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세월호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해 4·16재단이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그 여정에 더 많은 마음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4·16재단은 후원회를 발족하고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기억을 지키는 사람들, 그 따뜻한 약속을 품은 ‘기억의 수호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4·16재단에서 청소년ㆍ청년들을 만나는 강연자로, 또 후원회원으로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이 직접 변영주 감독을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도 만들고 드라마도 만드는 변영주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그날 이후 세상이 달라졌죠. 마침, 몇 년 만에 새로운 영화의 초고를 마무리한 때라 마음이 들떠 있었어요. 작품의 내용도 ‘어떤 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 그리고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어요.
아침에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는 함께 시나리오를 쓴 친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투자를 많이 받으면 이런 사고를 소재로 영화적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같은 이야기요.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그 말이 제 마음속에서 지옥이 되었어요. 참고로 그 영화는 결국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정말 세상이 지옥이 된 것 같았습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차갑고 잔인할 수 있나, 처음 보는 풍경이었어요. 그때부터 저에게도, 세상에도 깊은 상처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4·16재단과 함께 하고 있으신데요. 4·16과의 인연, 그리고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참사 이후 어느 자리에서 세월호 유가족 부모님들을 만났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날 제가 했던 말, 그날의 기억을 조심스레 꺼냈어요. 너무 죄송하다고. 그러자 부모님들께서 말린 꽃잎으로 만든 압화 목걸이를 제게 걸어주셨습니다.
사실 가족들이 농성하실 때도, 단식하실 때도… 저는 멀리서 숨듯이 지켜보기만 했어요.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죄책감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그 목걸이를 선물 받은 이후, 제 마음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4·16재단에서 무언가 요청이 오면, 저는 그것을 ‘내 일’이라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청소년·청년을 만나는 강연이든, 후원이든… 그렇게 함께하는 일이 제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삶의 가치와 4·16재단 활동이 어떤 지점에서 이어지나요?
“그날 이후로 저는 이 노란 팔찌를 하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방구석 1열’ 방송에 출연할 때도 자연스러웠어요. 누가 뭐라고 한 적도 없고, 저 역시 특별히 의식한다기보다… 아침에 세수하고 시계를 차듯이, 그냥 제 삶의 일부가 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SNS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대학생이 된 세월호참사 생존자였어요. 주변에서는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왜 여전히 그 마음이냐’라고 하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방송 속 제 팔찌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잊지 않으면, 잊히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가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방송 관련 공부하던 친구였는데… 언젠가 현장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기억’을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사람들이 잊는다는 게 때로는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잊혔다는 건 그동안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불행한 일이지만)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때, 기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거든요. 우리의 마음이 아플 만큼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 사회라면, 어쩌면 조금은 더 안전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잊힌다는 것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잊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날 아침,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본 뒤 섣부르게 했던 말과 태도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 사람, 한 가족의 삶을 대상화해서는 안 되는데… 그날의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날의 나를 잊지 않는 것이 제게는 ‘기억을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또 우리가 봤던 풍경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유가족 앞에서 조롱하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보상금을 이야기하던 모습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그 장면들을 기억하는 것이죠. 그런 기억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그게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4·16재단에서 재난 참사를 경험한 청소년·청년들을 지원하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지지하죠. 특히 ‘생존자’에게 (이 지원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생존자는 말 그대로 그 죽음의 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이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거죠.
제가 예전에 어디선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셨거든요.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이야기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게 있어요. 당신이 살기 위해 쏘아야 했던 인민군의 얼굴, 후퇴하면서 도와달라고 외치는데 결국 구하지 못했던 사람의 얼굴을 평생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재난도 저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생존자에게 필요한 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그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건너갈 수 있도록 옆에서 버텨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은 정말 소중해요. 생존자 청소년·청년들이 안전하게 회복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저는 꼭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해요. ‘멀쩡해진다’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멀쩡하게 살려면 오히려 멀쩡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누군가를 경멸해야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약한 사람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일이 너무 쉽게 벌어지고… 그러다 보면 결국 세상도, 나도 멀쩡해지지 못하는 겁니다. 그 선을 한 번 넘으면, 우리의 삶이 그 길로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의 모든 피해자는 ‘어떤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피해자가 된 거예요. 사고가 일어나기 전과 후가 다르지 않은,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종종 피해자에게 ‘올바른 자세’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올바를 의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체로 이미 벅찬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거울을 볼 때 스스로에 이야기해요.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멀쩡해지려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그 마음에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그 작은 노력 하나가 내가 세상에 지지 않으려 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