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 기자단] 세월호참사 9주기 선상추모식, 304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김현재 기자

“올해도 기억하러 찾아왔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4·16재단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빎과 동시에 오래도록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려는 목적으로 매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선상추모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일, 참사해역인 전남 진도군 조도면을 찾은 유가족 및 재단 관계자는 약 60여 명.

참석한 단체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일반인유가족협의회, 4·16재단, 4.16연대, 안산온마음센터, 인천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사)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소속 부모님들과 4·16재단 직원들은 안산에서 다 같이 버스로 전라남도 목포까지 이동했으며, 이후 목포 해경의 군사용 배인 ‘함정’에 탑승했습니다.

참고로 함정에 들어가기 전, 위급상황을 대비하여 구명조끼를 지급받았습니다. 배 외부(갑판)에 나갈 때, 필히 안전을 위해 착용해야만 했습니다.

선상추모식 도중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갑판 한편에 고속단정이 마련돼 있었으며, 이를 수상구조사 3명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였습니다.

배에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리기 위한 국화가 실렸습니다. 헌화를 위해 준비되었으며, 이내 꽃과 함께 세월호참사의 아픔이 존재하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으로 향하였습니다.

3시간가량 항해 후, 참사해역을 알리는 노란 부표가 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태양광으로 전력을 충전하여 밤에도 환히 빛나는 부표로, ‘세월’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어 바라보고 있자니 더욱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바로 이곳에서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올해도 참사 해역을 찾아 무고하게 희생당한 모든 이를 기억할 것입니다.”

갑판에 서 있던 모든 이가 노란 부표 부근에서 일동 묵념을 시작으로 선상추모식에 참여했으며, 묵념 음악 외 바람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묵념 이후, 순서는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수진아빠)의 추도사였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있었던 4월… 가족에게는 잔인한 달인 4월이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벚꽃나무 아래에서 환하게 웃던 그 맑은 얼굴과 봄 계절,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함께 물놀이를 즐기던 여름, 독서와 캠핑을 함께 하던 가을, 눈사람을 만들던 겨울, 아이들과 함께했던 장면을 지금도 회상하곤 합니다.”라며 단원고 희생자 유족으로서 그리움과 슬픔을 이야기했습니다.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이어서 “부모에게 있어 세월호참사 현장은 꼭 와야만 하는 장소입니다. 아이들이 마지막 생을 보낸 이곳을 어떻게 방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원고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국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 참사.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가족들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라며 세월호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와 함께 앞으로 유족들이 해야 하는 일을 짚었습니다.

다음 순서로는 일반인희생자 유가족대책위원회 전태호 위원장의 추도사였습니다.

“많은 유가족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음을 우리 모두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맙시다. 일상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전 위원장은 세월호참사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을 대표해 발언하였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조하며 김종기 운영위원장의 이야기에 힘을 보탰습니다. 일상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활동하자는 의지를 가족들에게 전했습니다.

노란 부표 부근의 참사 해역에 도착하자, 4·16재단 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헌화를 참석자들에게 건넸습니다.

헌화는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과 지인, 그리고 재단 직원과 활동가, 이후 목포 해경 순으로 진행되었음을 알립니다.

조용히 서로를 위로하며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참사로 인해 마음 아픈 이들이 너무도 많음을, 그리고 그 아픔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음을 실감하였습니다.

뱃고동을 세 번 울린 뒤 참사해역을 선회하였습니다. 멀어져 가는 부표를 바라보며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이후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있는 목포신항을 방문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그 외형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녹이 슨 세월호 앞에서 가족들은 한 번 더 묵념과 헌화를 진행하였습니다.

헌화와 함께 묵념을 한 뒤, 참석자들은 세월호 선체를 한 바퀴 돌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분명 그 어딘가 있을 아이들의 영혼을 보살피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참석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안산에서 전남 목포로, 전남 목포에서 다시 참사 해역으로. 가는 길도, 짊어진 마음의 무게도 유난히 거대하게 느껴져 참 버거웠습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을 결코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가족들의 심적 고단함과 힘겨움을 가늠해 볼 수 있었던 시간임은 분명합니다.

살아생전 “엄마!”, “나 왔어.” 등 지극히 일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기에, 이내 여러 번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로만 희미하게 음성 비스름한 소리를 엿 듣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가족들은 늘 마음이 아파옵니다.

4월 16일,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합시다.

김현재 기자 글(전문) 보러가기

윤선영 기자

16일 오전 4·16재단 직원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과 함께 안산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로 향했습니다.

목포에 도착해서는 이내 목포 해양 경찰서 전용 부두에 정박해 있는 경비함정을 타고 참사해역으로 향하였습니다. 참고로 이전의 선상추모식은 세월호참사 유족들이 자체적으로 배를 빌려 참사해역에 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배에 탑승한 후, 3시간을 달려 1040분쯤, 드디어 참사해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참사해역임을 알리는 부표가 보이고, 이내 단원고 희생자 아이들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펼쳐졌습니다.

김빛나라 어머님(김정화 님)의 추모사가 기억납니다.

우리 곁에 있다면 어느덧 스물일곱이 되었을 텐데. 어떤 청년이 되었을까. 너희들의 꿈이 이 땅의 희망으로 있다면 참 좋겠어. 그리고 오늘 밤 우리 꿈에 나와서 좀 안아주라. 꼭 좀 안아주라. 너무너무 보고 싶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딸들···.”

이후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들은 국화를 바다 위에 던지며 아이들을 기렸습니다.

이날의 하늘은 정말이고 맑았습니다. 출항하기 전 잠깐 비가 왔는데, 참사해역에 도착하고 보니 하늘이 맑고 해가 났습니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습니다. 그날의 생각을 기점으로 감정 조절이 힘들 만큼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사실 감정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 앞에서 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무례를 저질렀다고 앞서 적게 된 것도, 모두 이 때문입니다.

모자라게도 미안함과 죄책감, 부채감이라는 감정에 매몰돼 버렸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때 18살의 우리는 모두 제주도에 잘 도착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 잔인한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나 혼자 살아남아 27살이 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게 죄스러웠습니다. 바다 위 표면에 떠 있는 국화꽃을 보며 되뇌었습니다. ‘미안하다. 당사자도 아닌, 유족도 아닌 내가 여기서 함부로 이런 감정을 갖고, 함부로 감정을 터트린 것에 대해 용서해달라고··· 이내 뱃고동 소리가 세 번 울렸습니다.

배는 부표 주변을 돌고, 30여 분간의 추모식을 끝으로 목포항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바다 위에 부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족들은 갑판 위에 그대로 남아 참사해역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거치된 선체 앞에서

선상추모식 이후, 세월호가 인양돼있는 목포신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세월호 선체를 찾은 유족들은 묵묵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헌화를 한 번 더 진행한 후, 선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다시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이날 처음으로 세월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던 세월호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녹이 슬 동안 난 왜 하나도 몰랐을까. 왜 지금껏 알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이 광경을 보게 되었을까.’

세월호는 내 기억 속에 있는 것처럼 계속 멈춰있고 머물러 있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의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조용히 혼자 되뇌었습니다.

기억한다’, ‘추모한다저라는 사람 속에 세월호참사를 오래도록 새길 것입니다.

윤선영 기자 글 (전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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