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은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에 4·16재단은 재난을 겪은 청소년·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며 회복과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수호자‘는 기억을 넘어 연대로, 공감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동행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시를 통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우리 사회의 아픔에 꾸준히 연대해 온 진은영 작가를 만났습니다. 세월호참사를 마주하며 어떤 마음으로 기억의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에 함께하게 된 이유와 기억을 이어가는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월호참사를 겪으며, 함께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 최근의 근황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전에는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 상담을 가르쳤고요. 2년 전부터는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한 작업은 이수지 작가와 그림책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를 출간했어요. 지금은 방학이라 학기 중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과 함께 시를 쓰는 작업을 하는데요. 시를 쓰면서 조금 더 사유하고, 자신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는 2026년 4월 16일 발간됐습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유예은 학생의 생일을 앞두고 진은영 시인이 쓴 ‘생일 시’에 이수지 작가의 그림이 더해진 그림책입니다.
2014년 4월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님께는 어떤 장면이나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그날 학교에서 니체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마침, 특강으로 오은 시인을 모셨는데, 오전에는 ‘아이들이 모두 구조됐다‘라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안도한 마음이었는데, 특강이 끝나고 나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오은 시인과 ‘어떡하면 좋지‘ 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세월호참사 10년이 지난 지금도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그때 참 그랬구나 하고 다시 떠올리곤 합니다.
또 세월호참사는 저에게 ‘어른‘이 되었음을 인식한 과정이었어요. 당시 제가 마흔네 살이었는데, 그전까지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늘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제가 그 기성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눈앞에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그것도 생중계로 지켜봤잖아요. 슬픔과 함께 ‘내가 어른인데 이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했구나‘라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밀려왔고, 그 순간 비로소 저도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사회의 문제나 모순을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고 인식하면서도, 그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그런 나이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사진> 2024년 한국문학번역원 행사로 파리의 한 서점에서 세월호 생일시가 수록된 시집을 주제로 프랑스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슬픔을 개인과 사회가 함께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하며 함께하고 있어요.”
이번 그림책 작업뿐만 아니라, 작가님께서는 그동안 사회적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시와 글로 꾸준히 써오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세월호참사는 온 국민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평소에도 사회적 참사나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시인들과 함께 관련 작업을 하곤 했는데, 세월호참사와 조금 더 깊이 연결된 계기는 정혜신 선생님을 만나면서였습니다.
당시 창비 계간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안산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돕는 치유공간 ‘이웃‘을 운영하던 정혜신 선생님의 활동을 인터뷰하는 역할을 요청받아 맡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시기였지만, 제 상황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뷰와 녹취, 원고 정리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해 듣게 됐어요. 점점 그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니라 제 일처럼 다가왔습니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반복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그 이후 세월호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어요.
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 슬픔을 표현하는 일이 오히려 조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그 이야기들이 제 안에 감정의 어려움, 이런 것들을 남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월호참사를 자기 일처럼 품어 오신 마음이 4·16재단 <월간십육일>에 글을 써주시기도 하고, 또 ‘기억의 수호자’ 참여로도 이어졌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계속 함께하고 계신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는 제 일상과도 깊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당시 상담대학원에서 만난 학생들 가운데는 중년의 학생들이 많았는데, 삶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분들이 적지 않았어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오랫동안 안고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상실이 수십 년이 지나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애도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이 방향 짓는지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뿐 아니라 슬픔을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함께 다뤄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심리상담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런 문제를 계속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참사 이후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라는 부채감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4·16재단이나 유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가능한 참여하려고 했고,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편으로 이런 고민도 들어요. 사회적 슬픔이나 (세월호참사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일에 대해 혐오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놀잇감처럼 소비하는 모습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도 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이러한 변화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물론 혐오를 드러내는 행동들이 워낙 눈에 잘 띄다 보니, 세상 모두가 그런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분명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은 빈 구멍이 있는데 그 빈자리를 혐오로 메우고 있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혐오하면 안 된다‘라고 충고하거나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육은 필요하지만, 누군가와 연대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훨씬 기쁠 수 있다는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곁에서 손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해요.”
참사 이후 형제자매와 생존 학생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조심스럽고 아픈 시간을 견뎌왔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4·16재단은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과 4·16재단의 이러한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4·16재단이 방향을 정말 잘 잡고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세월호참사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활동들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세월호참사로 가족을 잃은 분들을 위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과도 연대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참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사실 피해자성을 계속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들이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하지만 재단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진상규명을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더 깊은 신뢰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생존학생과 희생자들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슬픔에도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거든요. 형제자매를 잃은 경우에는 ‘네가 아무리 슬퍼도 엄마 아빠만큼은 아니잖아‘라는 시선이, 생존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너는 살아남았잖아‘라는 말이 너무 쉽게 건네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분들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기도 어려워지고, 오히려 더 방치되어 고통이 매우 큰 것 같아요.
그래서 4·16재단이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에 대한 배려와 지지, 지원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 마음과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견뎌낼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4·16재단이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더살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을 통해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이 실패해도 괜찮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질문이지만, 혹시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이나 마음이 있다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노력해도 힘든 시간은 계속될 수 있겠죠. 그래도 곁에서 함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 달라는 말,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함께 버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4·16재단이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하는 이유는 후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괜찮아”라고 손을 내밀어 줄 어른들을 한 사람씩 늘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의 수호자’ 참여를 망설이고 계시거나,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일에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작가님께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꼭 4·16재단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연결된 곳을 돕고 함께하면 된다고 늘 말씀드리곤 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연대해야 할 곳이 정말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특별히 ‘기억의 수호자‘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4·16재단은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 문제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만든 최초의 재단이기 때문이에요.
또 다양한 사회적 참사와 재난의 현장에서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4·16재단이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고 안전 대책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은 우리가 함께 보살피고 지켜야 할 아이들과 청년들을 지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두고 함께 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