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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고예나] 진이를 그리며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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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나


2026년 4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고예나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진이를 그리며 >

광화문역에서 내려 교보문고로 향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일상의 흔한 풍경을 보았을 뿐인데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진이가 어렸을 적 잔업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했다. 그 때는 그게 가장으로서 잘 하는 거라 믿었다. 바쁘단 핑계로 책을 손에 쥐어준 적도, 옆에서 읽어준 적도 없었다. 진이의 엄마에게 자식의 시간을 통째로 맡겼다.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못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진이가 바다 속에서 눈을 감았을 그 시간, 행복한 기억을 한 줌이라도 건져 올렸을까. 그 속에 아빠라는 사람이 있었을까.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어디 가서 튀는 행동 하지 마라.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딸자식의 마지막을 그렇게 만든 건 아닌지.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와서 기다렸고 튀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서 끝까지 잠자코 있었던 건 아닌지.

진이는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발견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용돈을 쥐어주었는데 그때 샀던 새 옷과 새 신발을 착용한 채로 건져졌다. 꿈속에서처럼 얼굴의 살점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지갑 안에 있는 학생증이 아니었으면 건지고도 몰라볼 뻔 했어. 훼손된 진이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광복절을 맞은 광화문 광장엔 태극기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서울 시장이 바뀌면서 광장도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여전히 사복경찰이 상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상 주변으로 사복경찰들이 어지럽게 오간다. 고개를 들자 8월의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더듬더듬 올려다본다. 그 날도 장군의 표정은 늠름했다.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나는 약간의 용기를 얻었던가.

유가족 몇 명이 모여 단식농성을 했다. 그러나 천막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흰 덮개가 드리워지자 결단을 해야 했다. 누군가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 유가족은 도로를 막는 경찰들에 의해 진압을 당했다. 유가족 측의 변호사가 막는 건 불법이라고 따졌다. 물리적 폭력과 긴 대치가 이어졌다. 차벽에 가로막히는가 하면 물대포와 캡사이신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을 것임을. 90년도에 의경 생활을 하던 시절, 참으로 많은 단체들과 몸싸움을 했다. 그 때도 이렇게 철망을 치고 폭력을 휘두르며 진압을 했다. 이는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단 권력자의 소리 없는 의중이었다. 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던 당시 그 역할을 참으로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25년이 흘러 이제는 젊은 의경들과 힘겨운 대치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청와대 민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통령 면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대변인은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지, 대통령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어떻게든 바꾸고 말겠다는 결의가 섰다. 이대로 굶어 죽어도 좋으니 끝까지 단식하기로 했다.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는 어느 의원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당신이 그만두지 않으면 나도 하겠다며 내 옆에 앉은 그가 머지않아 대통령이 되리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때였다. 광화문 거리가 따스한 촛불로 일렁일 것도, 탄핵정국으로 이 세상이 소용돌이치게 될 것도, 그리고 함께 단식을 한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끝내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리란 것도 알 수 없던 때였다. 그랬기에 배는 고팠지만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광화문 광장엔 분향소도,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도, 보란 듯이 그 앞에서 치킨을 뜯어먹던 청년들도 없다. 경찰과 이순신 동상만이 거리를 지킬 뿐이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비석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은 장수들에게 필승을 강조했다고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언제 올 거냐는 진이 엄마의 짧은 메시지를 오랫동안 본다. 진이를 낳고 한 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던 이가 언젠가부터 주말에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내겐 시민 단체가 진짜 형제자매야. 교회 지붕 아래에서만 함께 라고 외치는 그들은 가짜였어.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람으로 살 거라고 말하던 날 나는 뭐라고 응수했던가. 곧 돌아가겠다고 쓰려다 멈칫한다. 곧 돌아가겠다고. 곧 돌아갈 거라고.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배가 침몰하던 초반부터 정부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목포시는 목포시대로, 전남은 전남대로 허우적거렸지만 진두지휘해야 할 정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기 체계적으로 돌아간 것은 오직 자원봉사단들 뿐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였다. 골든타임을 놓친 아이들은 죽은 채로 발견되거나 죽어갔다.

대통령은 뒤늦게 찾아와 유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대국민 성명도 했다. 하지만 실천은 없었다.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인 게 아니고서야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각본이 짜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연출되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내 딸이 그런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리 없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샛별들과 그 샛별들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내던진 희생자들과 살아있음에 죄책감을 느껴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생존자들까지… 누가 이들의 슬픔을 양산해냈단 말인가. 배후가 있지 않고서야 이 어마어마한 아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유가족을 손가락질했다. 자식 팔이를 한다고 비난했다. 단지 배가 침몰한 원인과 7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을 허비한 이유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그조차 듣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했다. 판도라 상자는 아직도 단단히 봉인되어 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수군을 폐하라는 임금의 지시에 수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작은 글씨로 써 있다. 다시금 고개를 든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장군이 한 미물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다시 올 때는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돌아선다. 8월의 습기를 머금은 태극기가 인사하듯 나부낀다. 사복경찰의 옷깃이 설핏 팔뚝을 스친다.

고예나 (작가, 소설가)

2008년 <마이 짝퉁 라이프>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개인의 서사가 시대의 아픔과 만나는 지점을 꾸준히 그려왔으며, 현재 팔일오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주요 작품

장편소설 『오션토피아』, 『경성 브라운』, 『마이 짝퉁라이프』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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