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회차 4·16 가족협의회 리더십 특강으로 '가족,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연결되기'를 주제가 진행됐다.
강연자는 가족상담의 관점에서 상실 이후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족 안에서 같은 일을 겪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애도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강연은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며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지키는 대화법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말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상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같은 피해자 유가족이더라도 사람마다 겪는 상처의 깊이와 추모하는 방식은 다르다.
아픈 기억을 억지로 꺼내거나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지 않고,
"이제는 괜찮아져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용서와 화해, 성장을 강요하기보다 말하지 않을 권리와 각자의 애도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감정은 나의 것이고, 행동은 관계에 도착합니다”
“같은 유가족인데 저 사람은 왜 나처럼 슬퍼하지않을까?”
사랑이 달라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견디는 방식이 다르기때문이다.
강연자는 모든 감정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그 감정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화가 날 수는 있어도 상대를 모욕할 수는 없고, 불안하다고 해서 성인 자녀의 삶을 통제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가족의 애도 방식이 서로 다르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죄책감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감정은 내 것이지만 행동은 관계 안에서 영향을 미친다"며 감정과 행동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삶을 사는 것은, 떠난 사람을 잊는 것도 부모를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마음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떠난 가족을 기억하고 원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한 독립하거나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가족을 버리거나 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가족을 사랑하는 '나'와 내 삶을 살아야 하는 '나'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도가 시작되는 시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서유지 소장님은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에는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지만,
약 6년이 지난 뒤 상담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할머니에 대한 슬픔이 터져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생각나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일에 떡을 사주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할머니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막혀 있던 애도가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북한이탈주민의 사례도 소개됐다.
오랫동안 자신의 상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 분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고,
그제야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슬픔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에게 애도는 상실 직후 시작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몇 년이 지난 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시작되기도 한다.
이처럼 애도에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표가 없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은 언제까지 슬퍼해야 할까.
슬픔과 일상의 행복이 서로 반대되는 감정만은 아니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누군가를 기억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떠난 사람을 잊은 것은 아니다.
상실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애도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슬프지만 다시 찾아오는 기쁨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
떠난 사람과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 속에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가족의 기념일에 한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못 갈 것 같아."
여기까지는 그 사람이 말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다른 가족의 해석이 더해질 수 있다.
'이제 가족에게 관심이 없나?'
'떠난 가족을 벌써 잊은 건가?'
'자기 삶만 중요해진 건가?'
그러나 그 사람이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 자리에 가면 떠난 사람이
너무 생각나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고,
부모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혹은 자신만 살아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곧바로 해석하기보다
"저 행동 아래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서운함과 불안이 커지기도 한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기보다
상대방을 향한 해석과 비난으로 표현하면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내가 밥해 주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오늘은 당신이 차려 먹었으면 좋겠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실을 경험한 가족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그 행동 뒤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르게 슬퍼해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상실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부재로 가족의 역할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사람을 잃었어도 각자가 느끼는 슬픔과 기억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는 아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기념일을 지키고 싶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날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사랑의 크기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전해진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퍼해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떠난 사람을 잊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가족 구성원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애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떠난 가족을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상실 이후 우리는 이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달라진 모습을 이해하고,
가까워졌다가 때로는 조금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시 연결될 수 있다.
애도를 '슬픔을 끝내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과 기억을 품고 살아가면서
서로의 다른 속도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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