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동참사 3주기 ‘광주학동참사 피해자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 중(2024.6.9.) – 출처 정택용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4·16재단은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4·16재단은 이 길을 나란히 걸어줄 ‘기억의 수호자’를 찾고 있는데요. 재난을 겪은 청소년·청년을 응원하고, 그들의 회복과 성장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난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회복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유해정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부천화재참사 49재 추모제(2024.10.9.) – 출처 정택용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유해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도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저는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과 관련해 처음 ‘인식‘이라는 것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재난을 ‘기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료 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기록 활동가‘ 혹은 ‘재난참사 기록자‘, ‘기록 작가‘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소개에서 세월호참사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2014년 4월 16일, 그날에 대한 기억은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세월호참사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은 2014년 당시 TV로 보았던 침몰 장면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그런 기억이 있지만, 그 장면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세월호참사를 충분히 기억하는 방식인지에 대해 늘 고민해 왔어요. 참사 이후 피해 가족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 또한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2014년의 특정 장면에만 기억을 머물러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되는거죠.
10주기 책을 준비하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참사 이후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또 다른 기억의 장면들을 충분히 만들어 내고, 공유하고, 기록하는 노력이 더 필요했던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제가 진행하는 수업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재난안전교육 강사로 참여해 강의를 진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단순히 개인의 아픔을 증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은 왜 반복되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국가와 시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수업 이후 학생들이 남긴 평가를 읽으며, 피해자가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서 있는 그 장면이야말로 지금의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16재단 ‘재난너머, 일상이 안전한 사회만들기’ 1기 프로젝트 성과보고회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기록자로 활동하며 4·16재단과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그리고 현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센터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세월호참사는 제게 이전의 재난들과는 다른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배가 침몰하고 그 안에 학생들이 있는데도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동료 인권 활동가들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우리는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을 꾸려 현장 상황과 가족들의 활동을 꾸준히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 활동을 이어가며 이 참사가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사회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가족들만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후 4·16재단 설립 움직임이 시작될 무렵, 기록단이 펴낸 책 『금요일에 돌아오렴』의 인세 일부를 재단에 기탁하며 재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운영위원회 활동을 제안받아 참여하게 되었고,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과거의 여러 재난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던 점을 돌아보며, 재단이 세월호를 넘어 다양한 재난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활동이 이어지면서 지금의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의 센터장 역할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기록자로 또 4·16재단에서 여러 역할을 통해 참사를 겪은 청소년·청년들을 직접 만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정에서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을까요?
세월호참사를 기록한 이후 이태원 참사와 또 여러 재난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저는 (재난참사의) 생존자이자 목격자, 혹은 피해자 형제자매의 위치에 있는 다양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들어줄 시간과 공간이 우리 사회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기록자로서 제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또래가 서로의 경험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청소년·청년 재난피해자의 경험을 40~60대가 듣는 것과 같은 또래인 10~20대가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기성세대의 공감과 연대가 소중한 것과 동시에, 이들이 앞으로 함께 살아갈 또래의 이해와 지지는 다른 차원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래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때로는 그 경험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며 객관화할 수 있도록 돕는 ‘동료의 존재‘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난을 겪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경험하며, 서로에게 동료가 되어 줄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만들고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하게 됩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총회(2025.6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 재난을 겪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응원하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동안 활동하며 제가 가장 많이 외쳤던 말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라는 것이었어요. 법과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슬퍼했던 것은 꽃다운 학생들의 죽음이었고, 그 죽음이 남긴 질문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참여하며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을 돌아보면, 학교와 사회에서 이들의 활동과 발언의 공간이 충분히 넓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재난을 경험한 청소년과 청년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 속에서 역할을 준비하며, 다양한 기회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턴십과 멘토링, 또래와의 교류와 같은 경험은 이들이 변화를 실제로 체감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 대신해 주는 지원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은 단순한 후원을 넘어, 청소년과 청년들이 더 우호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기반을 만들어 가는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이어질 때, 세월호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우리의 약속도 현실 속에서 조금씩 실현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세월호참사 생존자인 청년이 인턴으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었는데요. 그 과정이 궁금해요.
센터에서 세월호참사 생존자인 유가영 청년을 인턴으로 만나 함께 일한 경험은, 제가 그동안 많은 재난피해자들을 만나왔던 시간과는 또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센터에는 다양한 재난피해자들이 오가는데, 가영 씨가 처음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자리를 준비하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생존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은 본인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일 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 순간이라는 점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영 씨는 자신을 재난을 지원하는 ‘활동가‘로 소개하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세월호참사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재난피해자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자리에서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더라구요. 저는 그가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생존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매우 큰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기보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며 살아가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가영 씨가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다양한 사회적 역할 속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어요. 그 쉽지 않은 선택을 곁에서 지켜보며 한 사람의 삶을 더욱 깊이 응원하게 되었고,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자신의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16재단 후원회 ‘기억의 수호자’ 후원의 밤(2026.1.28.)>
‘기억의 수호자’ 인턴십 등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쓰면 좋을지 경험자로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4·16재단이 이 인턴 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이 단순히 후원 확대나 재난을 겪은 청년들의 사회 진출 지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단 내부 또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턴십을 통해 청년들에게는 사회 진출을 준비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경험과 경력을 제공하고, 재단에는 다양한 재난피해자들과 직접 만나며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참사에 한정하기보다 다양한 재난의 생존자, 목격자, 형제자매 등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면, 재단의 재난 대응 시각도 더 확장되고 사회적 역할 또한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이후 만들어질 여러 재단과 기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턴 프로그램은 청년들이 단순히 업무 일부를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잘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기간 설정과 체계적인 슈퍼바이저 배치, 역량을 단계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교육과 지원이 함께 마련되어야 하며, 이러한 준비가 있을 때 인턴 경험이 실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억의 수호자 후원회원,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시민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기억의 수호자‘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씨앗은 지금 당장 결과로 나타나는 변화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이후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때 누군가가 변화를 향한 씨앗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지금 우리가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더 많은 분이 ‘기억의 수호자‘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참여가 지금의 작은 싹을 키워, 앞으로의 10년을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