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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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2024년 7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이희영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리고 언제까지나>
언제부터
안산행 버스에 올랐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이 룸미러를 흘낏거렸다. 그리고는 아무 대답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차창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절도 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릴 때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기사님도 올 때처럼 조용히 출발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인 건, 스크린 속 사진들이었다. 교복을 입은 채 다소 어색한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들. 분명 학생증에 사용된 사진들이었으리라. 그런데 왜 저곳에 있을까? 왜 저런 곳에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있을까? 묻고 싶지만 대답해 줄 사람도, 목소리도 없었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눈물을 닦는 사람들, 숨죽인 흐느낌, 깊은 탄식이 한 덩어리가 되어 주위에 힘겹게 떠다녔다.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 벽에 붙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 눈물에 번진 글씨들도 보였다. 펜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그곳을 벗어났다. 그날 합동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모두 소리를 잃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무거운 걸음걸음들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뒤늦게야 눈치챌 수 있었다. 멀리 학교가 보였다. 이곳으로 오래전에 돌아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너무 많은 아이가 저곳을 잃었다.
학교 앞 상점에서 두 여학생이 나왔다. 그 학교의 교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학생은 잠시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한 명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당신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 썼다고?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안전을 생각했다고?’
그제야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그 소리가 뾰족하게 날아와 꽂혔다. 그 무덤덤한 얼굴 앞에서 더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언제부터 너희들을 이렇게 생각했다고, 신경 썼다고, 대체 우리가, 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학교 앞 아이들의 눈빛은 지금도 선명하게 가슴에 박혀 있다. 세상은 그 눈빛을 결코 사라지거나 지워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시절 어린이집을 다니던 내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곧 고입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초등학교의 모든 여행은 없던 일이 되었다. 중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장 체험이 취소되었다. 가까운 곳에 다녀오는 일정으로 짧게 끝냈다. 아이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안심했다. 가지 마.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안전해. 안도의 한숨 뒤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먼 거리만 아니면 괜찮을까. 비행기나 배 버스를 타는 여행만 아니면 괜찮을까. 그렇게 모든 활동을 금지하고 취소시키면 안심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아니었다.
배를 타지 않아도, 장거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또다시 누군가의 이름과 사진이 절대 있으면 안 되는 곳에 걸리게 되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렸을 뿐이었다. 집 앞에 잠깐 나갔을 뿐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냥 기분을 내려 했을 뿐이었다. 그저 단순히 정말 단순히….
그 거리를, 그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자! 이제는 뭐라 해야 할까. 배도 타지 말고 장거리 여행도 하지 말고 사람 많은 곳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해야 할까.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대체 언제까지….
언제까지라도.
그날 안산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4월이면 연 쪽빛의 융단을 펼쳐놓은 하늘만 봐도 눈시울이 아려왔다. 나는 지금 그날 그 배에 올랐던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들을 만나고 있다.
“작가님 저희 졸업여행 다녀왔어요.”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무사히 잘 다녀왔구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아주 간절하게….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전히 눈물이 나는데, 내 마음도 여전히 이럴진대,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매해 돌아오는 잔인한 4월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까? 바다보다 깊은 한과 물빛보다 퍼런 가슴의 멍을 어떻게 다독이고 있을까? 살아내고 있을까?
시간은 여전히 그날 그곳에 멈춰있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멋대로 그만하라 하는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여전히 끔찍한 아픔과 고통이 되풀이되는데, 도대체 왜 잊어야 하고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언제까지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반복할 거냐고. 언제까지 이 무책임한 사태를 되풀이할 거냐고….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은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아이는 그날의 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들은 그날의 일을 정확히 배우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 누구도 이런 기억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기억하는 것이 아닌, 기억에 저절로 새겨진 고통이기에. 언제까지라도…언제까지라도 기억될 수밖에 없는 아픔이기에.
오직 그것만이 ‘대체 언제까지….’ 이 답답한 외침을 반복하지 않을 유일한 길이기에.
이희영(소설가)
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로 2013년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희영 작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한다.
작품
『BU 케어 보험』,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소금 아이』, 『챌린지 블루』, 『테스터』, 『페인트』, 『셰이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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