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은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일상의 시작은 희생자를 기억하는 '추모'와 공동체의 상처를 보듬는 '회복'에 있다고 믿습니다.
6월 17일, 재단은 경기도 고양시 벽제중앙추모공원에서 열린 <고(故) 김관홍 잠수사 10주기 추모식>에 함께하며 그의 뜻과 헌신을 기렸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25명의 민간 잠수사들은 팽목항으로 달려가 희생자 수습과 구조 활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김관홍 잠수사 역시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헌신했던 민간 잠수사 중 한 분이었습니다.
이날 추모식에는 4·16재단을 비롯해 4·16민간잠수사회,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세월호를 기억하는 은평사람들의 모임 등이 함께해 김관홍 잠수사를 추모했습니다.
추모식은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은평사람들의 모임의 조은정 씨가 김관홍 잠수사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한 뒤 추모사 낭독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유가족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김관홍 잠수사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하늘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아이들과 편안히 쉬시길 바란다"며 그리움을 전했습니다.
박승렬 4·16재단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다로 뛰어들었던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시 그런 일이 생겨도 나는 바다로 갈 것이라고 했던 단호한 의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시대"라며 "비록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불의에 분노하고 약자를 품었던 뜨거운 심장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라고 추모했습니다.
이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한 민간 잠수사들은 국가가 다하지 못한 책임을 대신 짊어지며 잠수병과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오늘도 많은 민간 잠수사들이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난을 국가가 책임지고 예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성우 민간 잠수사는 김관홍 잠수사를 "다정한 후배이자 누구보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또한 "현재도 치료와 지원을 충분하게 받지 못하는 잠수사들이 많다"며 "민간 잠수사들을 위한 치료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정해선 안산마음건강센터 부센터장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올해는 생명안전기본법이 통과되어 고 김관홍 잠수사가 꿈꾸었던 세상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을 언급한 것으로, 해당 법안은 국가의 안전권 보장 책임을 명시하고 모든 국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해선 부센터장은 "앞으로도 유가족과 생존자, 민간 잠수사들의 마음 건강과 치유·회복을 위해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회복의 과정에 함께하겠다"며 "생명 존중의 가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끝으로 전체 헌화가 진행됐습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故김관홍 잠수사를 추모했습니다. 4·16재단도 그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며, 오늘의 기억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추모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민간잠수사 김상우 잠수사의 발언이었다. 김상우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수습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이 지난 12년 동안 겪어온 시간을 담담하고도 무게있게 이야기했다. 구조 활동이 끝난 뒤에도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많은 잠수사들이 지금도 질병과 트라우마,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날 추모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민간잠수사 김상우 잠수사의 발언이었다. 김상우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수습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이 지난 12년 동안 겪어온 시간을 담담하고도 무게있게 이야기했다. 구조 활동이 끝난 뒤에도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많은 잠수사들이 지금도 질병과 트라우마,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잠수사들은 그 누구보다 앞서 가장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색 작업이 끝난 이후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충분한 보호와 지원이 아니었다. 잠수병과 골괴사, 신장 질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렸음에도 산업재해 인정과 치료 지원은 쉽지 않았고, 민간잠수사들은 오랜 시간 그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김관홍 잠수사 역시 그러한 현실 속에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민간잠수사들의 명예회복과 권리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냈으며, 국정감사와 청문회에서 수색 과정의 문제점과 국가의 책임을 증언했다. 2015년에는 해경이 수여한 감사장을 찢으며 "감사장이 아니라 진실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구조 활동 이후 이어진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그를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2016년 6월,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발언을 듣는 내내 자연스럽게 국가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했던 이들은 민간잠수사들이었다. 그러나 구조 활동 이후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충분한 보호도, 온전한 책임도 아니었다. 김상우 잠수사의 이야기는 재난 현장에서 시민들의 헌신에 기대어 문제를 수습한 뒤,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온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추모식 내내 참석자들은 김관홍 잠수사를 ‘의인’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이날의 추모는 한 사람의 희생을 기리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의 부재 속에서도 끝까지 생명을 찾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던 사람, 그리고 참사 이후에도 진실을 말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였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생명을 향해 뛰어든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희생과 상처에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김관홍 잠수사 10주기 추모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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