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기, 있다. 벽 위 새겨진 글씨. 굳게 닫힌 공장 앞 무대가 설치되고, 파란 스카프를 맨 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6월 24일, 아리셀 참사 2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제 현장이다. 아리셀참사대책위원회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가 주최했다.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리튬 배터리 제조 업체 아리셀에서 배터리가 폭발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해 노동자들을 밀어붙이고, 현장의 위험 신호를 무시한 결과다. 아리셀은 납품을 맞추고자 파견 업체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았다. 불법 파견된 노동자들은 제대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됐다. 참사 이틀 전, 리튬 배터리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공장을 계속 가동했다. 참사 당일, 노동자들은 탈출을 시도했으나 근처에 접근 가능한 비상구가 없었다. 하나뿐인 출구는 화마에 휩싸였고 정규직 직원의 지문을 찍어야 열리는 또 다른 문은 파견직 노동자들에게 무용했다. 명백히 막을 수 있던 인재(人災)였다.
참사 이후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위반(중처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올해 4월 22일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유족과 민사상 합의를 마친 점이 고려되고, 중처법 위반 혐의가 일부 완화된 까닭이다. 2심 재판부는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 방침 설정 의무를 위반했다'는 1심 판결의 '의무'가 추상적이므로 인명 피해와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중처법을 무력화하는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유가족들은 '용서해서가 아니라 살아야 했기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며 합의를 감경 근거로 삼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책임자 처벌과 유해 수습을 외치며 2주기를 맞이했다.
*이예리, '아리셀 유족 "살기 위해 합의했는데 감형… 죄책감"', 〈더팩트〉, 2026. 4. 28.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목소리를 보탰다. 우다야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아직 열악하고 안전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라고, 언어가 다르다고, 제대로 안전 교육도 하지 않습니다. 안전 교육을 해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사업주가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다치거나 죽어도 제대로 목소리 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에 무관심합니다.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바뀐 게 거의 없습니다." 우디야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죽으러 오지 않는다"며, "국적과 고용 형태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아리셀 참사는 대규모 산업재해이기도 하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장연미 씨는 "힘없는 노동자 유족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하냐"고 말했다. 장 씨는 2024년 9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 씨의 어머니다. "연대해 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회사는 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다고 딸이 돌아오지도, 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회사의 사과는 저를 살게 하는 작은 힘은 됐습니다. 아리셀 가족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요."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은 박순관 대표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사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도 자리를 지켰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등이 참석했다.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이상학 씨가 "화성시에서 더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랐는데 2년 전 스물세 분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 모두는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는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금전 보상을 했다고, 1층 외의 층은 작업 공간이 아니기에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다고 감형했습니다."
영정 사진을 든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랐다. 아리셀 참사로 딸 故 엄정정 씨를 잃은 이순희 씨가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입을 뗐다. 2024년 3월 엄 씨는 가족과 함께 살고자 한국에 입국했다. 한 달 후, 생계에 보탬이 되겠다며 아리셀에 입사했다. 참사는 그해 6월 발생했다. 엄 씨의 유해는 지금도 온전히 수습되지 않았다.* 이 씨는 2심 결과를 두고 "너무 억울하고 대한민국 법은 이것밖에 안 되냐"고 물었다.
*손가영, '스물넷 딸 유류품에서 발견된 햇반, 졸업장 안고 정착한 한국에서 멈춘 꿈', 〈프레시안〉, 2026. 6. 25.
"돈 있는 사람들은 법도 무시하고 살 수 있는데 왜 피해자들은 맨날 울며 땡볕에 다녀야 합니까? 끝까지 도와주십시오. 유가족들 힘으로는 뭐 하나 할 수 없습니다. 이국 땅에서 일하다 죽었는데 손톱 하나라도 찾아서 편안히 보내고 싶습니다."
남편 故 김병철 씨를 잃은 최현주 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김 씨는 아리셀에서 3년간 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최 씨는 "지난 2년 동안 버티고 견뎠다"며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아리셀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참사를 취재하는 기자였다. 〈충북인뉴스〉에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를 보도해 왔다. 참사를 줄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그러나 '내 일'이 되니 달랐다. 제도를, 법을 바꾸면, '정말 그러면 사람이 죽지 않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최 씨는 2024년 7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김성욱, '"회사의 태도가 참사" 참사 취재하던 기자, 남편을 잃다', 〈오마이뉴스〉, 2024. 7. 20.
'아리셀이 가족들을 단 한 번이라도 인간으로 대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우리만 살아남아서 슬프다'고, '동료들이 보고 싶다'고 얘기했더라면, 지금 가족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건,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짓밟히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사로는 그렇게 많이 썼는데, 저는 이제 정말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어요.'
무대에서 내려온 유가족들은 공장으로 향하자 참가자들이 뒤따랐다. 참사 현장에 차린 상에 희생자들이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을 올렸다. 그 옆엔 참가자들이 놓은 국화가 수북했다. 우느라 휘청이는 아리셀 참사 유가족을 보라색 셔츠를 입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끌어안았다. 헌화를 마치고 공장을 빠져나온 이들은 회색 담장에 연대 메시지를 남겼다. '잊지 않겠습니다.' '오래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희생자를 상징하는 23개의 파란 리본 위에 약속이 차곡차곡 쌓였다.
유가족들의 발언 뒤에는 ‘왜 이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를 이야기하는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송성영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아리셀 참사는 노동자의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위험을 외주화·이주화해 온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말했다. 특히 희생자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국적이나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참사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교육 부족과 사업장 변경 제한 등으로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설명하며 “이주노동자는 죽으러 온 것이 아니다. 모든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추모제에 참석한 한 씨랜드 참사 유가족은 27년 전 씨랜드 참사 이후에도 화성에서 또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안전보다 비용이 우선되는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 오요안나 씨의 어머니는 같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아리셀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뜻을 전했다. 그는 “회사의 사과가 딸을 다시 돌려주지는 않았지만 살아갈 작은 힘은 되었다.”고 말하며, 아리셀 유가족들은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이어 경기도와 화성시에 유해 수습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며 “23명의 죽음을 막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유가족들이 가족을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진희 민주노총 경기본부 본부장은 “회복이라는 것은 단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해소될 때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미수습 희생자 유해의 온전한 수습,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 아리셀 재발 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것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진상이 밝혀지지도, 사과와 처벌도 없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세상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추모제 내내 가장 많이 들렸던 구호는 “유해를 온전히 수습하라”는 외침이었다.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추모에 머무는 위로가 아니었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유해를 온전히 수습하는 일, 참사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 그리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생명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참사의 진상은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고, 희생자들은 아직 온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회복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이 다해지며, 미수습 유해가 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회복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