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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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나
2025년 11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하미나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게 어렵다면>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게 어렵다면 관련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면 어떨까. 그러다보면 왜 어려운지도 좀더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너는 학교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식당 안에 위치한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너는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너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아이들이 가득 타고 있던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뉴스를 본다. 함께 있던 같은 학과 친구들이 모두 놀라고 걱정하지만 너는 그러면서도 큰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곧 구조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2014년인데, 이렇게나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인데, 어떻게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할까. 너는 그렇게 버릇처럼 낙관하고 있다.
너의 기억 속에 한 남자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너 앞에서 밥을 먹고 있고 유독 더 걱정한다. 이건 정말 큰 일이고 심각한 일이라고 그 아이는 내내 굳은 표정이다. 그는 너와 오래 부딪혀온 사람이다. 그는 너와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가졌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너는 그애만큼 보수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너는 그 애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애의 말대로 사고는 더욱 심각해졌고 아이들 대다수는 구조되지 못한다.
너는 방송국 카메라가 유족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것을 본다.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유족들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보여주어도 되는 것일까, 너는 생각한다. 카메라가 만들어낸 장면으로 인해, 너 안에 어떤 감정들이 만들어지고 너는 너 안에서 만들어진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화면을 돌리면, 자리를 떠나면 감정은 손쉽게 다른 감정으로 대체된다. 너는 이 사건 앞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그 혼란은 너의 마음 안에서 오랫동안 머문다.
세상은 계속 떠들썩하다. 충격과 분노, 슬픔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미디어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애도 중인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잔인하게 군다. 그만 슬퍼하라는 사람들도 있다. 흘려보내고 떠나보내라고 말한다.
그만 슬퍼하라는 사람들을 보면 어렸을 때 너가 보고 자란 어른들이 떠오른다. 슬퍼할 틈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또 너는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일어난 일을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본다.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났을 때 다음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과 의식이 있는 사람들과 그럴 힘과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자기 밖에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아 순응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너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어쩐지 하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한 몸에서 일어나는 애도라고 느낀다.
6년 후 너는 너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누군가 세월호 이야기를 써온 것을 읽는다. 그는 그날의 기억을 시작으로, 자신을 인터뷰하고 있다. 자신의 혼란과 어려움, 슬픔, 돕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서툴고도 진실하게 전하고 있다. 너는 6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너도 그러니까. 너는 글을 써온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온라인에 올리자고 제안한다. 너는 블로그를 만들어 첫 글로 이 글을 업로드 한다.
8년 후 너는 어느 영화의 GV를 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이 앉아있고 너는 무대 위에 올라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는 갑자기 세월호 이야기를 꺼낸다. 이 영화가 애도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고 애도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가 말을 꺼내자 분위기는 무겁고 어려워진다. 너는 계속 이야기한다. 진행자는 너의 말을 경청하고 애도의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진실한 애도는 밝고 환한 웃음, 가벼운 농담, 축제 같은 모습에도 담겨있을 수 있다고.
너는 한 언니와 편지를 나누고 있다. 언니는 세월호와 관련한 구술 작업을 오래해왔다. 너는 바다를 사랑하고 지난주에 바다에 다녀온 참이다. 언니에게 신나서 바다 이야기를 하려다가, 내 이야기가 너무 철딱서니없이 들리지는 않을까 망설인다. 그러다 그냥 한다. 바다에 다녀왔고 너무 좋았다고. 언니가 답장한다. 나는 아직 바다를 떠올리면 세월호가 함께 떠오른다고. 너는 편지를 받고 시무룩해진다. 언니가 건낸 무거움이 부담스럽다. 무례한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든다. 그래도 너는 계속해서 답장을 쓴다. 언니도 답장을 쓴다. 너는 그냥 무례한 사람이 되고 언니가 너에게 건내는 무거움을 그대로 받는다. 너는 언니가 세월호 작업을 시작한 뒤로 크게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편지를 나누며 언니는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도 너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너는 언니와 편지를 나누며 고통에 대해 대화하는 법을 배워간다.
너는 한국 밖으로 떠난다. 너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을 본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비참을 본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사람들이 일상을 잘 유지한다는 것이, 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너는 천천히, 너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자신과 더 연결된 슬픔과 고통에 더 반응하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너는 이태원 참사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한 친구의 글을 읽는다. 친구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살아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너는 그 감정이 의아하다. 우리는 애도하기 위해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할까. 같은 상황이 되어야 할까. 너는 친구에게 그렇게 말해본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날 너는 이국의 친구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그는 너와 너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충격을 표하고, 너를 진심을 담아 위로 한다.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너의 말에 동조하고 깊은 애도를 표한다. 너의 친구는 전쟁을 겪은 적이 있고 가족을 전쟁으로 잃은 적이 있다. 너의 친구는 국가적 참사를 여러번 겪어보았다. 너는 너의 친구가 너를 위로하는 방식을 보며 타인의 슬픔과 상실을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타인의 애도를 함께 하며 그것을 돕는 방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이것이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운다.
하미나 (작가)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저술, 번역, 커뮤니티 빌딩, 퍼포먼스, 여성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주요 작품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아무튼, 잠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