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4.16꿈속학교에서 '노란리본 희곡산책' 첫 모임이 진행됐다. '노란리본 희곡산책'은 2026 기억과 약속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5월 11일 첫 모임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총 13회에 걸쳐 운영된다.
이번 모임은 단순히 희곡을 읽는 시간을 넘어 노동과 연대, 그리고 사회적 기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한 문장씩 대본을 읽어 내려가며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갔고, 작품이 끝난 뒤에는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참가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 배역을 맡아 희곡을 읽었다. 참가자들은 대본을 한 문장씩 이어 읽으며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함께 공유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이야기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비를 맞고, 거리에서 싸우고, 외면당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버틴다. 희곡 속 상황은 단지 극 안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 삶과 맞닿아 있었다.
모임이 끝난 뒤 사회자는 작품을 소개하며 당시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는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 촛불 들고 있었던 노동자분들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연극으로라도 그 마음을 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연결됐다. 사회자는 당시 노동 현장에서 직접 투쟁을 경험했던 참가자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참가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밖에서 싸웠다"며 "그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 가족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 속에서 노동자들이 고립되는 모습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립감이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희곡은 단순한 대본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연결하는 매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희곡 속 장면을 읽으며 당시 자신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이야기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이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는 작품 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와 연결해 바라보는 대화들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노동과 안전, 사회적 고립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며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날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작품이 끝난 뒤 이어진 자유로운 대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들고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한 참가자는 "희곡을 읽는 동안 예전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작품 속 장면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경험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모임은 무겁기만 한 분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회자가 중간중간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참가자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후 사회자는 다음 주에 읽게 될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다음 작품은 기존의 노동극을 바탕으로 하되,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해 담아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이번 희곡 읽기 모임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과 재난, 안전과 공동체의 문제를 현재의 이야기로 다시 연결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희곡을 읽으며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 반복되어 온 고립과 상실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이번 모임은 '함께 읽는 것' 자체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혼자 책을 읽을 때와 달리, 여러 사람이 같은 문장을 나누어 읽는 과정에서는 각자의 감정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같은 대사라도 누가 읽는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졌고, 어떤 문장은 조용히 읽혔지만 또 어떤 문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희곡 속 이야기와 참가자들의 현실 경험이 겹쳐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노동 현장에서의 싸움, 사회 속 고립, 누군가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감정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얼마나 함께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이날 모임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연극을 만들고, 누군가는 희곡을 읽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기억은 거창한 방식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고 듣고 말하는 작은 시간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희곡 읽기 모임은 노동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세월호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던 삶의 경험들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희곡 속 인물들의 목소리와 참가자들의 경험이 겹쳐졌던 이날의 시간은, 단순한 낭독 모임 이상의 의미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