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은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에 4·16재단은 재난을 겪은 청소년·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며 회복과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수호자‘는 기억을 넘어 연대로, 공감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동행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조카들에게 세월호참사의 의미를 전하고자 시작해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조카~세월을아니?』 팀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소중한 마음을 내어 준 정미이모, 풍주쌤, 찬미공주 세 분의 진심을 전합니다.
*정미이모, 풍주쌤, 찬미공주는 활동명입니다.

“조카들만큼은 세월호참사에 대해 기억해 줬으면 했어요.”
『조카~세월을아니?』라는 이름이 궁금한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미이모>
처음에는 거창한 뜻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카가 있는데요. 조카들만큼은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온 피해 가족들의 노력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조카~세월을아니?』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 우리가 조금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분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실 예전 5·18이나 현대사의 아픈 사건들을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세월호참사는 달랐어요. 우리가 모두 직접 경험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특히 친구(세월호참사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이야기하면서 안산에서 국회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 친구들 진짜 아플 텐데, 그럼에도 저렇게 나서는데 나도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곡을 쓰게 됐습니다.
이후 조카들에게 남길 기록을 만들고 싶어 음악과 함께 ‘풍주쌤‘이 그림을 그리고 『조카~세월을아니?』라는 책을 만들었어요. 책이 출간될 무렵에는 ‘찬미공주‘님과 함께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저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월호참사)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들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생일을 읽어주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이름과 생일을 꾸준히 불러주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제가 원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을 좋아해요.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계속 이름을 불리지만,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그 시간을 멈춰야 했잖아요.
사람들이 참사의 모든 과정과 의미를 기억해 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이름만큼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생일이 되면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며 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책 작업과 팟캐스트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풍주쌤>
원래 저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두기보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참사를 겪고, 당시 중학생이던 제 아이를 보면서 ‘조금 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림 작업에 참여하게 됐고, 그 결과가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저에게도 슬픔을 정리하고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는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이후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모여 녹음하고 편집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어요. 처음에는 지역 방송국에서 녹음을 진행했지만, 팟캐스트가 줄어드는 환경의 변화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활동 방식을 바꾸게 됐습니다.
지금은 가끔 모여 아이들의 생일을 읽어주고 헌법 전문을 낭독하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어요.

“세월호참사 전에는 각자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사회도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참사 관련 활동을 하다 보면 가족 중에 희생자가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이렇게 동의하고 공감하며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혹시 이 참사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시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찬미공주>
2014년 당시를 돌아보면, 많은 분이 그랬겠지만 저 역시 안전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공연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공연 현장에서 헬멧 착용이나 안전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안전 기준이 많이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인식이나 제도가 지금처럼 자리 잡지 못했죠.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저 역시 안전 불감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안전을 당연하게 여기고, 사고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른으로서 저 또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 마음이 세월호참사를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정미이모>
참사 당시 저는 음악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쩌면 ‘개인‘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세상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사회도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언론인은 기사를 쓰고, 의사는 진료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세월호참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단순히 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내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 그땐 진짜 일부러 피아노도 안 치고 방에 쓰러져 있고 TV만 보고 그랬어요.
그러다 생존 학생 친구들이 도보 행진하는 모습 보면서 그때부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마음 먹고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우연히 헌법 전문을 읽게 됐는데, 그 안에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한다.’라는 내용이 마음에 딱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제 누군가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조카~세월을아니?』 책을 출간하시고, 이후 팟캐스트와 유튜브 활동까지 이어오신 가장 큰 이유가 조카들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실제 조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해요.
정미이모>
아이들도 (세월호참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않더라도, 이것이 마음 아픈 일이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풍주쌤>
제가 10대, 20대였을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있고,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작게라도 참여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도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했더니 우리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이제 와서 발 못 빼. 계속해야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기억의 수호자에 동참했어요.”
4·16재단에서 후원회를 만들고,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제안하기 위해 연락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후원에 동참하게 과정에서 함께 나눈 과정이 있는지도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미이모>
처음 4·16재단 발기인으로 관심을 가졌을 때를 떠올려보면, 이미 4.16연대나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재단을 꼭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어요.
그런데 재단이 추진하려는 사업들을 살펴보면서 특히 생존자와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 눈에 띄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재단이 해야 할 사업들이 여러 환경 변화에 따라 충분히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함께 이야기 나눴고, 큰 힘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태고 싶었어요.
풍주쌤>
사실 뭔가 거창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참사 직후 40대였으면 몰라도 이제 다들 50대가 넘었고, 그래서 늘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활동해 왔어요. 그런 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
찬미공주님은 처음 후원 제안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찬미공주>
그냥 해~ (웃음)
세월호참사를 겪었던 학생들이 어느덧 서른 살 청년이 된 거에요. 4·16재단도 이들을 ‘청년’으로 응원하고자 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세월호참사 생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이 저마다의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됩니다.
청년들에게 어른으로서, 또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풍주쌤>
본인들이 혼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느슨한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함께하다 보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찬미공주>
저는 어른으로서 먼저 말을 걸고, 질문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청년들이나 젊은 친구들에게도 사소한 이야기라도 먼저 말을 붙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물론 자칫 잘못하면 꼰대로 보일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계속 관심을 두고 말을 걸며 곁에 있어 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정미이모>
저는 저보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그냥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래야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좋지 않은 생각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자기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풍주쌤>
4·16재단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재정적으로도 조금 더 탄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야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갈 수 있고, 꼭 필요한 사업들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미이모>
사실 어떻게 보면 저 역시 (세월호참사로) 상처받은 거잖아요. 그런데 3주기쯤이었던 것 같아요. 헌화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9월 10일이 생일인 최윤민 학생의 어머님이었어요.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오히려 제가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때 그 감정이 지금도 살아있어요.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계속 함께하고 있는 이유도 그때 받은 위로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