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생명안전버스 – 인현동 화재 참사] 스물 네 번째 추모식, “보고 싶은 아들딸들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를 아시나요? 24년 전 10월 30일,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학교 축제 이후 뒤풀이를 위해 모인 학생들은 인근 건물의 상가를 방문하였고, 그 상가에서 큰불이 발생하여 많은 이들이 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해당 건물 지하에서 시작된 불길은 이내 2층과 3층으로 번졌고, 해당 층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연기에 질식하거나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화재 발생 당일 인천 시내의 10여 개 고등학교에서 가을 축제가 진행되었던 터라, 이에 축제의 즐거움을 조금 더 누리고자 했던 이들이 피해를 입게 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이 가슴 시린 참사의 사망자는 52명으로 인천여상, 경인여상, 인천광성고, 정석항공과학고생 등으로 희생자의 절대다수가 청소년이었기에, 이에 어리다는 이유로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모욕이 크게 일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사 피해자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 어디 24년 전뿐이던가요? 이에 인현동 화재 참사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사는 매번 비슷한 양상을 띄고, 그 참사를 접하는 사회구성원인 우리 역시 어쩌면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에. 누군가는 반성, 누군가는 침묵, 누군가는 외면, 누군가는 모욕..

24년 전, 인현동 화재 참사 당시의 상황을 짚어 봅시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탁자와 의자가 빽빽하게 배치된 곳으로 통로가 참 좁은 곳이었습니다. 이에 참사 희생자들은 적당한 대피로를 찾지 못하였고,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어 유가족들의 절규는 그칠 새가 없었습니다.

인현동 화재 참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건물 내부 구조물이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등 열에 취약한 소재로 되어있었다는 점입니다. 건축 당시 연소에 강한 물질을 사용하는 등 화재를 사전에 방지할 만한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사 피해를 더욱 키웠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영업을 하던 점주는 손님으로 앉아있던 청소년들이 화재 발생을 눈치채고 대피하려 하자, “돈을 내고 가라”며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받아내고자 문을 잠가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점주는 안에 갇힌 학생들은 뒤로 하고 홀로 밖으로 대피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학생들을 배 안에 머물게 한 뒤 홀로 밖으로 피신한,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우리는 24년 전 인현동 화재 참사의 모습을 9년 전 세월호참사에서도 보게 됐던 걸까요?

어른들이 지켜주지 않는 사회.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

24년 전 인현동 화재 참사와 9년 전 세월호참사, 그리고 1년 전 이태원참사까지..

스물 네 번째 추모식에 오른 인현동 화재 참사의 유가족 대표는 “어제는 이태원참사 1주기였습니다. 많은 이가 약속했던 그 안전한 세상이 제발 이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연설을 마쳤습니다.

추모식 이후 진행된 모임에서는 또 다른 유가족이라고 밝힌 노년 여성이 “왜 우리 아이가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한다고 나가서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는지는 아직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 말을 채 있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현장은 또 한 번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 마련된 추모비와 인현동 화재 참사 피해자를 위한 모임 공간을 방문한 이들은 4·16재단의 생명안전버스 사업에 참여한 이들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상준 엄마와 방송계 노동인권의 문제점을 세상에 전한 고 이한빛PD의 엄마이자 한빛미디어인권센터의 김혜영 씨, 삼풍백화점 생존자 산만언니(필명),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김선옥 씨 등이었습니다.

참사를 경험한 이들, 함께 하다.

인현동 유가족을 포함한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한 데 모여 나눈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삼풍백화점 생존자, 산만언니(필명)) –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귀중한 생명을 기록하고 말해야겠다는 차원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게 참 큽니다. 세월호참사 304명, 이태원참사 159명 단순 사망자 숫자로만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 심각성을 쉽게 잊게 되는지도 몰라요. 그런 건 남의 이야기 같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꼭 담아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삼풍백화점 생존자로서 여러 번 제 삶이 힘들다고 느끼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었습니다. (중략) 마흔 넘어서 기록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인현동 화재참사 당시 어른들이 잘못한 건데, 왜 아이들에게 안 좋은 시선들이 갔던 걸까 싶죠. 지금도 그렇잖아요. 왜 아무런 잘못 없는 피해자들을 매번 이야기할까요?”

(세월호참사 유가족 상준 엄마, 강지은) – “온갖 말을 들을 때면 마음 아프죠. 그래도 연대 받고 연대하며 힘을 많이 얻게 되어요. 세월호참사는 정말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잖아요, 저도 잘 알죠. 그러한 세월호참사도 이제 9년이 지나니 관심을 많이 못 받고 있어요. 그러던 중 시선을 옮겨 다른 참사는 그 외면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계속 이러한 자리에 다니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제가 힘이 되어드릴 거예요. 이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니, 더 도와야죠. 참사 피해자들의 아픔을 잘 알기에 아픔을 지금도 겪어내는 분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아래 사진은 참사 유가족의 발언 기입 순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선욱) – “사망자만 2천 명이 넘어요. 숨만 쉬며 사는 피해자들 역시 정말 많죠. 5년 가까이 소송 중인데, 참 서글프죠. 다른 참사 피해자와는 달리 아픈 환자들도 많아 투쟁이 원활치 않아 진전이 안 되는 느낌에 지칠 때가 많습니다. 여태 하소연할 때도 없었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죠. 참사가 계속되니까요.”

(씨랜드 참사 유가족, 실명 비공개) – 참사 이후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설립되었어요. 참사 이후 한 발짝 나아간 거예요. (중략) 아이를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그래서 그런지 좀 전에 인현동 화재 참사 추모식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24년 만에 유가족분들께 이러한 모임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우선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회안전망 구축을 토대로 계속 관심 갖고 연대할 겁니다.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 실명 비공개) – “남겨진 기록을 보았는데, 유가족들이 돈을 요구하더라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우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자식 잃고 경황이나 있어요? 참사 이후 5일째 되는 날 돈을 요구했다는 그 기록을 보니 미치겠는 거죠. 학생들을 통해 모금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수사기록을 들춰보니 유언비어 자료들을 여럿 발견하게 돼 분노가 일더라고요. 신문엔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라고 하고.. 왜 아이들을 자꾸 욕보이게 할까요?”

재난 참사 유가족들은 해결되지 않은,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참사 현황을 이야기하며 지역사회와 참사를 연결시키는 일을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이 중 “한국 사회에 참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는 데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활동할 인원이 없어 큰 문제”라는 의견을 내자, 이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맥락 속에서만 기억하기에 추모공간의 건립은 그래서 필요하다,는 재난 참사 피해자들의 의견을 여러 목소리로 접하게 되어 다시금 사회안전망과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죽음을 겪어야만 했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참사로 인한 희생을 개인적 죽음으로만 삼고 있다면, 단순 생과 사의 범위에서만 무언가를 해결하려 한다면 인류애를 기반한 성숙의 사회는 없고 고군분투의 피비린내 나는 사회만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요.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참사 유가족이냐 아니냐, 진보냐 보수냐가 과연 중요한 핵심인지, 그리고 이것들이 매번 논의되어야 마땅한 것인지 우리 모두는 살피어야 합니다. 안전한 세상을 위한 일과 가슴 아픈 이를 보듬는 일에 지속적으로 동참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섯 달 동안 이어진 생명안전버스는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의 공동주관 사업으로 지난 과정에 참여해 주신 많은 참여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4·16재단은 재난 피해자들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며 부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적절한 방향을 거듭 고민해 나갈 것입니다. 내년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 시작되는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226401-04-346585

(국민,416재단) 

 

[후원문자]

#25404160

(한건당 3,300원)

 

[후원ARS]

060-700-0416

(한통화 4,1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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