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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수호자 인터뷰 #7] 유가영 인턴(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4·16재단은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4·16재단은 이 길을 나란히 걸어줄 ‘기억의 수호자’를 찾고 있는데요. 재난을 겪은 청소년·청년을 응원하고, 그들의 회복과 성장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캠페인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의미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인 유가영 님을 만났습니다.

유가영 인턴은 세월호참사 당일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한 명이고, 재난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재난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가영입니다. 국제협력단체 더 프라미스의 국제재난심리지원단 이지스(AEGIS)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고, 또 운디드힐러의 활동가이기도 해요.’

재난을 직접 겪은 뒤, 또 다른 재난의 현장으로 나아간다는 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동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재난 현장에 처음 직접 갔던 건 2022년 동해안 산불이었어요. 더 프라미스 활동가 선생님을 통해 산불 현장을 찾게 됐죠. 이전부터 활동가 분들과 안면도 있었고, 재난 지원활동에 관심도 있어서 한번 가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보낸 며칠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았어요.

처음부터 감정이 크게 와닿았던 건 아니에요. 다만 언론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재난 피해자들의 삶을 직접 마주했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당시에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로 정신없이 지내던 시기였거든요.

저는 어릴 때는 막연하게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하고 기대를 많이 했던 아이였어요. 하지만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그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소극적이고 우울해진 제 모습을 마주하게 됐죠.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시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만은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운디드힐러 활동을 시작하면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게 됐고, 직접 현장에 나가 보면서 ‘아,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사회가 말하는 기준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후 책을 쓰게 되고, 이지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면서 제 안의 꿈도 조금씩 자라났어요. 대전 정뱅이마을 침수 현장, 강릉 산불 현장,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 참여했고, 올해는 경북 지역 산불 재난 현장에서 체육관에 머무는 이재민분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했습니다.’

※유가영 님은 세월호참사 당시와 이후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2024년 4월 출간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이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해안 산불 현장에서는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현장에 ‘사랑방’ 같은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오시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간식이나 식사를 함께하며 소소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잠시라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무안공항 현장에서는 피해 가족들을 위한 아동 쉼터를 운영하는 활동에 참여했어요. 유가족분들이 여러 절차로 바쁜 상황에서 아이들을 잠시 맡길 곳이 필요했거든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곁을 지키고, 함께 놀아주며 돌보는 역할을 했습니다.

청송 지역 산불 현장은 피해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체육관에 머무는 이재민분들이 많았어요. 물품과 인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무원들과 소통하며 지원 물품을 정리하고, 들어오는 물품을 이재민분들께 나누는 등 현장에 필요한 일들을 그때그때 맡아 진행했습니다.’

<2025년 3월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재난 현장인 청송군에서 활동했던 사진>

재난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는데요. 활동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무래도 제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화재 현장에서 한 분이 집에 두고 나온 휴대전화와 사진들이 모두 타버려서 너무 속상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기억도 함께 떠올랐어요. 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와서,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억과 일상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거든요.

그 순간,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일 수 있다는 걸 더 깊이 느끼게 됐어요. 그러면서 재난 피해자로서의 제 경험이 다른 피해자의 이야기를 더 조심스럽게 듣고 곁에 머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난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지점들을 짚어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재난 현장의 활동가는 어떤 태도나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체력의 중요성이에요. 재난 현장은 일상처럼 ‘워라밸’을 지키기 어려운 공간이거든요. 늘 긴장된 상태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곁에 있으려다 보니, 몸과 마음의 소진이 생각보다 큽니다.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는 게, 항상 내가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장에서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서도 그 말들이 오래 마음에 남고, 조금 더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활동가에게도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현실적인 조건도 고민이 됩니다. 재난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 중에는 본업이 따로 있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잠시 현장에 합류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재난이 늘 상시로 발생하는 건 아니다 보니, 이 일을 지속하려면 어떤 삶의 방식이 가능할지, 저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현재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이하 센터)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이 시간을 보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센터를 알게 된 건 1년 정도 전이에요. 센터에서 진행한 연구 모임에 참여하면서 처음 유해정 센터장님을 만났고, 이후 무안공항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나도 저런 활동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 후 청송 산불 피해 주민을 지원하는 현장에서 다시 뵙게 됐는데, 제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봐주셨는지 인턴 활동을 제안해 주셨어요. 그동안 의지는 앞서서 현장 활동은 해왔지만, 행정이나 제도적인 부분에서는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거든요.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현장 경험만큼이나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인턴십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제 곧 인턴 기간이 끝나가고 있지만요.

센터에서는 재난 피해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돕고, 인터뷰 녹취를 정리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어요. 일을 하면서 느낀 건, 재난이 발생하는 규모와 빈도보다 피해자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인력과 활동가가 정말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현장을 책임 있게 떠받칠 수 있는, ‘어엿한 활동가’가 되기 위해 계속 배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16재단은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더 살림’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먼저 활동해 본 사람으로서, 이 캠페인에 관심을 갖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난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구라도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게 되잖아요. 특히 재난 참사를 직접 겪었거나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그 감정이 더 예민하게 다가올 수 있고요. 그래서 스스로의 상태를 살피고, 그 이야기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미리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또 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건, 현장 활동만큼이나 행정적인 실무 역량도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저 역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고요. 다행히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걸 아주 어려워하지는 않아서 찾아보며 배우고 있지만,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미리 갖추면 활동을 이어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인턴십이 끝나면 내년에는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용기 내어 이야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나,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실 참사를 겪은 제가 어쩌다 보니 재난 활동가가 됐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전에도 지금도, 제 앞에는 정말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느껴요.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재난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 건, 제 기억과 제 경험이 앞으로 또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지 모를 아이들,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또 다른 피해자들, 혹은 형제자매들이 사회가 규정해 온 ‘피해자의 모습’이나 피해자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재난 참사의 생존자분들, 혹은 앞으로 재난을 겪게 될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는 세월호참사가 제 인생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전의 삶이 길었든 짧았든, 이미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있고, 앞으로의 삶 역시 결국은 제 선택이니까요. 그런데 사회는 종종 누군가를 먼저 ‘어떤 참사의 생존자’, ‘피해자’로 바라보잖아요. 저는 그것 역시 하나의 낙인일 수 있다고 느껴요.

저는 그저 유가영이라는 사람일 뿐이에요. 이제 밖에 나가면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거고요. 그래서 누군가 또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이 참사가 당신의 인생 전부는 아니라고, 당신은 아직 써 내려갈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남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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