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어떤 시간은 캔버스 위에 쌓인다 | 4.16공방 유화 수업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6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창문 너머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오는 한 공방으로 향했다. 바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내 4.16공방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4.16공방 엄마들의 손은 끊임없이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만듭니다.

갑자기 돌아오지 못한 아이에 대한 상실감을 채우기라도 하듯 엄마들의 손은 쉬지 않고 바느질을 하고 실로 매듭을 엮고 노란 나비를 만들었습니다.

바삐 움직이던 손에서 작은 소품들과 멋진 전시 작품들이 나오기까지 4.16공방 안에서는 엄마들의 이야기와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전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제를 찾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며 아이 이야기하다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중략)

 

이렇듯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희망이 있는 희망이 보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방 안에서 모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힘을 모으고 쓰러지지 말자는 다짐들을 수없이 해왔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온 세월호참사 엄마들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 지난 10년의 고단함, 지난 10년 동안 이루고자 했던 안전 사회, 희망 등이 담겨있습니다.”

 

– 지난 2024년에 진행된 <희망을 만들어 온 10년 특별전> 중-

지난 6월 19일, 이곳에서는 <2026년 4·16재단 심리정서 지원을 위한 문화예술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유화 수업이 진행됐다.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수업은 총 20회차로 구성돼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다. 방문한 날인 6월 19일에는 다섯 번째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공방에 들어서자 곳곳에 어머니들의 손길이 닿은듯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붓질이 한창인 작품도 있었고, 완성을 앞둔 작품도 있었다. 어머니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테이블 이젤을 펼치고 필요한 준비물을 세팅하며 능숙하게 그림 그릴 준비를 했다.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어머니들이 냉동고에서 팔레트를 꺼내온 것이다. 강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유화 물감을 이렇게 냉동 보관하면 몇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유화 수업을 지도하는 강사님은 수업이 처음 시작된 3년 전부터 어머니들과 함께해 오고 있다고 한다. 작품 활동을 돕고 그림 실력 향상을 이끌어 온 든든한 조력자이다.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 내내 이곳저곳에서 강사님을 찾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머니들의 캔버스에는 정말 다채로운 그림들이 담겨있었다. 이곳에서는 정해진 그림 주제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그리고 싶은 것이 바로 그림의 주제가 된다. 멋진 풍경화를 그리기도 하고, 추억이 담긴 장소를 그리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존재를 그리기도 했다.

오후 1시 30분, 수업이 시작됐다. 잔잔한 음악 아래 모두가 쉴 틈 없이 붓을 움직였다. 네모난 캔버스가 각각 나무, 바다, 꽃과 새로 채워졌다. 어머님들은 참고용 사진을 가까이 두고 사진과 그림 사이를 바삐 오가셨는데, 붓칠이 더해질수록 색이며 형태가 사진과 비슷해졌다. 집중하는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히 질문을 드렸다. 지금 그리시는 건 뭔가요? 왜 이걸 그리기로 하셨나요? 수업은 언제부터 들으셨어요? 작업 중 불쑥 난입한 기자가 성가실 법도 한데 기꺼이 수다에 동참해 주셨다.

갈색으로 배경을 채운 어머님은 말티즈를 그릴 거라며 사진을 보여주셨다. 키우는 강아지와 닮아서 선택하셨다고 했다. 어느새 곁에 온 선생님께서 어두운 배경에 흰 물감으로 강아지의 형태와 위치를 잡아주셨다. 또 다른 어머님은 해지는 바다를 그리셨다. 나이프로 물감 소량을 뜬 뒤 붓에 조심히 묻히는 식이었다. 세심한 손길에 한창 감탄하던 중 "과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어려워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모르겠다'와 '괜찮다'를 연신 반복하시다 "그냥 하는 거죠"라고 말을 끝맺고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셨다. 그러는 동안 분홍빛 하늘과 그 빛을 품은 바다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만화 캐릭터 '스티치'를 그리던 어머님은 "딸이 좋아해서"라며 이유를 밝혔다. 커다란 귀를 가지고 온몸이 파란 털인 짓궂은 표정의 스티치가 캔버스에서 뛰놀고 있었다.

 

가장 긴 시간 본 작품은 뿌리에서 뻗어 나가는 꽃나무였다. 수업 초반 단색이었던 나무는 어머님이 명암을 더하자 층이 생기고, 점을 찍자 꽃이 됐다. 자신을 초보로 소개한 어머님은 "그린 다음에 위에 또 덧그릴 수 있어서" 유화가 좋다고 하셨다. 덧그리는 동안 쌓인 물감은 옆에서 보지 않는 이상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원한다면 몇 번이고 수정을 거듭할 수 있다.

초록 배경에 노란 새를 그리던 어머님은 거의 완성 단계이셨다. 기자단이란 걸 알아보시곤 과거의 기자 생활을 말씀해 주셨다. 당시 어머님의 주 업무는 경찰서를 드나드는 거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찰들에게 세세히 캐물어야 했다. 그러나 30대 여성 기자에게 경찰서는 쉬운 일터가 아니었다. 남성 경찰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매일 예측 불가한 사건들을 겪어야 했다. 기자 일이 쉽지 않았다던 어머님은 이내 다시 붓을 드시곤 그때와 달리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그리는 일이 즐겁냐고 여쭙자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12년이 지나니까 이런 것도 하네요. 살아남으려 하는 거지."

 

그리다 보면, 흰 캔버스를 남김없이 채우다 보면, 원하는 색을 찾으려 물감을 요리조리 배합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 흐르는 시간을 인식조차 못 한 그 순간이 조용히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살아남는 일은 단지 숨 쉬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와 다른 존재를 돌보는 일도 포함된다. 한 차례 작업을 마무리하고 갤러리를 훑으며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시던 어머님께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줄기 끝에 흰 꽃들이 맺혀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커피콩 나무예요." 커피나무는 높은 온도와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 키우기 어려운 까닭이다. 몇 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는 경우도 많다. "12년 더 전에 커피나무가 유행했어요. 동수랑 같이 마트 가서 산 거." 아이가 떠난 뒤에도 나무를 곡진히 돌봤다. 자주 물을 주고 들여다봤다. 십 년도 넘은 커피나무는 허리춤에 올 정도로 자랐다.

 

나무가 끝 모르고 자랄 동안 어머니들 역시 바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야 했다. 연극과 낭독회를 통해 기억과 애도의 수단을 발명해야 했다. 합창단으로, 발언자로 무대에 서 또 다른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에게 연대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숨 가쁜 일상 속 유화 수업은 잠깐의 휴식이 되어준다. 어머님들은 이곳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농담을 던진다. 진지한 표정과 호쾌한 웃음이 번갈아 등장하는 동안, 캔버스 위에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시간이 새록새록 쌓인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는, 일상이 안전한 사회

안전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 4·16재단 후원으로 시작하세요.

후원 계좌

국민 226401-04-346585
(예금주: 재단법인 416재단)

후원 문자

#25404160
(한 건당 3,000원)

후원 ARS

060-700-0416
(한 통화 4,160원)

후원 계좌

국민 226401-04-346585
(재단법인 416재단)

후원 문자

#25404160
(한 건당 3,000원)

후원 ARS

060-700-0416
(한 통화 4,160원)

최신 콘텐츠

♥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