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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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26년 8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미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애도를 끝낼 때는 언제인가 >
12년 전 그날, 나는 작가가 아니었다. 한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였다. 수업 시간이 끝날 때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종이 울리고 교무실로 내려왔더니 다른 선생님들이 큰 배 하나가 옆으로 쓰러져 바다에 반쯤 잠긴 영상을 보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은 계속 이어졌고 이후 학생들은 자신의 일처럼 슬퍼했다. 그러다 이런 얘기도 했다. “올해 우리 수학여행 못 가요? 그래도 가고 싶은데. 평생 다시 안 오는 추억이잖아요.” “글쎄, 잠깐 기다려 보자.” 결국 9월로 예정됐던 수학여행은 전면 취소되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어디로든 다 함께 떠나지 못했다. 그때 그 학생들은 이제 30대가 됐겠네. 잘 지내고 있는지. 그랬으면 좋겠다.
12년 전 그날, 내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날 벌어진 일과 몇 개월 뒤 내 아이의 탄생은 당시에는 전혀 연결 짓지 못했다. 너무나도 쉽게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여름 나는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학교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태어난 아이는 20개월의 짧은 생을 보내고 내 곁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매일을 울어야 하는 건가. 빨리 아이를 다시 낳아야 하는 건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건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나에게만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재작년 겨울, 한밤중에 국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역시,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고.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거리로 나갔다.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앞으로 내가 살아 내야만 할 세상이니까.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물론 그 길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맞닥뜨린 어떤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나와 동행한 사람의 배낭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본 모양이었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그것은 저만치에서도 잘 보였나 보다. 그는 우리의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들고 있던 확성기에다 대고 이렇게 외쳤다.
“아이고, 아직도 세월호야. 지겹다. 지겨워.”
앞뒤로 다른 말들도 들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 말만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떤 애도가, 어떤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지겨울 수도 있구나. 사실 나도 이런 얘기는 누군가에게 한 적이 없다. 아이는 내 곁에 없지만 아직 살아 있는 것만 같다고. 나는 모르는 어디에서 열 살이 넘은 아이로 자랐을 것 같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너무 지겨울까 봐. 때로는 스스로가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게 너무 지겨워서, 애초부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영원히 함께 살아 숨 쉴 것만 같던 존재를 더 이상 곁에서 찾을 수 없을 때, 더구나 명확한 이유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 애도를 끝내야 할 때는 과연 언제인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은 언제인지 아느냐고. 이 긴 애도를 정말 끝낼 수는 있는 거냐고. 알고 있다면 방법을 알려달라고. 제발. 우리는 여전히 슬프고 당신은 너무 지겨우니까. 모두가 여기에 남아 계속 함께 살아가야만 하니까.
미지 (작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던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난 후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삶과 상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품을 써왔으며, 최근에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주요 작품
『네 컵은 네가 씻어』,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당연했던 마음에 질문을 던지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