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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정혜윤] 세월호와 기후위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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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2024년 8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정혜윤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세월호와 기후위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나는 주로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라디오 피디다. 피디로 살면서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날부터 한 달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시 나는 새벽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서 맨 처음 해야만 하는 일이 팽목항에 전화하는 것이었다. “구조된 사람은요?” 우리 모두 알다시피 숫자는 줄곧 0이었다. ‘영’이란 대답을 듣는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영’과 ‘일’이 얼마나 다른 단어인지 그때 알게 되어버렸다. 아무도 없는 것과 하나라도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고 완전히 다른 세계다.

첫 일주일은 전화기 너머로 부모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동굴 안쪽에서 상처 입은 채 피 흘리는 동물이 내는 신음 소리 같았다. 우리 가슴 안쪽에는 선홍빛 피를 흘리면서 신음하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이 있었다. 견디기 힘든 날은 방송이 끝나고 나서 회사 앞 공원에 가서 나도 울었다. 난생처음 울음이 눈이 아니라 목구멍에서 먼저 올라오는 경험을 했다. 한번은 울고 있는 다른 피디를 만나기도 했다. 서로 못 본 척해줬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희생자들의 인간적인 세부사항들이 내 영혼에 너무 많이 들어와 버렸다. 빌려 신고 간 축구화나 탈출할 줄로만 알고 메고 있던 기타나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에 먹은 피자 한 조각이나 세월호 매점에서 사 먹던 새우깡까지도.

그러나 2015년 이후부터는 여전히 슬프나 다른 시간과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때는 또 이 슬픈 가족들과 함께 한때 살았던 아이들, 그러나 이제는 없는 아이들의 죽음이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지 않게 뭐라도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함께’ 애를 태웠다.

사고 이틀 뒤, 한 남학생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했다. “우리 누나 저기 배에 있는데 왜 아무도 꺼내주지 않는 거야. 나 수영할 줄 안다고. 내가 가서 구해 올 거야.” 어른들이 몸부림치는 남동생을 뜯어말렸다. “야, 이 새끼야. 바다에 뛰어들면 너 죽어. 죽는다고!” 물에 들어가려는 자와 말리려는 자의 몸싸움은 통곡으로 끝났다. 어느 날 아버지들끼리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다가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런데 왜 우리 중에 아무도 바다에 뛰어들지 않은 거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쩌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우리 사랑은 그렇게 약했던 거야? 너무 조금만 사랑한 거야?’

거의 모든 사람은 살면서 두 가지 일을 겪는다. 사랑과 죽음이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그 일을 겪은 사람을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들은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했다.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족이라면 거의 누구나 이런 말을 했다. “두려울 게 없어요. 자식을 잃었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내게는 이 말이 두려움 없이 사랑하겠다는 말로, 모든 것을 다 해보겠다는 말로 들렸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은 시간과 함께 줄어들기는커녕 나날이 더 커지기만 했고, 이제는 없는 사랑하는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삶뿐이었다.

부모들과 팟캐스트(416의 목소리 시즌1)를 만들고 라디오 다큐를 만들고 집회에 다니던 그때가, 내가 진정으로 나 자신의 힘을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고백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진짜로 살기 시작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좋다. 이런 말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지 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나는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인간적으로 성장도 하고 싶었고 의미 있는 일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좋은 삶’을 뭔가를 구해내는 것과 한 번도 연결시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죽음은 너무나 강렬했다. 죽음이 어찌나 사무쳤던지 좋은 삶,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은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해내고 살릴 수 있는 것을 살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내면화되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 생명의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삶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변화를 겪는 사이에 세월호 부모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자신들도 슬퍼 죽겠는데 자꾸만 다른 슬픈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세상을 떠난 가족들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것은 고통이었다. 유족들은 그 유산 덕에 남의 슬픔을 몇 곱절 크게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오송 참사 유족을 봐도 이태원 참사 유족을 봐도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우리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이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을까? 구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후회하고 미안해하는 존재로. 우리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니었을까? 분명한 것은 슬픔이 합해지면서 새로운 사람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방식으로, 2018년은 특별했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기후 비상 시위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흐른 2019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광화문을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초중고생 300여 명이 3・ 15 청소년 기후 행동 집회를 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도 거기 가자. 어른들이 함께 있다고 말해주자!” 너무 멋진 말이라서 내가 먼저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분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길에 세월호 참사 분향소를 지났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따라 그때 당시 세월호 참사 분향소는 상당 부분 철거되어 있었다. 팻말이 하나 덩그라니 서서 그곳에 며칠 전까지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무 팻말에 적혀 있던 문구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였다. 그 문구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더니 공교롭게도 건너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누군가 구조해 주길 기다리며 배 안에서 줄을 서 있던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들이 바로 떠올랐다. ‘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머 대각선 위치에서, 아이들이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잖아.’ 살기를 원했으나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가슴 찢어지는 기억은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지켜줄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유족들은 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을 했기 때문에 상황이 수천수만 번이나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유족들이 겪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있는 것이라서 견디기가 힘들다.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유일한 희망의 여지가 있다. 그 희망의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유족들은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다. 기후위기 상황을 살아가는 내 마음도 그렇다. 이제 우리 중 누구도 엄청난 생명이 위험에 처한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모를 수 없다.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쳐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이 내용 없는 텅빈 말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사랑한다는 것은 구하고 살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가족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꾼다. 아직도 매일 사랑한다. 그들이 잃어버린 육체는, 마치 공기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만약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유족들은 여기에서 다른 아이들을 구하면서, 다른 생명들을 구하면서, 따뜻한 몸을 만지고 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1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지금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 떠올린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 옆에 아기가 둥둥 떠 있었다. 자신들도 겁에 질렸을 학생들은 팔을 머리 위로 길게 뻗어 아기를 들어 올리고 손에서 손으로 날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아기가 있어요. 아기가.”

정혜윤(PD/작가)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이자 작가. 세월호참사 피해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들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세월호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등의 작품으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작품
『아무튼 메모』,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삶의 발명』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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