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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이금이] 고백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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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2025년 12월 《월간 십육일》에서는 이금이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고백>

1970년대 중반, 중학교를 다니던 나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수학여행단을 태운 차량에서 난 사고들 때문에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이 금지됐다고 했다. 흑백 TV조차 몇 집 건너 하나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크게 낙담했다. 중학교 생활에서 가장 기대하던 것이 바로 수학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과 학교가 있는 동네를 벗어나 먼 곳을 여행할 기회라곤 수학여행 말고는 좀처럼 없던 때였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사고와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내게 닥친 상실감과 억울함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그 기억마저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믿기 힘든 현실과 마주했다. TV 화면은 기울어진 채 서서히 가라앉는 배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탑승객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사이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승객 구조 책임을 저버린 채 먼저 탈출했다. 학생 250명을 포함한 탑승객 304명은 끝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를 떠도는 넋이 되었다.

나는 작가가 된 이후 줄곧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을 그려왔다. 그러나 참사 이후에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다시는 살지 못하게 된 아이들의 한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동청소년문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르이다.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천국의 아이들」, 「1703호」, 「실족」 같은, 세상 끝자락에 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썼지만 미안함과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료 작가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활동에 적극 나서는 걸 보면서도 나는 그 거대한 슬픔 속으로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대신 나는 오래 품어왔던, 작품의 시공간을 확장하고 싶다는 열망을 핑계 삼아 다른 시대의 이야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였다. 2016년, 그 책이 나온 뒤 갑자기 결이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학교–학원을 맴도는 청소년의 현실이 갑갑해져서라고 설명해 왔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어서, 그들의 희망을 이야기할 염치가 없어서 도망쳤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참담했던 마음이 오랫동안 꿈꿔온 다른 이야기를 쓰게 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의도적으로 세월호로부터 도망치며 몇 해의 봄을 더 보내고서야 나는 다시금 아이들의 희망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연대 회원들 틈에 섞여 팽목항을 찾기도 하고, 10주기에는 동료 작가들과 함께 ‘전국 시민 행진’과 ‘기억문화제에도 참여했다. 그곳은 눈물로 빚어낸 웃음과, 고통을 벼려내 만든 활력이 넘실대는 현장이었다. 유족들은 슬픔과 고통에 갇힌 채 무너지는 대신 서로를 돌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같은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아이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희망찬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애쓰고 있었다. 함께 한 시민들도 그 길을 함께 걷고자 다짐했다. 우리는 주위를 맴도는 차량의 확성기 소리보다 더 크게 노래하고, 더 크게 외쳤다. 진실과 책임, 생명과 안전이 기본이 되는 세상을 위해!

다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중학생 때를 떠올려본다. 그때의 나는 희생자나 가족의 아픔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일만 억울해했다. 철없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더 못마땅한 것은 어른들의 대처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독 했어야 했다. 그리고 불행하게 사고가 났다면 그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어른들의 책임이었다. 아이들의 일상과 추억을 빼앗는 일을 해결책처럼 내놓아서는 안됐던 거였다. 그런 일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아이들이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경험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그래야 아이들은 세상과 어른들을 믿고 의지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만 나라의 미래도 밝을 수 있다.

아이들이 더는 희생되지 않는 세상, 안전과 희망이 당연한 일상이 되는 세상. 다가오는 2026년은 그런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 역시 작가로서, 어른으로서 조금 더 책임 있게 걸어가고 싶다.

이금이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1984년 등단한 뒤 40여 년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동화와 소설을 써왔다. 2024년 세계 최고 권위의 어린이청소년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작가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작품

동화 『밤티마을 이야기』 시리즈,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 『너를 위한 B컷』,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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