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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이길보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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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2025년 9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이길보라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밤낮으로 아이에게 젖을 줄 때였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재우고는 소파에 앉았다. 한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싶었다. 하루 종일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남은 시간에는 겨우 눈을 붙이던 일상과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소설책 하나를 골랐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어떤 대목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읽는 것을 자주 멈춰야 했다. 1970년대에 미국 정부의 토지 개발로 수몰된 지역을 배경으로 쓴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이었다. 광활한 대지와 산맥 속에서 자라난 소녀가 운명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임신을 하고 결국 산속으로 도망쳐 혼자서 출산을 준비하고 아이를 낳고 그 생명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다가 아이의 삶을 위해 아이를 버린 후 그를 평생이나 그리워하게 되는 선택들에 대한, 그럼에도 계속해서 펼쳐지는 생을 두 발로 딛고 바라보는 강인함을 그린 소설이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척박한 환경에서 출산하고 탯줄을 끊고 굶주린 상태로 젖을 먹이면서도 난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과 기쁨, 충만함에 가득 차는 장면에 깊이 공감했다. 끔찍이도 아끼는 아이에게 더 좋은 삶의 조건을 주기 위해 아이를 버리는 대목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가슴이 저려 책장을 덮고 울었는데 겨우 재운 아이가 깰까봐 입을 막고 소리 죽여 울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이전과는 다른 경험과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이제 나에게는 평생 아끼고 보호해야할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에 감정이 실렸다. 이전에는 힐끗 보고 말았을 신문기사 한 줄에 별안간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자주 멈춰 섰다. 보호자가 막 두 살이 된 아기를 두고 3일간 집을 비웠다는 뉴스에 양육자 없이 잠들고 깼을 아이를 상상하며 목이 메어졌고, 갓 태어난 아기를 고의로 죽였다는 기사를 보고는 사람이 어떻게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생명에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냈다.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동굴에 고립되고 구조되는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가 끝내 구조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몇 차례나 정지 버튼을 눌러 울었다. 아이가 동굴 속에 있는데 그 엄마가 어떻게 밥을 먹어, 어떻게 잠을 자, 어떻게 살아, 정말로 어떻게 살아……. 부끄럽지만, 이렇게 쓰는 것이 정말로 부끄럽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내 배로 낳아 평생을 함께 한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얼마 전이었다. 이제 막 15개월이 된 아이를 두고 홀로 출장을 갈 계획을 세웠다. 아이 없이 종일 영화를 보고 책을 읽겠노라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이제는 아이도 제법 컸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함께 양육을 하는 파트너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는 그의 가족에게도 함께 아이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어린이집에도 아이가 처음으로 주양육자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라 충격이 클 텐데 잘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출발 전날,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했다. 엄마와 떨어지게 될 아이의 분리 불안을 걱정했지만 막상 마주한 건 엄마인 나의 분리 불안이었다. 아이 없이 잠을 잘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자다가도 눈을 떠 코 밑에 손을 대어 숨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땀을 흘리지는 않는지 머리 밑을 만져봐야 하는데, 손발이 춥지는 않은지 알아봐야 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아이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오동통한 발바닥을 손에 쥐어야 하는데. 그거 없이 내가 어떻게 자. 아기 없이 내가 어떻게 눈을 떠. 안으면 품에 쏙 들어오는 아이 없이 내가 어떻게 외출해……. 자리에 주저앉아 울다가 항공편 출발 세 시간 전에 아이 몫의 표를 샀다. 야심차게 준비한 독립은 실패했다. 아이 없는 일상을 생각할 수 없었고 해낼 수도 없었다.

아이에게 자주 읽어주곤 하는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에서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분리 불안을 다룬다. 아이는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면 문을 두드리며 울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도 어딜 다녀왔냐며 엄마에게 매달리면서 함께 있기를 요구한다. 그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며 성장한다. 캠프를 가고 수학여행을 가면서 엄마에게 나는 잘 있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의 빈 방에 앉아 엄마는 아이를 그리워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아이야,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렴. 날다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오렴.”

노란색 배경이 표지로 된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4.16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이거 한 번 읽어보자며 매번 꿋꿋한 목소리로 낭독을 시작하지만 중간에 목이 메어 울고 만다. 수학여행을 간다며 씩씩하게 집을 떠났을 학생들이 생각나서, 언젠가 신발을 제 손으로 신고 나갈 나의 아이가 떠올라서, 아이의 방에 앉아 돌아오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유가족의 모습이 그려져서다. 그렇게 엄마가 된 나의 경험을 경유하여 4월 16일을 기억한다.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창피하지만 분명한 건 아주 더 깊고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꿋꿋하게 책장을 넘기며 이것이 어떤 이야기인지 깊고 오래 아이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라는 거다.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그로부터 다름과 상실,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작품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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