 되짚어 보지도 못했지요. 다만 순간순간 고통스러웠을 뿐이며 그 고통에 잠겨 움직이지도 못할까 봐 무언가를 느끼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지냈습니다. 해야 할 일, 그것만 생각하면서요.
그 와중에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에 저도 모르게 ‘잘 지내지 못한다’고 즉답하고서야 저는 그 질문과 대답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을 듣고, 잘 지내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일. 그것이 저에게 꼭 필요했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저런 일을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원고도 다시 쓰고 있고 달리기도 다시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폴란드에 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맑고 파란 하늘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들을 보았고, 친절하고 조용하고 수줍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저는 이 더위 속에서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는 이런 날에도 괜찮은 순간과 괜찮지 않은 순간이 번갈아 찾아오곤 하지요. 괜찮지 않은 순간에는 처음의 고통에서 조금도 줄지 않은 고통으로 저는 찢기고 뒤흔들립니다. 느닷없이 뚫린 구멍 같은 것이 제 삶에 있지만 저는 이것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제가 어딘가에 쓴 그대로 “그들의 부재로 구멍 뚫린 저는 그들이 한때 세상에 존재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시사IN, 7월에 게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즘 반복해 꿈을 꿉니다. 꼭 세운상가를 닮은 어두운 장소를 헤매고 다니며 수리실을 찾지만 찾아내지 못하는 꿈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저는 이런 꿈을 꾸었지요. 세운상가에서 뭘 잃어버려 헤매고 다니다가 문득 아버지를 만나서 “아빠, 나 잃어버렸어”하고 하소연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로 바빴는지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그 때문인가 봅니다.
어제는 그 길 어딘가에서 크게 운다는 이유로 뺨을 맞고 꿈에서 깼습니다.
황정은 (작가)
사라져가는 감정과 기억, 사람 사이의 공백을 섬세한 언어로 기록해 왔다. 지나간 시간과 놓쳐버린 마음, 멀어지는 것들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개인의 내면과 관계의 결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문학동네와 열두 명의 필자가 함께한 『눈먼 자들의 국가』(2014) 공동 집필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작은 일기(에세이)』, 『야만적인 앨리스씨』, 『끌어안는 소설』, 『백의 그림자』,
『팔꿈치를 주세요』, 『연년세세』, 『아무도 아닌』 『계속해보겠습니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